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 사는 필자는 이곳에서의 삶이 길어질수록 "계급사회" 인 영국의 모습을 발견하게된다. 그 중 가장 단편적인 예는 바로 "식재료" 의 수급이다. 영국의 상류층이 사는곳과 부촌주변에서는 손쉽게 오가닉의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고, 질좋은 고기를 파는 식육점과 생선가게가 있다. 반대로 이민자들이 자리잡은 지역은, 원하는 식재료를 구하는건 쉽지않다. 종종 길거리 재래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식재료를 살 수 있지만, 질좋은 다양한 식재료를 사는것 자체가 제한적이고, 살수 있더라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씁씁한 이야기지만, 백인 중심의 동네일수록 좋은 식재료를 구하기가 쉽다.
그래서 필자는 이민자가 많은 동네로 이사온 후, 동네 슈퍼마켓에서 모든 식재료를 해결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과일박스가 배달되어 이웃집의 문앞에 놓여진걸 보고, 식재료 배송 서비스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렇다. 영국에서는 "식재료 배송" "마트배송" 도 조금은 더 돈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 그런지, 모든 전문 식재료 배송서비스가 매우 프리미엄 같아서 마치 한국의 "마켓컬리" 의 이미지와 겹쳐졌다.
어느날 친구의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못생진 야채들의 사진의 포스팅
(제 스타일의 해석)
그리고 해쉬태그
#ODDBOX
친구가 이용하는 지속가능성의 끝판왕 ODDBOX 오드박스는 뭐지?
이름은 바로 ODD BOX. 한국말로는 "특이한 상자"
이 스타트업의 미션과 비지니스 가치는 매우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다.
바로 식재료 낭비를 최소화하고, 소비자들의 소비습관을 의식있는, 환경 친화적으로 바꿔보고자 하는 것이다.
2016년 식량낭비를 혁신적으로 줄여보겠다는 아이디어를 가진 한 부부가 창업하여, 런던 남서쪽 지역에서만 서비스를 하던 "로컬" 비지니스였다가, 작년부터 런던 전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면서 필자도 ODD BOX의 배달 서비스를 "구독" 하게 되었다.
ODD BOX의 핵심 비지니스의 첫번째는 "못생겼고 이상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수많은 채소와 과일들을 바로 농장 또는 수입유통사에게서 수급하여 타 일반 배송서비스보다 약 30% 저렴한 단가로 소비자에게 파는 방식이다.
아니, 이게 어떻게 사업이냐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마트나 야채가게 되면 진열된 예쁜 사과, 과일들만 봐도 정말 좋다. 마구 싱싱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못생기거나하는 과일들 사는가? 그렇지 않다.
영어로 웡키 "Wonky" 라고 한다.
그리고 "Wonky 못생기고 상태가 특이하게 생긴" 과일이 진열된 가게를 보면, 신선하고 좋은 가게라 생각하나? 이렇게 진열된 야채와 과일의 "모양"은 판매되는 식재료의 퀄리티는 소매점의 이미지로 이어지기때문에 그 까다로운 기준에 미달하는 식재료들은 아무리 신선해도 판매할 수 없게된다.
소비자는 머리로는 오가닉 제품에 대해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예쁘고 잘생긴 과일과 야채만 고르게 되는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렇게 버려지는 유통과정 이전에 농장자체에서 Wonky 하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식재료가 영국내 연간 3십만톤 (3million), 약 40억 파운드의 가치라고 한다.
두번째는 수요를 넘는 과공급의 발생시 남는 재고 식재료를 처리한다.
재배상황에 따른 공급과 수요가 늘 맞춰지는게 아니기때문에, 예측된 소비자 수요대비 남는 식재료는 늘 발생하고, 신선도가 중요한 식재료는 시일이 지나면 재고없이 처분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못생기고 특이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또는 수요를 초과하여 재배된 식재료들은 엄청나게 많이 버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버려질뻔한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을 지역 농장 직속으로 저렴하게 구입하고, 지역 농장과 지역의 식재료 수입사 (영국은 많은 야채와 과일이 수입되는 국가다)와 네트워킹을 강화하여 더 빨리, 더 괜찮은 "못생긴" 식재료들을 서비스 구독 가입자에게 "매주"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처음에는 매주 2,000 박스로 시작해, 주 6천박스 (6,000 가입자) 로 성장했던 2017년. 이 부부는 투잡으로 하던 일을 관두고 엔젤투자자로 부터 약 £550,000 (약 8억3천만원)을 투자받아 ODD BOX 사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큰 마케팅 없이 꾸준히 이용자가 증가하여 연간 400배 성장을 한 2020년에는 벤쳐캐피탈로 부터 €3.2 Million (약 42.3억) 의 펀딩을 받아, 영국 전역을 포함 유럽전역으로 점차 그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아니,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사업이 왜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가능할까?
ODD BOX 서비스의 가치는 단순히 "식재료 낭비" 의 환경친화적 가치는 기본 전제가 되고, 여기에 또 한가지를 더했다.
그러니까, 이미지만 그럴싸한 "지속가능성" 을 외치지 않는다.
컨셉처럼 매우 직접적으로 환경친화적인 서비스 방식을 보여준다. 약간 가내수공업같은 냄새도 난다.
먼저 신선하게 못생긴 식재료를 제공하기에 "로컬" 농장과의 공조가 필수다.
그리고 이렇게 신선하게 버려질뻔한 식재료들을 모두 재생가능한 박스와 종이포장으로 배송한다.
패키징만 가내수공업처럼 했다고 지속가능한 서비스의 끝판왕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 서비스의 핵심은 "멤버쉽 가입" 후 ODDBOX를 정기구독으로 매주 배송을 받게하는 서비스이며, 식재료의 선택을 소비자가 할 수 없다.
수요보다 공급중심의 서비스인 것이다.
즉, 내가 필요한 야채와 과일을 선택해서 배송받는 서비스가 아닌 "공급이 가능한" 식재료를 주1회 배송받는다.
아니, 공급에 의한 서비스라니, 무슨 XX주의같은 무식한 서비스? 라고 할지모르겠다.
소비자도 ODDBOX 옵션에 대해 3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첫번째는 매주 배송될 식재료 중에서 "받고싶지 않은" 야채나 과일
두번째는 사이즈 - 대,중,소 와 패밀리 사이즈
세번째는 과일과 채소를 섞은 구성, 또는 과일중심의 구성.
가입자는 "받고싶지 않은" 목록을 제외하는 방법은, 매주 금요일 다음주 배송될 채소와 과일의 공급목록을 가입자 이메일로 보내주고, 이에 따라 2-3가지 목록을 제외할 수 있다.
소비자의 수요예측에 따란 공급을 하게되면 수요의 변화에 따라 결국 버려지는 식재료가 생길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로컬 농장과의 협업이 필수 비지니스 방식인 ODDBOX는 사전에 식재료 수급을 완료하고 이에따라 정기구독 서비스하는 가입자- 소비자에게 배송하게 된다.
그래서 버려지는 식재료를 최소화한다.
여기서 또 한가지.
배송일자도 내가 선택하지 않고, 지역별로 묶음 배송이 된다. 그래서 한 지역을 한번에, 하루 중 교통량이 적은 새벽시간에 몰아서 하기때문에 배송을 위한 연료소비가 적다. 예를 들면, 런던 동쪽은 매주 목요일 이른 아침에 배송하고, 런던 북서쪽의 가입자들에게는 매주 월요일 이른 아침에 배송되는 시스템이다.
제품소싱, 포장, 판매, 배송
이 모든 단계에 "지속가능성"으로 엮여진 가치사슬을 만들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비록 이용자 수요에 최대한 맞춰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되더라도 버려지는 식재료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는 지역의 자선단체의 무료급식소나 지역공동체의 농장에 기부한다.
지난 5년간 많은 기업에서, 신규산업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오는 단어이다.
지속가능성이나 Slow Fashion 등 과거와 달라진 여러 가치를 생각할때 이런 사업모델은 아마 10년전까지만 해도 성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소비자가 원하지 않았을테니까.
영국에서도 마켓컬리와 같은 프리미엄의 수입 식재료와 오가닉 농장 제품을 제공하는 온라인 마켓서비스부터 FARM SHOP을 컨셉으로 하는 다양한 서비슥 아래와 같이 있다.
FARM SHOP 컨셉 온라인 식재료 서비스
럭셔리/프리미엄
Website: www.franklinsrestaurant.com
Website: www.thefarmw5.co.uk
Website: www.chegworthvalley.com
Website: www.daylesford.com
대중적 가성비 중심
Website: www.farm-direct.com
Website: www.riverford.co.uk
Website: www.farmdrop.com
런던에서는 오프라인 매장 중심으로 인지도와 브랜드 가치를 쌓은 다양한 브랜드끼리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렇게 "이미지" 로 쌓여진 브랜드와 서비스간 경쟁이 치열한 마켓에서, 단순심플.직설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가능성" 이라는 가치사슬로 묶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ODDBOX는 매주 정기배송을 받아보는 가입자에게 단순히 식재료 배송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한다.
내가 친구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으로 알게된것 처럼, 많은 이용자들은 단순 식재료를 받는것이 아닌, 어떤 식재료들이 이 ODDBOX 안에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받은 못생긴 야채와 채소들로 맛있는 요리를 해서 환골탈퇴시키는 즐거움을 나누고있었다.
단순히 계층을 뛰어넘는 "사회 참여" 는 프리미엄을 뛰어넘는다.
환경 친화적 식재료낭비를 줄이는 지속가능한 서비스의 이용자로 사회에 기여하게 해주는 서비스. 그것을 자랑하고 싶고 나누고 싶어하는 요즘의 소비자들이 있기에, 그 경쟁적인 시장환경에서도 큰 마케팅없이 꾸준히 성장하고 사랑받고, 입소문으로 성장하고있는 ODDBOX이다.
한국에 잠시 입국했을때 나는 ODDBOX의 이용자로서 처음 본 마켓컬리의 배송,포장을 보고 경악했었다.
지난 1년간 많은 의식있는 한국의 소비자들의 요구를 들어, 환경친화 패키지를 도입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눈가리고 아웅이랄까. 표면적일뿐이고, 마케팅에 사용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밖에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말로만, 표면적으로만 "지속가능성" 으로 포장하여 마케팅에 이용하기는 쉽다.
하지만 철저하게 하나의 서비스의 가치사슬에 "지속가능성" 을 녹여내는것은 한 서비스의 생태계를 혁신해야한다는 큰 과제가 있기에, ODD BOX의 뚝심있고, 엉뚱한 가내수공업같은 접근방식에 이용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서포팅을 하게되는것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에 대해 투자와 지원을 하고, 이런 "착한 소비"를 직접 SNS로 홍보하는 요즘 소비자.
그들에게는 장삿속보다 진정성이 보이는 "지속가능성" 으로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나고, 흔쾌히 트라이얼 서비스를 하도록 만든다.
매주 배송에 함께 오는 운영자의 편지와, 재료소개와 배송된 식재료 응용 레시피.
아주 단순하게 재생지에 프린트되어 제작되었다. 매주 달라지는 레시피와 메세지에 그냥 버리지 않고 읽게 되는 마법같은 가내수공업 스타일.
ODD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