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소들이 모여있는 '올드 하바나', 거기까지 가는 '센트로 하바나'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답게 지저분하고 조금 낙후되어 보였다. 도로 군데 군데 아스팔트가 드러나 있어서 물이 고여있고 멕시코처럼 신호등 체계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5~6층은 되는 건물들이 길 양쪽으로 쭉 들어서 있고 발코니나 창문은 자랑이라도 하듯 다 열려있다. 그건 1층에 있는 집들도 마찬가지라 길을 걷다보면 저 집이 무슨 TV프로를 보는지 훤히 보인다. 군데 군데 모여있는 쿠바 사람들, 흑인이 많아서 처음엔 괜히 경계하고 조심하게 됐는데 몇 시간이 지나고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길거리가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지 않은 건 사실 올드 아바나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대로를 빼고는 지저분하거나 공사중인 곳이 많았지만 유서 깊은 아름다운 건물들과 광장은 유럽의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그 화려함이 뒤지지 않아 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음악. 거의 두 블록에 하나씩 있는 듯한 흥겨운 식당/바는 지나가는 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5~6명으로 구성된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노래는 왜 쿠바가 쿠바인지를 설명하는 듯 했다. 낙후된 길거리 따위 우리는 신경 안 쓴다고 콧방귀라도 뀌는 것 같다.
일단 불편한 점들 먼저. 길거리는 여기저기 울퉁불퉁하고 구멍도 많아서 보수가 필요해 보인다. 공산주의 국가라 그런지 가게에 물건도 별로 없다. 술과 담배 빼고는 아무래도 종류도 적고 부족하게 느껴진다. 버스 타는 것도 어렵다. 시내버스 루트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고 막상 타려고 해도 마치 인도의 기차처럼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다. 시외버스는 어떠냐고?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저렴한 시외버스가 있지만 외국인은 Viazul이라는 전용 터미널에서만 버스를 탈 수 있다. 그나마도 하루에 몇 대 없어서 미리 발품을 팔지 않으면 티켓을 구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 정도는 상대도 안 되는 불편함이 있으니, 바로 인터넷이다. 쿠바에서는 개인이 인터넷을 소유하는 게 불가능하다. 다들 스마트폰을 쓰지만 국영 통신사에서 안테나를 세운 공공장소에서만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통신사에서 파는 와이파이 카드를 구매해서 여기에 적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가지고 매번 로그인을 해야 하는데 충전이 불가능해서 다 쓸 때마다 오랜 시간 줄을 서서 새로 카드를 구매해야 한다. 그러니 길거리에서 몇 배의 값으로 암표(?)를 파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공산주의 국가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하지만. 아무튼 이 인터넷 문제 때문에 여행자는 쉽게 짜증이 난다. 힘들게 카드를 사고 와이파이가 되는 장소에 가도 뭐가 문젠지 쉽게 연결이 안되고 돼도 끊기기가 일쑤다. 무슨 놈의 나라가 국민들이 밤 늦게까지 길거리에서 인터넷 구걸(?)을 하게 만드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밝고 친절하다. 어떻게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저렇게 밝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해맑다. 길거리에서 시비를 거는 불량배가 없는 건 당연하고 잡상인이나 호객꾼들도 ‘필요 없다.’는 말 한마디면 괜찮다며 웃어 보인다. 그러니 까사에서 (쿠바의 일반적인 숙박형태로 민박에 가깝다.) 만나는 현지인들의 친절은 말도 못한다. 말이 잘 안 통해도 하나 하나 도와주고 화려하진 않지만 늘 좋은 식사를 준비해 준다. 잠은 잘 잤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자주 물어보고 늘 친근함을 표시한다. 사실 쿠바에 와서 5일 정도가 지났을 때 여러가지로 지쳐 있었다. 계속되는 여행에 피곤도 쌓였고 쿠바만의 불편함들이 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쿠바는 단연컨대 멋진 나라다.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이 있고 그처럼 친절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쪼리 슬리퍼에 민소매 티를 입고 가방도 가볍게 들고 나왔다. 시원한 물을 한 병 사서 울퉁불퉁한 길을 요리조리 걸었다. 역시 인터넷이 바로 연결이 안 된다. 그냥 이따 하지 뭐 하는 마음으로 금방 자리를 일어났다. 그래도 괜찮다. 흥겨운 음악이 어디서든 들리고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곳이니까. 그건 ‘편함’이라는 기준으로 다 잴 수 없는 매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