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랜드 라디오 EP10
무비랜드는 신작 영화를 틀지 않는다. 먼저 우리가 궁금한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오래된 영화를 튼다. 우리가 궁금했던 첫번째 사람은 코미디언 문상훈님. 4년 전 빠더너스 브랜딩 작업을 하며 인연이 되었는데, 영화를 핑계삼아 그동안 들을 수 없었던 코미디 크루 빠더너스와 코미디언 문상훈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테마 소개
사람은 언제 웃는가. 코미디언 문상훈이 ‘웃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4편을 골랐다. 우리는 난처할 때 웃고, 누군가의 애잔함을 보며 웃기도 하고, 상상이 이뤄지는 순간이나 삶이 빡센 순간에도 웃는다. 코미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코미디라는 장르의 팬으로서, 그 전에 웃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고른 문상훈의 코미디 무비 셀렉션.
큐레이터 소개
코미디언 문상훈 Moon Sang Hoon, The Comedian of BDNS
감독, 프로듀서, 코미디언, 시나리오 작가로 구성된 코미디 크루, ‘빠더너스'의 플레이어. 한국지리 강사 문쌤, 문상 기자, 문이병. 그리고 작가와 배우로 활동 중이다.
소호: 모춘님 큐레이션 영화 상영이 끝났어요.
모춘: 아쉽습니다. 몇개 더 상영하고 싶은데. 어땠어요?
소호: 무사히 잘 끝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 두가지가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모춘: 어쨌든 티켓을 다 팔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좀 생기고. 4월도 기대됩니다. 4월은 만우절이 있어서 사람들이 좀 풀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달이죠. 무비랜드도 그런 느낌으로 4월을 지내보자는 생각으로 준비했습니다.
소호: 재밌는 분을 모셨습니다. 4월의 큐레이터는 코미디언 문상훈님 입니다.
상훈: 문상훈입니다.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모춘: 4년 전에 한번 모티비 출연하시고 그 이후에 너무 바빠지셔서. 간간히 뵙긴 했는데 어떻게 지내셨어요?
상훈: 실제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데, 좀 실속없이 바쁘기만 하고요. 4년 전에 모티비 나와서 제가 좀 까불면서 말씀드렸던 게.. 모티비 당시 구독하시는 분들은 압구정 현대아파트 처음 입주한 사람들이다. (당시 구독자 3천명) 갖고 있는 돈 더 넣으시면 크게 돌아온다, 그랬었는데. 드디어 무비랜드로 첫번째 배당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개업 너무 축하드리고 사실 로망처럼 생각하잖아요. 극장주가 될 거야, 라디오 DJ가 되고 싶어, 무비 스타가 될 거야. 대표적인 게 극장주가 되는 건데. 무비랜드 녹음에 올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호: 저희가 간간히 만나뵙긴 했지만 4년 동안에 서로 각자 되게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렇게 만나니까 또 조금 감동적인 것 같아요. 저는 궁금한 게 그때랑 지금이랑 팀을 소개하실 때 좀 달라진 게 있는지?
상훈: 달라진 건 많이 없는 것 같고요. 그때부터 좀 자부심있게 말했던 건, 저희 팀에는 감독도 있고 프로듀서도 있고 플레이어도 있고 시나리오 작가도 있고 촬영 감독도 있는데 그 사람들 모두가 다 코미디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는 거예요. 촬영 감독이지만 촬영하는 코미디언이고, 시나리오 작가지만 글 쓰는 코미디언이거든요. '영상 회의를 하고 있어요' 정도로 얘기할 수 있지만 '코미디 해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크루이고 싶어요.
모춘: 실제로 다들 너무 웃기신 거 같아요. 나사가 풀려 있고. 상훈님 원래 꿈은 뭐였어요?
상훈: 초등학교 2학년 때 포도알 이런 거 코팅해서 붙여놓는 거 있잖아요. 그때 개그맨이라고 적었던 기억이 나요.
모춘: 웃기는 거를 좋아했네요.
상훈: 인정욕구 같기도 하고. 친구들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악기를 잘 치면 기타리스트가 되듯이 저는 웃기는 것이 제일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 같더라고요.
모춘: 보통 코미디언을 꿈꾸면 공채 시험을 본다거나 그런 일반적인 커리어 패스가 있잖아요.
상훈: 저도 공채 시험을 한번 봤어요. 전역 후에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였거든요. 떨어진 후에 분석을 해본 결과 우리나라 공채 시험에서 행해지는 코미디는 '무대 코미디'더라고요. 앞에 관객이 몇백명부터 몇천명까지 있는 코미디요. 그러면 그 무대 앞에서 사람들한테 얘기해야 하는 '기'가 필요한데 저는 그 기가 너무 약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도 '이 반에 웃긴 놈 있으면 장기자랑 나와봐' 하면 손들고 나가는 애가 아니었어요. 맨 뒷자리에 앉는 애가 아니었던 거죠. 저는 맨 뒤에서 왼쪽 정도. 제 근방 앞뒤나 옆 한 6명만 웃기는 거에 심취해있었던 애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공채 개그맨은 못 됐고요. 그런데 우연히 키앤필의 코미디를 보게 됐어요. '세상에 이런 게 있네!' 했던 거죠. 정파가 아니라 약간 사파의 코미디라고 할까요? 진짜 하고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같이 일하는 진혁이, 감독 친구랑 맨날 사고실험 하면서 만들어보고 그러면서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이제는 코미디 장르도 좀더 넓어지고 사람들도 저희 코미디를 하나의 장르로 봐주시고. 스탠드업 코미디 씬도 너무 활발하죠.
모춘: 제가 느끼는 상훈님은 되게 세밀하고 조금 멋없게 표현하면 똑똑한 사람 같아요. 저희 극장 큐레이터를 모신다 했을때 사실 제일 궁금한 사람이었는데요. 작업물을 보면 '쟤 바보야?' 하는데 실제로 만나보면 생각의 깊이도 깊고. 이 사람은 어떤 영화를 좋아할까? 혹은 어디에서 작업적인 영감을 얻을지가 궁금했어요. 저희가 처음에 영화 좀 골라달라고 했을 때 어떠셨어요?
상훈: 저도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 내지는 좋아하는 영화 모음들을 볼때, 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는 지점이 되는 거 같아요. 음악으로 치면 김광석을 좋아한다고 할수도 있는데, 너무 훌륭한 아티스트니까요. 근데 왠지 약간 재미없어 보이니까 유앤미 블루로 가볼까, 백현진으로 가볼까.. 괜히 이렇게 되는 느낌. 상영할 영화를 고르고 내가 어떤 지점에서 좋아하는지를 설명드리기 위한 적당한 지점을 찾아야 하는 거니까. 실제로도 좋아하면서, 시간날때 치킨 시켜놓고 꾸준히 보게 되는 영화를 고르게 되더라고요.
모춘: 4편을 고르셨어요. 이 영화들을 하나로 묶을 수가 있어요?
상훈: 장르로는 코미디이고요. 4편의 영화는 <행오버>, <찬실이는 복도 많지>, <반칙왕>, <소림축구>예요. 굳이 하나로 묶자면 내가 언제 웃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들인 것 같아요. 나아가면 이 장면에서 웃는 내 스스로가 좀 뿌듯해지는? 이 장면은 보통 사람들이 안 웃고 넘어가는데 나 혼자 웃을 때 오는.. 뭐라 그럴까 약간 허세? 그런 게 조금 있는 영화고 기본적으로 너무너무 사랑하는 영화예요.
모춘: 실제로 작업에도 영향을 받았어요?
상훈: 돌이켜보니까 영감 받은 부분이 많다고 느꼈어요. 영화 볼때 그런 거 있잖아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해야지 하는 것들은 기억이 안나고, 내가 그 장면이 왜 기억이 나지 하는 장면들은 많이 기억나듯이. 몰랐는데 돌이켜보니까 영향을 많이 받았구나 알게되는 것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소호: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요? 첫번째 영화는 <행오버>. 말그대로 숙취죠.
상훈: 맞아요. 총각 파티를 라스베가스에서 벌이면서, 술로 필름이 끊긴 사람들이 그다음 날 어제 했던 일들을 역추적해 가는 내용이에요.
소호: 다음날 결혼식을 해야 되는데 신랑이 없어진 상황에서 친구들이 신랑을 찾아다니는 이야기죠.
모춘: 사실 저는 이번에 처음 봤어요. 처음에 한국에 못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저질 유머라. 왜 선정하셨어요?
상훈: 개인적으로는 기준점이 되는 영화예요. 명작의 상징이라기 보다는요. 제가 초반에 말씀드렸던 키앤필이라는 듀오를 알게되었던 시기에 고민하던 게 있었어요. 내가 주변에 6명 웃기는 거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떤 코미디를 할 수 있을까, 코미디 영화라는 건 뭘까? 같은 질문들이 있을 때였거든요. 4-5분짜리 꽁트는 알겠는데 그걸 곱하기 25한다고 코미디 영화가 되진 않잖아요. 그때 <행오버>를 보고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느꼈던 것 같아요. 저는 김진혁이라는 친구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친구는 특히 더 좋아했어요. 말도 안되는 일 때문에 이야기가 어찌 저찌 전개되고 개연성이 생기는 게 너무 짜릿하고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지점에서 공감했어요.
모춘: 어떻게보면 관객이 아닌 작업자로서 본 거기도 하네요.
상훈: 일단 한줄 시놉시스가 너무 명쾌해요. 비슷한 느낌으로 <광복절 특사> 시놉도 너무 좋아요. 탈영을 했는데 그 다음날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게 될 거라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뚜렷한 하나의 사건. 쉬운 서사. 또 어이없는 서스펜스들 있잖아요. 신랑 더그를 구하려고 우연히 발견한 블랙잭 책으로 돈을 따서 찾았는데, 그 더그가 아니라 다른 더그였다, 같은. 취향에 다라서는 유치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저는 그 지점이 좋았어요. 저는 그게 웃기는 방법 중 세련된 편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모춘: 이 영화에서 특히 영향받은 부분이 있어요?
상훈: 앨런으로 나오는 잭 갤리퍼내키스, 그 캐릭터를 제가 너무 좋아해요. 의도는 정상적인데 행동은 바보같이 하는. 문쌤에서도 그런 거 많이 하거든요. 심슨 호머도 그렇고. 저한테는 기준점같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약간의 마마보이? 약간은 아니고 많이 마마보이. 태세라고 해야 하나요, 반응들을 그 캐릭터에서 많이 따온 거 같아요. 문이병 브이로그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아전인수격 캐릭터 같기도 하고.
모춘: 저는 보면서 항상 신기한 게, 너무 답답하고 짜증나는 캐릭터인데 왜 밉지가 않지?
상훈: 최근에 어떤 분은 저를 너무 미워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복학생이 상훈님이라고 생각해서 너무 화가 났다고.. 저는 혼자 속으로 그런 거 있거든요. 욕하면 지는 거야 같은 거처럼, 캐릭터인데 미워하면 지는 거야. 우리는 과몰입하게 한 거니까 성공한 거라는 생각으로 혼자 낄낄대는 거요. 영화에 나오는 앨런도 그런 느낌이에요. 친구 결혼 축하하려고 예거에 약 타고 한건데 그게 시작으로 일이 일파만파 벌어지는 거잖아요.
모춘: 빠더너스 캐릭터들이 밉지 않은 이유가 있었네요.
상훈: 시트콤 기본 조건 중 하나래요. 미워할 수 없는 러버블 너드.
소호: <오피스>에 나오는 캐릭터들도 그렇잖아요. 빠더너스 팀 채널에 나오는 캐릭터들도 그렇고요. 전 최근에 웃겼던 게 해인칭 하시는 해인씨 동생분 분노조절장애 캐릭터 너무 웃겨요.
상훈: 해인이 동생 얘기는 편집해주세요. 농담이고 실제로 전혀 안그런 친구인데 캐릭터가 그런 게 재미있으니까.
모춘: 다들 재밌어.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떤 사람들한테 추천하고 싶어요?
상훈: 실제로 미국 영화 장르에도 있다고 믿는데요. 버드와이저 영화. 딱 버드와이저랑 피자 시켜놓고 친구랑 보는 킬링 타임용 영화예요.
모춘: 우리 극장에도 버드와이저 팔고있고..
상훈: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놓치는 아쉬움 중에 하나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여러분. 넷플릭스랑은 확실히 달라요.
소호: 네. 많이 보러오시고요. 다음주에는 또 저희가 너무 사랑하는 영화 <반칙왕>으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