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만난 상어
이직을 앞두고 일주일의 시간이 나서 제주도에 갔다. 갑작스러웠지만 내 일정에 맞춰준 지인들이 고마워서 나는 이번 여행에 어떤 목적을 두지 않기로 했다. 굳이 목적이 있다면 이들에게 나를 맞춰 모두가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들은 나를 비추는 거울 같은 사람들이었고 내 마음과 다르지 않아서 서로에게 맞추길 원했다.
"바다에 들어가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는 것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들은 바다를, 수영을 좋아했다. 더 큰 행운은 포구에서 우연하게 스노클링 렌탈업체 사장님을 만난 것이었다. 바다 날씨는 육지 날씨보다 한 달 늦어서 4월 초에 바다 날씨는 매섭게 추웠다. 수영 팬티 하나 입은 채로 예상치 못한 강한 바닷바람을 맞으니, 바다에 들어가면 따듯하다! 라며 불태웠던 투지가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멀리서 웻슈트를 대여한 무리와 렌탈 업체 사장님이 다가왔다.
우리는 사장님이 베풀어주는 친절과 스노클링 풀세트를 대여하고 사장님이 일러준 스노클링 스팟으로 갔다. 즉흥적인 일정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행운이 우리의 투지를 다시 한번 불태웠다.
사장님이 일러준 장소는 인스타그램으로도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역시나 바닷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바다는 잔잔하고 맑았지만 바닥이 흐릿하게 보일만큼 깊었다. 세상을 아니 바다를 다 가진 기분이었다.
온몸에 힘을 빼고 바닷속을 들여다보면 우주를 떠다니는 것 같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주는 황홀함을 모든 촉각으로 느끼며, 마음 한 구석에서 나를 끌어당기던 걱정, 압박감 같은 심리적 중력에서도 완전히 해방되었다.
바닷속에서는 내 생명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생뚱맞지만 생명은 단조롭게 반복되고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껴지는 공기 같은 것이다. 바닷속에서는 공기가 없어서 그런지, 생명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웻슈트가 있어서 안전했지만 바다의 광활한 풍경을 보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생각하니 63 빌딩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자동차처럼 내 고민들이 귀여워졌다. "그래! 후회 없이, 대범하게 살자!" 같은 다짐들을 하면서 나는 상상 속으로만 생사를 오갔다.
바다 한가운데서 상어를 만나 고프로로 촬영을 했는데, 렌탈샵 사장님이 숭어라고 했다. 아직 더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
육지로 올라오니, 수영을 끝 마치고 나서의 개운함, 미련 없는 탈진감,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느껴지는 아찔함 같은 것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녹초감과 쾌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살아있는 게 새삼 행복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맥주와 함께 우린 서로 느낀 감정을 나눴다. 내가 느낀 감정을 일목요연하게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감정을 '녹초쾌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쉽게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내가 가진 힘을 모조리 쏟아부었지만, 내가 원하는 일에, 내가 원하는 삶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생각에 뿌듯함이라는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 녹초감이 얼마나 지속될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기에.
나는 제주에서 녹초가 되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다시 한번 모든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 바닷속을 유영하는 상상을 한다. 바다의 두려움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줬듯 지금의 두려움도 어쩌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존재의 이유를 느끼게 해주는 감정일 수 있겠다. 언젠가 다시 바다에 갈 날을 기대하며 당분간은 이 녹초감을 감당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