1997년, 초등학교 5학년시절 우리 반에 3명의 아이들이 전학을 왔다.
3명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에서 생활하다 왔다는 것이었다. 4년, 5년, 11년.
그 친구들은 한국말보다 영어로 이야기하는 걸 더욱 편하게 느꼈고 심지어 자기들끼리는 서로 영어로 대화를 하였다.
한국말이 조금은 서툴렀던 11년 살다 온 친구는 별 말 없이 항상 웃기만 했고,
4,5년 살다 온 친구들은 항상 ‘원래 미국에서는~’ 이라며 미국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당시 나에게 미국이란 그저 TV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리고 정말 바다건너 다른 세상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을 통해 매일 듣는 미국 이야기가 너무 부럽기도 하고 정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만 갔다.
나도 미국이 너무 가고 싶어졌다. 사실 부러움 이외에 다른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부러움에서 시작된 동경이었다.
"엄마~ 나도 미국 보내주세요. 가고싶어요"
나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학교 잘 다녀오더니 한다는 소리가 미국을 가고 싶다라니.
어머니께서는 나의 이야기에 콧방귀도 끼지 않으셨지만 나는 더욱 미국을 가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궁금했다. 집에 있던 백과사전을 통해 미국에 대해 공부를 하였고,
매일 학교에서 듣는 미국이야기를 집에와서 어머니께도 이야기 해드렸다.
어느날 집에와서 또 미국 이야기를 하는데 어머니께서는 나를 동네 한 회화학원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레벨테스트를 그 자리에서 보게 되었고 그날부터 회화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영어학원에는 나를 포함한 초등학생이 4명, 중학생 형, 누나들이 4명 있었다.
사실 영어회화학원이라고 하여 말하는 법을 배운다고 생각을 했는데,
중학생들이 있어서 그런지 학교 교과서 위주의 공부를 하게 되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단어시험과 스펠링 체크만 하는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국에서 전학 온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나도 같이 영어로 대화를 해보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다가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벙어리가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부모님께서는 성인회화학원에 등록시켜 주시기로 하셨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매일 아침 새벽 6시 수업이라는 것.
부모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초등학생이 새벽 6시에 영어학원을 가서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등교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하셨나보다.
하지만 나는 흔쾌히 수락을 했고 또 다른 조건을 내세웠다.
만약 영어회화 새벽반을 다니면서 영어를 무리 없이 잘 하게 될 때에는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다행히 부모님께서도 요청을 받아주셨다.
물론 부모님께서는 내가 새벽반 영어회화를 한달 이상 다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생각은 어긋나고 말았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던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반까지
아프거나 시험기간 등 특별한 이유 없이 학원을 빠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수업시간에 졸았던 날이 대부분이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