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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동부_올긴과 산티아고 데 쿠바

by 소망이 아빠




어쩌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 Guardalavaca



Guardalavaca 바다는 다양한 색을 띤다. 짙은 파랑부터 밝은 연두, 코발트 블루, 눈부신 하양과 부서지는 모래알의 누런 빛까지… 한 순간의 셔터에도 이 모든 색이 담긴다. 백사장은 말 그대로 하얗게 빛나고 군데 군데 펼쳐진 나무는 해변의 풍경을 더없이 아름답게 꾸며준다. 따듯한 지방의 나무인데도 붉게 물들어 가는 이파리들이 보인다. 고유의 색들로 눈이 가득차는 Guardalavaca, 약 천 원을 내고 Sun bed를 빌려 그늘 아래 누우면 신선이 따로 없다. 이곳은 어쩌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였다.


Guardalavaca는 Holguin에서 동북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꽤 거리가 있어서 만약 택시를 타야 한다면 돈이 많이 들 테니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이 Collectivo Taxi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다. 콜렉티보 택시는 택시지만 마치 버스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출발하는 형태로 멕시코에서도 흔하게 이용했던 시스템이다. 1cup짜리 (약 40원) 현지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서 콜렉티보를 탈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씽코 쿡!” (5cuc: 약 5천원), 예상했던 대로 바가지를 씌우려 한다. 왜 그러냐며 웃고 3cuc을 내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 웬만하면 맨 처음에 두 배 정도를 부르는 것 같으니 반 뚝 잘라서 흥정해도 보통은 통한다. 택시 안에는 먼저 타서 기다리고 있던 독일 커플 한 쌍과 현지인들이 있었다. 이 커플의 이름은 Oliver와 Sandra, 얘기하다 보니 꽤 친해져서 결국 오후와 저녁에도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됐다. 이번 여행에서 독일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난다. 지금이 대표적인 Holiday 시즌이라고 했는데 보통 2~3주씩 휴가를 낼 수 있단다. 50분 정도 달리면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아름다운 해변이 있으니 뭔가 관광지처럼 발전시키고 있는 느낌으로 길도 깨끗하고 해변으로 향하는 길목의 식당들도 서구적인 느낌이 났다. 곧이어 나타난 Guardalavaca의 모습은 숨을 턱 막히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약 4천 원 정도 하는 식사를 사고 (밥과 돼지고기, 감자 튀김) 미리 빌려둔 Sun Bed에 앉아 여유롭게 점심을 먹었다. 바다에 도착했을 때 둘러보다가 자연스레 Oliver 커플과 갈라졌어서 이 때는 혼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민소매 티를 훌렁 벗어 놓고 앉아서 바다를 보다가 덥다 싶으면 수영을 하고, 음악을 들으며 다시 바다를 보고 앉았다. 너무나 여유로운 시간, 아름답다 못해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고 있으니 가족들이나 친구들, 소중한 사람들이 떠올라서 문득 외롭기도 했다.


속 살이 너무 허여멀건가 싶어서 선탠을 한창 하는데 누군가 나를 부른다. 올려다 보니 아까 만났던 Oliver가 왔다. 여기 있었냐면서 반가워하길래 그늘에 앉으라고 권했다. Oliver와 Sandra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며 사귀게 됐는데 지금껏 3년 넘게 만났단다. 슈트가르트 근처의 작은 도시에서 운송업계에 종사한다는데 내가 결혼할 생각까지 있냐고 물었더니 내년쯤 생각하고 있다고 Oliver가 웃는다. 나도 내 여행과 살아온 얘기를 조금 했더니 매우 흥미롭다면서 저 쪽에 있는 Sandra가 들으면 좋아하겠다고 그녀를 불러오겠단다. 그 때부터 저녁에 다시 Holguin으로 돌아오기 까지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됐다. 둘은 일년에 두 번 정도씩은 같이 여행을 가는 모양이다. 회사에서 긴 휴가를 어렵지 않게 낼 수 있다는 게 참 부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에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특히 부러웠다.


바다를 즐기며 오후를 보내고 어스름이 내릴 무렵 우리는 다시 콜렉티보 택시를 타는 곳으로 나왔다. 돌아가는 길이라 역시 택시 잡기가 쉽지 않다. 5cuc씩 내라는 말을 반복하는 몇몇 택시를 그냥 보내고 서 있는데 오히려 1cuc짜리 버스가 근처에 섰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버스를 타고 우린 편하게 Holguin으로 돌아왔다. 노을지는 쿠바의 시골 풍경을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바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저무는 하루를 가만히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이, 또 많은 일들이 떠올라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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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마지막 도시, Santiago de Cuba



쿠바 동남쪽에 위치한 도시 Santiago de Cuba, 이 곳은 여러 의미로 다른 도시와 달랐다. 머무는 3박 4일동안 누군가와 함께 보내게 됐고, 수도 Havana보다도 훨씬 많은 잡상인과 걸인에 시달려야 했으며, 깨끗하고 훌륭한 Casa에서 머물 수 있을 만큼 관광지로 발전한 곳이었다. 물론 쿠바에서 머무는 마지막 도시라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Holguin에서 Santiago까지는 버스로 약 네 시간 정도가 걸린다. 늘 그렇듯 큼직한 백팩을 뒤로, 중요한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책가방을 앞으로 메고 Viazul 터미널로 향했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향하는 날은 약간의 긴장을 품게 된다. 터미널 시설이 낙후돼 있고 일하는 사람들도 뭔가 빠릿하지 않기 때문에 행여나 정신 놓고 있다가 버스를 놓치기라도 할 까봐 그런 것이다. 미리 예약한 증서를 가지고 Check-in을 하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좋은 친구, Mathias를 만났다. 전 날 만났던 Oliver네 커플처럼 Mathias도 독일에서 왔단다.


Check-in을 어디서 하면 되는지 묻다가 얘기를 텄는데 그 계기로 Santiago에서 Double room 숙소를 같이 쓰고 함께 다니게 됐다. 홀로 하는 여행, 게다가 인터넷도 쓰기 힘든 쿠바이기에 더 외로웠던 차에 좋은 인연을 만났다. 며칠 함께 다니니 외롭지도 않고 경비도 절약할 수 있으니 더없이 좋았다.


Santiago는 쿠바의 영웅, Fidel Castro의 고향이다. 쿠바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고 수많은 유적과 박물관, 역사적인 건물을 갖고 있는 관광도시다. 때문에 길거리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말을 거는 잡상인들이 넘쳐난다. 처음엔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그러다 조금 지나면 식당이나 Bar로 데려가려고 하거나 시가나 럼주를 팔려고 한다. 인터넷 카드를 팔려는 사람도 있고 그냥 돈 좀 달라고 구걸하는 사람도 있다. Havana에서도 잡상인들을 많이 봤지만 거기는 그냥 “Cigar?” 하고 대놓고 물어봐서 싫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었는데 여긴 이름을 묻고 어디서 왔는지를 묻고, 거의 한 블록마다 그런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나중엔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물론 한 번도 뭘 사거나 따라간 적은 없다. 거절을 한다고 해서 해코지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걱정할 건 없지만 너무 그런 사람이 많으니 덥고 습한 날씨와 더해져 여행자의 짜증을 북돋는 주요 원인이 된다.


Mathias는 변호사다. 처음 몇 년은 로펌에서 일했고 지금은 고된 삶이 싫어서 독일의 약학협회의 법무부서에서 일한단다. 라틴 아메리카에 관심이 많은 모양으로 예전에 에콰도르 키토에서 6개월간 Voluntary teacher로 일한 적도 있고 아르헨티나와 쿠바를 여행한 적도 있단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친구라 (아직 독신이지만 나이는 꽤 있는 것 같다. 30대 중반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함께 다니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서로의 일과 삶이 어땠는지, 쿠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나라들을 여행했는지 등 참 많은 생각을 공유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느끼는 건데, 어느 정도 사회경험이나 인간관계, 직장 경험을 하게 되면 출신이 어디던 통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다. 학생 때 외국 친구들과 얘기하던 때와 공감대의 깊이가 전혀 다른 것을 매일 느끼고 있다.


마지막 날의 산티아고는 이 곳에서의 며칠 중 가장 덥고 습했다. Cementerio Santa Ifigenia와 Cuartel Moncada 같은 대표적인 명소들을 둘러보니 어느덧 오후 2시, 우리는 벌써 땀에 푹 젖어있었다. 식당에 들어가 땀을 식히는 것도 잠시, Centro 근처의 한 박물관에 도착할 무렵엔 이미 파김치가 된 상태였고 카니발을 주제로 한 전시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쯤 되니 아는 사람 마냥 말을 거는 이 곳 사람들이 귀찮고 짜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특히 아시아인이 별로 없으니 “Chino?” 라면서 종종 말을 거는데 “No. Correa.”라고 웃으며 얘기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대답하기도 귀찮아 그냥 손짓을 하기도 했다. 까사에 돌아와 에어컨을 켜고 씻으니 그나마 정신이 좀 돌아왔다. 한 시간쯤 선잠을 자고 다시 Centro로 나갔다. 아무리 더워도 겨울은 겨울, 6시만 돼도 해가 자취를 감추고 도시가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Centro 바로 옆에 있는 Casa Grande 호텔 발코니에서 가볍게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마지막 날이라 꽤 지쳤던 탓인지 덥고 힘든 날이었지만 Mathias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나니 정말 쿠바에서의 마지막 날이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쿠바는 참 다른 나라다. 좋은 점이던 나쁜 점이던, 독보적인 곳이 아닌가 싶다. 50년대 올드카와 공중전화가 일상인 곳, 아마 앞으로 한동안은 이 특별함이 계속 될 것 같다.


산티아고 남부 바닷가에 있는 성, Castillo de San Pedro de la Roca del Morro.

처음엔 해적에 대항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지만 나중에 스페인과 미국 군함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성 근처에 있는 작은 섬마을에 가는 배를 탔다. 현지인들은 1cup (약 40원)을 내지만 외국인인 우리는 1cuc (약 천 원)을 내야 했다. 주로 섬으로 귀가하는 주민들이나 학생들이 탑승하는 것 같았다.


날씨 탓일까? 고즈넉하다기 보다는 음울한 느낌이 강했던 섬마을.
Santiago de Cuba 도심지의 광장에 있는 대성당, 벌써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인다.
Jose Marti 같은 쿠바의 영웅들을 모셔놓은 공동묘지, Cementerio Santa Ifigenia.

사진 중앙의 거대한 조형물이 Jose Marti의 묘다.

자신의 묘에 햇빛이 비췄으면 좋겠다는 유언에 따라 땅에 뭍지 않았다고 한다.

Jose Marti 묘 내부의 모습.
작년에 사망한 쿠바의 영웅 Fidel Castro의 묘

그는 50년대에 쿠바 독립군을 이끈 리더였는데 1953년에 산티아고에서 있었던 정부군과의 전투를 통해 일약 스타가 됐다. 구속되어 수감되었지만 1959년에 쿠바가 완전히 독립한 이후 쿠바의 대통령이 되어 사망 10년 전까지 정권을 차지했다. 지금은 마찬가지로 독립군이었던 그의 동생이 정권을 지키고 있다.


바로 위에서 얘기한 1953년의 전투가 벌어졌던 Cuartel Moncada.


이 건물은 당시 정부군의 주둔지였는데 Fidel Castro가 이끄는 독립군이 습격한 총격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 습격으로 많은 독립군이 사망했고 Cuartel Moncada에서는 이 전투를 비롯한 쿠바 독립에 대한 전시를 하고있다. (참고로 본관은 현재 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쿠바의 독립과 공산주의의 상징인 곳으로 과거 동독의 총리를 비롯한 공산권 국가의 수장들이 방문한 곳이다. 최근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방문했다.









콜롬비아로 가던 길 행운의 밥다운 한 끼



쿠바 아바나에서 콜롬비아 보고타로 가는 비행기, 갑자기 좌석이 비지니스 클래스로 바뀌었다. 스탑오버가 너무 길어서 지쳐있던 나는 좌석이 바뀌었다길래 뭔가 불이익인가 싶어 반문부터 했다.


실은 요즘 하루하루 얼마씩 쓰고 있는지 꼼꼼히 체크하던 터였다. 수입이 없으니 아무래도 생각이 예전과 달라지는데 오늘만해도 빠듯하게 환전해놓은 쿠바 돈이 다 떨어져서 잔돈으로 산 크래커 한 상자만 먹고 버티고 있었다.


목이 말라서 물부터 한 잔 부탁했다. 네 시간 정도의 비행, 바뀐 좌석 덕에 밥답게 한 끼 먹겠구나 싶은 생각부터 드는 내 자신이 바보같고 괜시리 서럽다. 여행을 하면서 종종 들었던 생각... 먹고 자는 거, 그게 참 어려운 거다.


Avianca av255 비행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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