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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황 Nov 20. 2018

케이블카는 인간을 후진시킨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이들에게

인공의 암벽을 오르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자연의 암벽을 오르는 행위의 모방-시뮬라크르다. 지금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이 활동은 애초에 거벽巨壁 등반을 위한 모의 훈련에서 비롯됐다. 인공의 암벽은 파타고니아나 요세미티의 거벽 혹은 에베레스트의 특정 루트를 모사했고, 이 획기적인 훈련방법의 탄생으로 사람들은 유례없는 등반 능력을 갖추게 됐다. 실제로 나 정도의 클라이밍 능력이면 1970년대 이전까지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클라이머였을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를 통과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1970년대 알피니즘(한국어로는 등산)에는 새로운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등반을 위한 특수한 장비의 도움 없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만을 가지고 등반하는 'aid-free', 즉 자유등반이라는 개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로프로 만든 사다리나 도르레 등의 장비를 벽에 설치하고 그 장비의 도움을 받는 인공등반의 안티테제로 등장한 자유등반은 오르는 행위 자체보다 어떻게 오르느냐는 태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벽이 어려우면 어려운 그대로의 벽을 오르는 것이 자유등반의 핵심이다. 자유등반을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그 세대가 견지하는 태도로부터 인공암벽이 나왔고, 인공암벽을 통한 훈련 덕분에  클라이밍이라는 인간의 신체적 행위 역시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게 됐다.

그보다 앞선 이야기를 하자면, 17세기 후반에 인간이 산에 처음 오르기 전까지 산은 신이나 악마가 존재하는 곳으로 여겨졌고, 당시의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행위 자체를 쓸데없고 무모한 짓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유럽의 근대를 만들면서 근대성의 정신이 몽블랑의 정상을 가리켰고, 그제서야 인간은 스스로 산에서 신과 악마를 쫓아냈다. '산에 왜 오르는가?'라는 질문은 그래서 전근대적이다. 적어도 2018년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게서 나와야 하는 적절한 질문은 '어떻게 산에 오를 것인가?'라는 식으로 태도를 따지는 질문일 테다.


인류 최초로 몽블랑 정상에 올라 그곳에 악마도 신도 없었음을 확인했던 자크 발마와 자크 발마의 안내로 몽블랑 정상에 두 번째로 오른 철학자 소쉬르.


나는 그래서 설악산의 케이블카를 반대한다. 강원도 지역의 원주민들에게 경제적 가치라는 환각을 유통시키며 케이블카 설치를 강행하는 이들의 사기와 같은 행각은 일단 차치하고, 케이블카를 설치해 산에 오르겠다는 그 태도가 인간을 얼마나 후진시키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몽블랑 정상에 악마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 한 인간으로부터 산에 오르는 행위는 인간의 지성이 얼마나 용감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험으로 거듭났고, 이 모험은 20세기 후반에 자연 자체가 갖춘 어려움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태도로서의 활동으로 재차 거듭났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이유는 산이 신성한 곳이라는 중세식 구닥다리 비-논리 때문도 아니고,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엄숙한 정언명령을 들이대기 위한 것도 아니다. 케이블카라는 발상 자체가 '구리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각에선 장애인들과 노인을 위해 케이블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장애인과 노인을 도구로 위시해 케이블카 설치의 당위를 꾸미는 시도에 불과하다. 그걸 실제 장애인이나 노인이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렇다. 케이블카의 설치는 산을 어떻게 즐길 것인지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말살시킨다. 산과 자연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그 태도에 집중하면서 전과 다른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삶에서 탈락시킨다.

케이블카가 인간의 몸을 보다 편안하게 높은 곳으로 올리는 동안, 인간의 정신은 수 세기 이전의 수준으로 퇴보하게 된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사람들은 그래서 아무런 생각이 없는 멍청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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