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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살롱 May 07. 2024

만질 수 있는 생각

그림책 작가로서 산다는 건 어떨까. 그림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공부하면서 스타작가가 아닌 이상 그림책으로 돈을 벌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은 크지 않은 편이다. 요즘은 성인들에게도 그림책이 조금 대중화되어가고 있지만,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 해외에서 큰 상을 받은 이수지, 백희나 작가 외에는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어릴 때 그림책을 읽고 자라지 못한세대였기에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다양한 국내외 그림책을 접하게 되면서 그림책을 좋아하게 되고, 작가들을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작은 미술관 같기도, 같은 세상 같기도 했던 그림책에 관심을 갖고 보다 보니 최근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도 재밌고 멋진 책이 많이 보였고 나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총 40페이지 내외의 짧은 그림책인데, 만들고자 마음을 먹으니 너무 길고 어려운 책이 되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도 틈틈이 그리며 일도 했건만, 쉽게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림책은 일반 일러스트와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그림 한컷 한컷 그리기는 쉽지만, 40페이지의 그림들이 엮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건 쉽지 않았다. 유치하지 않고 뻔하지 않게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어렵고, 하나의 톤으로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그림책 관련 워크숍도 듣고, 그림책 심리 상담가 자격증 공부도 하고, 글쓰기 수업도 들었다. 그림책 관련 책도 많이 나와있어서 그림책 작가들의 인터뷰, 그림책 작가들의 에세이도 많이 읽었다. 관심 있는 작가들의 인터뷰도 보고, 읽다 보니 역시나 그들도 그림책 작업을 생각처럼 쉽게 하는 작업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며 위로를 받고 용기도 얻었다.


하나의 책이 나오기까지 그림책 작가만의 작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와 디자이너등 여러 사람이 온 힘을 쏟아 작업해야 비로소 세상에 책이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나온 이수지 작가의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의 첫 페이지엔 나의 편집자에게(괄호 안에 특별히 몇몇 편집자의 이름을 언급되어 있다)라고 쓰여있다. 에세이를 통해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작가로서의 시작과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처음 그림책을 시작한 계기, 해외에서 첫 책을 낸 이야기, 엄마로서 작업을 하는 이야기 등 책등이 노출 제본된 꽤나 두꺼운 책을 읽으며 책제목 ’ 만질 수 있는 생각‘에 동의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읽었다. 엄마이기도 하고 해외의 출판사와 일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그녀의 책이 현재의 나에게 꽤나 와닿았다.


기존 출간 작가들의 글을 읽고, 정성 들여 만들어진 그림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더미북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과연 나의 책을 어린 친구들이 좋아할 수 있을까? 어린이독자들을 만나기 이전에,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편집자를 만날 수 있을까? 나도 언젠가 '나의 편집자들에게'라는 인사말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직 출판도 못한, 시작단계인 병아리 작가로서 작년부터 준비한 더미북을 가지고 지난 4월 전 세계 출판관계자와 작가들이 모이는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 도서전'에 참여했다. 작년 홍대 상상마당에서 '볼로냐 그림책 워크숍'을 등록해 16명의 신인 그림책 작가들과 함께 그림책을 공부하고 작업했다. 야심 차게 볼로냐에 갔지만 그 많은 출판사에게 압도되기도 하고 나라는 존재를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좋은 피드백에 날아갈 것 같다가도 관심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다. 볼로냐에 다녀온 후로 앞으로 나의 작업 방향과 스타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만들어놓은 더미북을 좋은 출판사를 만나 출간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림책 작가로서 어떻게 커리어를 쌓고 작업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숙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선배 작가님들의 책도 읽으며 볼로냐 전시로 허공에 들떠있던 마음을 다시 지상으로 내려놓고 있다.  


'세상을 경이와 감탄으로 바라보는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 아이에게 세상의 언어를 짓는 것이 얼마나 멋진지 알려 주고 싶은 마음, 커다란 꽃이 피는 순간을 보여 주고픈 마음, 아름답고 조용한 밤을 전해 주고 싶은 마음, 삶과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 어린이를 향한 마음, 좀 더 단순하고 큰 진실에 아이와 함께 다가가고 싶은 마음, 이 모든 시도를 해 온 수많은 그림책 작가들을 생각한다.' p127 (이수지, 만질 수 있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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