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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길동 Jun 14. 2024

나는 또라이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게 있다. 어딜 가나 일정 수의 또라이가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그곳에 있던 또라이가 사라지면 새로운 또라이가 등장한다. 운 좋게 또라이가 없는 곳이면 내가 또라이 일 수 있다. 그러면 누가 또라이인가? A는 B를 또라이라고 한다. B는 C를 또라이라고 한다. C는 A를 또라이라고 한다.




흔히 이치에 맞지 않게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또라이라고 한다.  또라이는 정상인과 구별되는 말이다. 대다수 사람은 자신을 정상인으로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또라이라고 생각한다.      


정상인은 누구인가?사전 의미는 '상태에 특별히 이상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사람'이다. 그러나 눈이 하나 인 사람이 사는 나라에서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비정상이 되는 것처럼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정상인은 달라진다. 또한 어디까지가 정상인지도 구분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정상인은 없다.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 정상이다. 바꿔 말하면 또라이가 정상이다. 생각이든 행동이든 사람들 간에 차이가 있다는 다양성을 존중하면, 세상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서로를 또라이라고 비난하며 전쟁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기성세대 들은 요새 것들은 이상하다고 비난하고, 젊은 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꼰대라고 비난한다.     


삶이 힘들 때 사람들은 '자신이 왜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길가의 돌멩이가 왜 거기에 있는지 알 수 없듯이 자신존재하고 있는 이유 알 수 없다. 그냥 나일뿐이다. 저 사람이 참 부럽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어떤 경우든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정상인이지만 개성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나는 그냥 내가 되고 싶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또라이라고 불리는 게 더 낫다.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삶은 단호히 거부한다. 나는 남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나의 삶을 살아가련다.



이런 생각으로 딸에게 ‘아빤 또라이가 되고 싶.’라고 했다. 그러자 딸은 울먹인다.  ‘아빠, 제발 그러지 마. 우리 아빠는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했는데, 앞으론 그렇게 얘기할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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