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우리나라보다 폭이 넓은 차도도, 모양이 다른 신호등도, 사람들의 옷차림도, 동네 건물들의 모습도.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미국 유학을 시작한지 1년 정도가 흘러간 무렵, 나에게도 무시무시한 향수병이 찾아왔다.
더 이상 넓은 폭의 자동차 도로도, 신호등도, 사람들의 옷차림도, 동네 건물들의 모습도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처음 느낀 신기함은 익숙함으로 변해져 있었고, 학교 친구들도 더 이상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 미국은 더 이상 동경과 호기심의 장소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때쯤,
친구들의 가족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생일선물로 새 옷을 받았다며 자랑하는 친구,
명절 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여행을 다녀온 친구, 주말에 같이 마트에 장을 보러온 가족... 나에게도 가족이 필요했던 것이다. 부모님이 필요했던 것이다.
열여섯, 아직은 부모님께 어리광도 부리고 싶은 나이에 홀로 미국에서 생활하는 게
당시의 내가 감당하기엔 벅찼나보다. 갑자기 부모님이 보고 싶어지면서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시간에 교과서에서 부모님의 사랑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반 친구들이 한명씩 돌아가며 내용을 읽고 있는데 부모님 생각에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흘러나오는 울음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엉엉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고 결국 나의 울음소리와 함께 수업이 중단되었다.
창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번 터져버린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주변에 앉아있는 친구들이 등을 어루만지며 달래주었다.
그리고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님께서 다가와 안아주셨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울먹이며 그렇게 몇 분간 계속 눈물을 흘렸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반 친구들을 돌아봤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모두들 나를 동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봐 주었다.
내가 겪고 있는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눈빛이었다. 너무 고맙고 또 미안했다.
그리고 수업을 멈추고 와서 안아주신 선생님께도 너무 감사했다. 생각해보니 나의 가족들은 한국에 있지만
이곳에서 이렇게 따뜻하게 사랑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그들을 보며
앞으로 나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로 했다. 나는 한국인이고 그들은 미국인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생각과 습관들을 내려두고 이곳에 있는 동안 최대한 그들과 동화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