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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름 Oct 24. 2018

And I'll call you by mine 2

영화 'Call me by your name'에 대한 감상

 'And I'll call you by mine'

 2018년 4월 15일


 영화가 곧 막을 내릴 것 같다. 마지막 상영을 마친 곳도 보았고 개봉한 지 곧 한 달이 다 되어가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도 꽤 오래 상영되었다.) 지금까지 총 네 번을 극장에서 보았다.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보고 또 볼 것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큰 스크린과 고음질로 감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펄먼 교수이자 엘리오의 아버지의 말을 다시 듣기 위해서 가고 또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이렇게 깊고 따뜻한 위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진실되고 진심 어린 위로. 듣고 또 들어도 좋다. 


 일본에서 졸업식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혼자 이 영화를 보러 갔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입국 신고서를 평소와 다름없이 학생이라 적었지만, 돌아올 때는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빈칸을 바라보며 '이제 외국 나갈 때는 뭐라고 쓰지?' 하고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런 작은 고민이 현실이 되고 큰 두려움이 되었을 때, 불안한 미래만이 내가 가진 재산이라고 느껴질 때 즈음 이 영화를 만났다. 나는 누군지,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그 평가는 나에게 타당한 건지, 사랑받을 수 있을지, 사랑을 줄 수 있을지, 도대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 수많은 질문만 던질 뿐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끝없이 고민하고 우울해하며, 때로는 답을 찾았다고 기뻐하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하나 알게 된 건 앞서 적었던 '내가 쫓고 싶은 인생의 순수한 어떤 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 '어떤 것'을 찾을 거라는 것. 그러려고 애써 태어났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매우 싫어하지만, (말할 때마다 자꾸 지는 기분이 든다) 나의 20대 초, 중반은 대부분 불안했다. 우울했고 일어설 수 없었고 겁이 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온전히 살아있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어도, 죽지 않는다.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살아있다. 많은 모험을 하고 싶다. 보고 만나고 사랑하고 느끼고 싶다.


(시험 결과를 걱정하는 나에게 '그 시험 떨어진다고 죽지 않으니까 괜찮아'라고 말해준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엘리오는 이제 막 인생에 홀로 몸이 던져지길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는 집을 떠날 수도, 혹은 다른 사랑을 만날 수도 있다. 자립을 할 수도 있겠고 불행만 닥쳐 올 수도, 고난 없이 늙어 갈 수도 이 모든 걸 반복할 수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감독은 '자신의 삶에 직면할 수 있는가? 엘리오는 사춘기의 끝자락에서 뛰어내릴 준비가 되어있어요. 그 시절에서 완전히 벗어나려 하죠. 성인이 되기 위해서요. 그는 과거에 향수를 느끼면서 뛰어내리길 두려워하고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흥분되고 감동적이기까지 하죠. 엘리오는 타오르는 불 옆에서 이런 감정들을 생각해요. 살면서 스쳐 간 사람들과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죠. 그게 지금의 그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엘리오는 앞으로 자신이 무엇이 될지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마 나는 엘리오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엘리오보다 한참 늦었지만, 대학과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가 받았던 사랑과 위로, 배움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고개를 돌려 잠깐 뒤돌아 볼 수도 있다. 여전히 불안할 테니까. 그래도 몸은 앞으로. 발을 앞으로. 이제 비로소 홀로 뛰어내려야 할 때. 몸소 사랑해야 할 때. 세상과 마주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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