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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은 Nov 30. 2020

밝은 빛 그리고 오래 남은 빛

이번 주말 결혼식장엘 다녀왔다. 대학교 시절 형제처럼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창욱이의 결혼식이었다. 자취방에서 지내는 내내 창욱이는 나를 친형처럼 대했다. 창욱이의 어머님을 처음 뵀던 날, 그 살가움은 어머님한테 물려받았다는 걸 알았다. 어머님은 처음 본 나를 아들처럼 대해 주셨다. 창욱이네에 방문할 때면 정성스러운 밥과 간식들을 챙겨주시고 세세하게 잠자리까지 봐주시면서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셨다. 어느 날은 창욱이 아버님의 생일 저녁 식사 자리까지 초대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창욱이의 친형은 따로 술 한잔하자며 평소 형제끼리 잘하지 않는다는 술자리까지 가졌다. 모두가 나를 가족처럼 대해줬던 그 날의 기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창욱이한테 청첩장 문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는 마냥 기뻤다. 기쁜 나머지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써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깜빡 잊었다. 어쨌든 간에 카페에 앉아서 기쁜 마음으로 노트를 펼쳤다. 그러나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결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생각을 글로 쓸 때는 잘 쓰든 못 쓰든 '나는 이랬는데 어쩌라고!'라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청첩장의 글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아무리 시간을 들여도 글이 안 써지자 나는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잘 써야 한다는 각오를 가득 채운 가방을 멘 것처럼.


'내가 이따위로 글을 못 쓰는 줄 몰랐어.'라고 당장 전화를 걸어 부탁을 무르고 싶었지만, 창욱이는 내가 써준다는 것에 의미가 있으니 전혀 부담 갖지 말라고 당부를 했기 때문에 그럴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결혼한다면 어떤 글을 썼을지 떠올려봤다. 그러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노트에 적고 새삼 감격스러웠다. 내가 결혼을 한다니, 아니 창욱이가 결혼을 한다니,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서 카페에서 조금 울었다. 꾹꾹 눌러쓴 청첩장의 문구는 그렇게 완성되었고, 글을 쓰면서 떠올려본 그 결혼식이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빛을 뿜어내는 신랑 창욱이와 신부 민수 누나를 보자, 박민규 작가님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등장하는 '인간 전구론'이 떠올랐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평범한 인간들의 무수한 사랑이 여름날의 반딧불처럼 모이고 모여든 거야."


신랑과 신부의 모습은 정말로 어느 때보다 빛났다. 그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이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사방을 장식하고 있는 흰색의 꽃들은 오늘의 주인공이 마음껏 빛나도록 전류를 보내고 있었다.


조금 상기되고 긴장한 아버님과 여기저기 분주한 형님, 그리고 한편에서 환하게 웃고 계신 어머님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움에 어머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이미 어머님은 몇 번 우신 듯했다. 나는 창욱이 결혼을 축하드린다는 상투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아들이 결혼하는 심정 같은 것들을 여쭈려고 했는데, 살갑게 맞이해 주시던 어머님은 "아들, 오늘 엄마 예뻐?"라며 눈가에 기쁨이 촉촉하게 맺힌 채로 물으셨다. 예상치 못한 물음에 정말 아름다우시다고 반사적으로 대답했지만, 천천히 생각해봐도 어머님은 정말 아름다우셨다. 어머님의 미소를 보면서, 아들을 위해 오늘만큼은 가장 아름답고 싶으셨을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했다.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밝아서 내 마음에까지 전류가 흘러들어왔다.


결혼식 중간중간 나는 코 끝이 찡해졌지만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화려했던 결혼식이 꿈처럼 지나간 듯하지만, 결혼식을 떠올리면 자꾸만 어머님이 떠오른다. 밝게 빛나는 신랑 신부의 옆에서, 언젠가 해주셨던 따뜻한 밥처럼, 마음에 오래 남은 빛을 눈물과 미소로 머금고 계셨던 어머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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