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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망이 아빠 Oct 27. 2023

아내가 마냥 행복하길 바라는 것도 이기심일까

[아빠육아] 남들과 다른 삶을 '잘' 살아가려면

며칠 전, 우연한 계기로 아내의 생각을 일부 듣게 되었다. 육아와 둘째 임신, 그리고 제주생활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이었는데 부정적인 것도 적지 않았다. 새로운 생활에서 겪었던 불편한 것들, 힘들었던 것들, 태어날 둘째 아이에 대한 앞선 걱정,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쉽게 터놓지 못하는 본인의 성향과 나와의 생각 차이 등 아내 마음속에 자리한 생각들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풍성한 것들이 더 많다고는 했지만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지난 6월, 처음 제주에 왔을 때 나와 아내 모두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어딘가에 터 잡고 산다는 건 여행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이니 제아무리 아름다운 제주라 해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우리 집은 도심지가 아닌 중산간 주택단지라 생활에 따르는 불편함도 많았다. 음식이나 식자재 배달은 꿈도 꿀 수 없고 마트가 멀어 장보기도 번거로웠다. 워낙 자연이 좋은 곳이니 그만큼 벌레도 많았고 길고양이나 동네 강아지들 때문에 겪게 된 불편함들도 있었다. 여행 중엔 '낭만'으로 여길만 한 것들이 현실에서는 이전에는 몰랐던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달라진 일상과 환경에 따른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가족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건 때로 부딪칠 일들도 많아졌음을 의미했고, 육아와 집안일을 잘 분담하고 유지하는 것도 부부 사이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사회생활과 커리어를 내려놓고 하루 대부분을 육아로 채웠으니 육아 자체에서 오는 힘듦과 더불어 '맞게 가는 거겠지' 하는 불안과 걱정들도 있었다. 아내 역시 낯선 곳에서 적응하고 아이를 키우며 본인 일을 시작하는 것이 힘들었을 거고 특히 둘째를 임심 중이니 거기서 오는 심신의 피로도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에서 보낸 지난 5개월 여의 시간은 기쁨이 가장 컸다. 가족이 중심이 된 하루하루를 보내며 '우리'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었고 가족으로서 성장했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아내와 감정적으로 부딪친 적도 있었지만 보다 단단해진 요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제주에서 만들어온 지금 우리 가족의 일상이 아내와 아이에게 마냥 행복하기를 바랐다. 우리가 선택한 삶이 옳은 결정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실제로 아이는 제주에 와서 훨씬 건강하고 활달해졌다. 그리고 매일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있다.)


그러던 중에 며칠 전 들은 아내의 이야기들은 내 마음을 힘들게 했다. 지금의 시간;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며, 그동안 '내 일'을 못했던 아내가 다시 커리어를 키워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삶을 만들기 위해 거쳐온 노력과 고민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 화가 났다. 근로 활동 없이도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고 아내가 자기 일을 발전시킬 충분한 시간을 줄 수 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래서 그게 내겐 큰 자부심이었는데) 그걸 몰라주는 것 같아 마음이 힘들었다.


이런 마음은 가장의 이기심일까. 우리가 선택한 시간 속에서 아내가 마냥 행복하길 바라고, 그래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화가 나는 것은 내 욕심일까. 


남들과 다른 삶을 '잘' 살아가려면 외적인 능력뿐 아니라 내적인 능력; 지혜와 온유가 필요한 것 같다.  


2023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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