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상담심리사의 사적인 일기 _ 두 번째 기록
이상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상심리학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진단의 중요성이다.
진단은 중요하다.
진단에 따라 치료적 접근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욱 강조되는 것은
'진단에 갇혀서는 안 된다'이다.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진단명을 듣고 싶어 한다.
'제가 우울증인가요?', '제가 강박증인가요?'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듣게 된다면 그동안 본인이 경험한 감정상태와 신체상태들이 조금은 납득이 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내가 이유 없이 눈물이 났던 건 우울증 때문이구나...
내가 잠을 잘 못 잔 건 우울증 때문이었구나...
하지만 여기서 함정은
내가 잠을 조금 못 자도, 감정기복이 좀 심해도, 하물며 건강한 감정반응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역시 우울증이구나' 라며 그 안에 갇혀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우울증 때문이 아닌 상태를 꽤 많이 경험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결국 우울증 안에 갇혀버리게 되는 된다.
그래서 진단명은 아주 신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내 상태를 점검해 본다.
내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이 '이상'에 속하는지 '정상'에 속하는지 구분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떤 것을 우울장애로 보느냐,
이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 정상이냐 그렇지 않으냐...
그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현재는 정신질환을 진단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의 심리검사와 면담, 그리고 DSM-5라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이라는 기준을 사용한다.
정확한 명칭은 우울장애.
그리고 우울장애에도 지속기간과 증상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며 , 그 기준은 지금의 사회적 규범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만들어져 있다.
출산을 하자마자 밭일을 하러 나가야 했던 시절에 산후우울이라는 말이 어디 가당키나 했단 말인가.
그저 눈물이 나고 예민해진다면 '밥 좀 든든히 먹어라', '유난시러워라'라는 말을 듣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대사회선 개인의 감정도, 예민함도 그리 가볍게 치부하지 않는다.
당신이 우울한 기분이 일주일에 몇 번 이상 어느 기간 동안 지속되었는지, 수면과 식욕은 어떤지, 흥미나 즐거움의 상태는 어떤지가 우울장애를 진단할 수 있는 질문들이 되기 때문이다.
해서 나에게 묻는다.
나의 우울한 기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네 달 가까이 된 듯하다.
수면과 식욕상태?
매우 잘 자고 잘 먹는다. 새벽수유 때문에 매일 깨야 할 뿐
눈 감으면 곯아떨어지고 밥은 머슴밥을 먹는다.
흥미나 즐거움의 상태?
양호하다. 드라마 틈틈이 잘 챙겨보고 계속 흥밋거리를 찾는다.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을 찾았다.
자살 사고나 시도?
가끔 죽으면 편해지겠다고 생각하나 시도한 적은 없다.
이런 내담자를 만나면 난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
'간단한 질문들로는 알 수 없으니 종합심리평가를 해보는 것이 좋겠어요.'
선생님 전 이미 오염돼서 심리검사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은데요.
'출산으로 인한 우울감일 수 있으니 상담을 받아보는 것은 어때요?'
상담을 꾸준하게 받으러 올 시간이 없어요.
새삼 그동안 시간 내서 꾸준히 상담을 받으러 와 준
모든 내담자들이 존경스러워진다.
이런저런 핑계로 외출조차 하고 싶지 않았을 텐데,
하루에 한 번 무조건 5분이라도 걸으라고 했던 나의 진심이지만 의무적인 말들이 얼마나 가볍게 느껴졌을까.
어떻게든 방법은 찾을 수 있겠지만
내가 외출이 어려운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친정엄마에게 아기를 부탁하고 나갈 순 있겠지만 산후우울로 상담을 받으러 가겠다고 하기에 아직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는 분이기에... 그런 짐은 안겨드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 우울감을 견뎌보기 위해서
글을 쓰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짬을 내어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 구석에 꽁꽁 숨겨두었던, 작가가 꿈이었던 열 살 무렵의 나를 꺼내어보는 위로의 시간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