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육아] 우리 가족의 풍족했던 시간들
서울에 살 때는 1년에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하는 해도 있었다. 일이 바쁘고 육아에 지치다 보니 휴일에도 어디 멀리 가기보다는 집 주변에서, 활동적인 액티비티보다는 '힐링'이란 이름의 게으름이 더 편했다.
여기 제주에서는 정반대다. 일정에 따라 하루에도 여러 번 바다를 지나고, 사는 곳 자체가 자연 속에 폭 쌓여있다 보니 아침에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하늘의 청명함이나 나뭇가지의 흔들림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 하물며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는 우리 일상에서는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래서 올해는 이 가을이 유난히 아쉽다. 작년만 해도 가을은 주말 하루의 단풍놀이 혹은 회사 근처를 산책하며 느끼는 서늘한 공기 정도였는데 산으로 바다로 찾아다니는 이번 가을은 참 충만하고 그만큼 또 아쉽다.
제주는 지난주까지 매우 따듯했다. 11월임에도 한낮의 바닷가에는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최근 몇 주는 나도 휴일엔 반바지에 재킷을 걸치고 올레길 걷기 같은 야외활동을 즐기곤 했다. 신선한 공기와 따듯한 햇살이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었다.
그러다 지난 주말부터 3~4일은 급격하게 날씨가 차가워졌다. 며칠에 걸쳐 비가 내렸고 기온도 뚝 떨어졌다. 올가을에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낸 우리 가족은 이 계절의 끝자락이 유난히 아쉽다. "어떻게 이렇게 하늘이 파랗지?" 하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게 했던 계절이 이제 저만치 가고 있으니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그래도 오늘은 며칠 만에 다시 구름도 걷히고 해가 쨍하다. 소망이는 어린이집에, 아내는 함덕의 필라테스 짐에 내려준 나는 서우봉 초입의 해변에 캠핑 의자를 펴고 앉았다. 바다는 어떻게 저렇게 푸른 옥빛으로 빛나고 11월의 하늘은 또 어찌 이리 파란지... 제주의 날씨와 환경에 아직도 다 적응이 되지 않았나 보다.
곧 아내의 필라테스가 끝나면 소망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간다. 3시 전에는 픽업할 테니 다 같이 해안도로를 달려봐야겠다. 지겹게(?) 지났던 길이지만 이 계절이 끝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제주의 가을을 느껴야지, 소망이도, 우리 가족도.
2023년 11월 0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