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이 육시럴 할 놈의 돈!”

<백수 생활백서>

by 소망이 아빠


03. "이 육시럴 할 놈의 돈!"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돈은 일상생활을 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하물며 수입이 없는 백수는 말할 것도 없죠. 백수로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급함이 커져 뜻하는 것을 온전히 준비하지 못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돈에 쪼들려 생활 자체가 되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힘차게 생활하는 백수가 되기 위해,

그래서 이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생활비 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돈을 불릴 수는 없지만 생활비를 줄이고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아낼 수 있는 수칙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세요. 하루 교통비 라야 3~5천 원 정도지만 이것도 쌓이면 무시할 게 못됩니다. 출근하지 않기에 쉽게 게을러질 수 있는 백수에겐 특히 중요해요. 건강한 몸을 유지하며 매일 밥 한 끼 값을 아끼세요.

밥 한 끼 먹기엔 적은 돈이라고요? 5천 원 이내로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곳들은 아직 많이 있어요. 회사나 학교 주변의 식당만 다니느라 갈 기회가 없었던 작고 오래된 식당들에 가보세요. 식당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도 나눠보고 다양한 삶의 모습도 구경해보세요. 4천 원짜리 된장찌개를 먹어도 충분히 든든하고 행복할 수 있어요.

점심을 사 먹는다면 아침, 저녁은 집에서 해결하세요. 돈을 아끼기 위해 음식을 해 먹는 것은 필수예요. 싱싱하고 저렴한 식재료들을 사서 건강한 요리를 만드세요. 위에 얘기한 것처럼, 시장 아줌마, 아저씨들과의 대화는 덤이에요. 그게 뭐가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건 잠시 멈춰 다음 걸음을 준비하는 백수에겐 큰 영감일 수 있어요.


커피 한 잔에 5천 원씩 하는 카페에 ‘공부하러’ 가지 마세요. 대부분의 백수들은 아마 공부를 해야 할 거예요. 공무원이나 각종 자격증, 혹은 각자 원하는 다양한 분야가 있겠죠. 공부는 가까운 도서관에서! 물론 걸어서 다니세요. 도서관에서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눈치 안 보고 공부할 수 있어요. 돈 한 푼 안 들이고 책도, 컴퓨터도, 인터넷도, 전기도, 심지어는 물과 화장실까지 쓸 수 있어요. 어차피 나나 우리 가족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니까 당당하게 뽑아 먹자고요.

친구들을 만날 때도 과한 지출은 피하세요. 합리적인 곳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걸로 충분해요. 하룻저녁 술자리에 며칠 치의 생활비가 드는 자리라면? 까짓 거 그냥 패스하세요. 지금은 꿈을 위해 잠깐 다른 일상을 사는 것뿐이니까 화려한 가게에서 비싼 음식과 술을 못 즐긴다고 위축되지 마세요. 비교되는 게 두려웠다면 어차피 이 생활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거잖아요.

마지막으로 재테크 얘기를 해볼까요? 간단히 말해 안정적인 것들만 남기고 정리하세요. 저는 재테크에 관심이 많아서 꽤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세팅해서 돈을 관리하는 편이었어요. 소득공제를 위한 재형저축, 연금저축, 연금보험, 주택청약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주식, 펀드, 선물처럼 변동이 큰 상품들까지 골고루 했습니다. 일을 하던 시절엔 손해를 좀 봐도 ‘그런가 보다.’ 했어요. 리스크가 크면 이익도 크니까요.

작년 가을쯤, 제가 갖고 있던 주식이 30% 가까이 떨어졌어요. 회사를 그만둘 때 남겨둔 주식인데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을 받은 거예요. 그런 일은 백수에게 큰 영향일 수 있어요. 모아놓은 돈 만으로 생활하는 입장에서 불기는커녕 뚝뚝 떨어진다니! ‘그냥 다시 일할까.’하는 조급함이 커지기에 딱 좋은 상황입니다.

몇 개월 이상 수입이 끊기는 생활이 예상된다면, 혹은 그런 생활을 시작했다면 재테크는 안정적인 것들만 남기고 정리하세요. 만기가 한참 남은 적금 등도 유동성을 위해 정리하는 게 좋아요. 꿈을 위해 ‘목돈의 꿈’은 잠시 접는 거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는

“이 육시럴 할 놈의 돈!”

이라는 명대사가 나옵니다. 살다 보면 정말 그런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아픈 마누라한테 설렁탕 한 그릇 못 사주는 절박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숨 쉬는 데도 돈이 드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치이며 살아갑니다.


꿈을 위해, 뜻을 위해, 건강하고 합리적인 지출을 하는 건 백수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곧 이 생활이 지나고 꿈꾸던 모습으로 다시 수입을 갖게 될 날까지 ‘육시럴 할 돈’을 현명하게 관리해보자고요!




*사진 설명:


<터키 이스탄불에서 점심으로 사 먹은 고등어 케밥>


8개월 반에 걸친 세계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터키의 이스탄불이었다. 그리스의 에게해 섬들을 거쳐 터키 남서부의 페티예로 입국을 했고, 거기서 육로를 거쳐 이스탄불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일주일 가량을 여행한 후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내 여행의 마지막 장이었다.


장기간의 배낭여행에서도, 백수생활과 마찬가지로, 생활비를 줄이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목표한 대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에, 그리고 그 안에서 온전한 느낌들을 얻는 데에 돈이 방해가 되지 않길 바랐으니까. 그래서 내 점심은 늘 3천 원 이하의 케밥, 햄버거, 조각 피자 등이었다. 물론 노점에서 파는 것이라 길거리나 공원의 벤치 등에서 식사를 했었다.


좀 꾀죄죄하면 어떤가, 테이블이 없는 곳의 저렴한 음식이면 어떤가, 꿈을 품고 여행을 하는 매일매일에서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바다를 보며 서서 먹은 케밥은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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