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만인의 도움이 필요한 일
파랑이가 태어나던 그 순간이 벌써 38일 전이다. 돌아보면 꿈만 같았던 하루. 너무 사적인 글일 수도 있지만, 일생에 어쩌면 한 번뿐인 경험이고, 잊을 수 없는, 잊혀서도 안 되는 기억이기에 생각나는 대로 천천히 적어 내려 가 보려 한다. 그날을 되돌아보니 '사람이 운명의 날은 정해져 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본래 19일 오전 10시 제왕절개 수술을 예약해 두었는데, 아이러니하게 18일 저녁부터 자연진통을 겪어 19일 오전10:40분에 태어났으니 말이다.
18일 오전부터 배가 아팠다. 불규칙했지만, 적당한 시간텀을두고 계속 진통이 왔다. 어차피 다음날이면 수술할 예정이니 하루정도는 참으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도 배뭉침이 가시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았다. 버티고 버티다 오후에 병원도 들렀지만, 아직 가진통같다는 말만 듣고 다시 집으로 컴백. 그치만 저녁을 먹고 난뒤 진통 주기가 점점 짧아졌고, 집에서 내일 수술을 기다린다한들 잠도 못잘것 같아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내원하라고한다. 부랴부랴 짐을 싸서 우리는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나와 달리 침착한 오빠가 있어서 불안감이 덜 했던것 같다.
병원에 가보니 자궁문이 3CM나 열려있다는 깜짝소식을 들었다. 어제만 해도 아기가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수술을 잡은건데 이건 무슨 얘기람. 금식시간 전, 저녁을 먹은지라 바로 수술을 할 수도 없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간호사 선생님께 그럼 어차피 수술도 바로 못하는데 자연분만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놀란 선생님이 물으셨다. 제왕절개를 원하시는게 아니에요? 제왕 날짜를 잡은 이유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보단 자궁문이 안열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다시 물으셨다. 그럼 자연분만 하고 싶으세요? 오래걸리고 아파요. 아셔야해요. 나는 겁을 먹었지만, 어차피 수술도 지금 못하는 마당에 일단 자연분만과정을 겪으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치 앞도 모르고, 13시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배에 태아 심박수와 자궁수축을 볼 수 있는 모니터링 기계를 두개를 달았다. 수축도를 보여주는 파란 그래프는 평온하게 낮은 수치를 보이다가 마치 오르막길을 타듯 주기적으로 숫자가 99까지 올라간다. 그때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고통을 버텨낸다. 초반엔 사실 유튜브에서 본 호흡법으로 오빠와 같이 들숨날숨을 하며 버텨냈다. 하지만 그 주기가 짧아지면서 평정심을 잃어가고 조심스럽게 ‘무통은 언제맞을수있을까요?’를 여쭈었다. 다행히 당직선생님이 와서 무통 주사를 위한 조치를 취해주시고, 이미 출산을 경험한 선배들에게 익히들은 ‘무통천국’이 시작되었다. 그래프가 99를 찍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평온한 상태속에서 오빠와 나는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2시간뒤 점점 고통의 감각이 돌아왔다. 무통을 연속해서 맞을수는 없고, 진통을 어느정도 느껴야 자궁문도 열리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다시 나와의 싸움의 시작. 그래프가 올라갈때마다 손잡아주고, 같이 호흡해준 오빠가 없었으면 나는 진작에 수술시켜달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 와중에 태아 심박수가 떨어지진 않을지 계속 전전 긍긍. 나도 힘들지만, 아기도 그 긴시간이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통 주기가 짧아질때마다 이 시간이 흐르긴 흐를까.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렇게 힘들고 제왕하는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진통을 겪은것에 비해 자궁문이 많이 열리지 않았을때의 좌절감이란.. 1CM가 참 사람 피말리게 한다. 분만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야속할만큼 평온하다. 하지만, 돌이켜생각해보면 그들의 담담함이 분만 과정에서는 필요했다.
분만실 간호사분들의 교대 타임도 바뀌고, 새로운 분들이 출근함과 동시에 내 진통의 강도는 절정에 달했다. 유튜브 호흡법은 개뿔. 아무생각도 안나고 침대 사이드를 붙잡고 버티는 방법 뿐이었다. 몇시간전의 1분과 지금의 1분은 차원이 달랐다. 자궁문이 7-80%가 열리니 이제 힘주기 연습을 하자고 한다. 사실 쉬울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등산으로 비유하자면 (비교가 안되지만) 정상 앞에 완만한 등반길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암벽등반 수준의 바윗길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느낌? 그렇게 좌절하고 있는 와중에 반가운 주치의 선생님이 출근하자마자 분만실로 오셨다. 물론 밤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거의 8개월간 임신의 과정을 지켜봐주신 선생님이 오니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점심밥을 목표로 잘 끝내보자고 따뜻한 눈빛으로 용기를 주셨다. 그 순간 다시 힘을 내보았다.
하지만 힘주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힘을 주는데 이렇게 주는게 아니라고? 거의 막바지인걸 알았지만 포기하고 수술로 바꾸고 싶었다. 왜? 너무 아파서.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힘을 줘도 제자리걸음일것 같은 기분때문에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의 호흡곤란이 올 지경에 모든 간호사분들이 아래 위로 달라붙어서 같이 힘주기를 하고 밀고 하다보니, 갑자기 분만실이 분주해졌다. 본격적인 분만 준비가 시작되고, 주치의 선생님을 호출하고, 보호자는 아이를 만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끝인건가? 싶으면서도 고통은 초절정에 달한다. 선생님은 외래를 보시다 달려오셨고, 아이가 크니 같이 호흡하면서 마지막으로 힘주기를 하자고 하셨다. 잠시후, 묵직한 무언가가 아래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파랑이가 태어난 것이었다. 옆에서는 울고 있는 오빠가 들어와서 파랑이와 첫 대면을 했다. 나는 울컥보다는 이제 다 끝났다는 후련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파랑이가 내 품에안기는데 따뜻했다. 너도 고생했다 정말.
출산은 정말 위대한 일인것 같다. 자화자찬 같지만 정말 그렇다. 살면서 어떤 고통을 더 맛볼지는 모르겠지만 34년의 고통중 최고였다. 다 끝나고나니 13시간의 과정을 함께해준 오빠를 포함해 도움을 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출산은 만인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계속 생각나고, 챙기고 싶고, 사랑해주고 싶은 존재가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이 가장 행복한 일이다. 서빈아 사랑해. 엄마아빠는 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