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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some Day to Eat Sep 18. 2018

[김건의 밥투정] 스미스가 좋아하는 한옥

이런 식당도 있어야지

        당위를 규정하는 표현들을 참 싫어한다. 학생이라면 이래야 해, 너는 그러면 안되지, 남자가 그러면 쓰나 같은 것들. 각각의 사람이 동시에 가진 수 많은 속성들, 나로 이를 테면 학생, 아들, 스타트업 멤버, 누군가의 애인이자 친구, 같은 것들이 내 행동을 결정한다면 내게 남은 자유의지란 나에게 부여할 속성을 선택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싫다. 웃는 낯 밑에 항상 숨겨왔던 반골기질 탓인지 아니면 소위 말하는 사회인이라는 것이 될 준비를 해야 하는 학부 막바지의 부담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필이 결코 누군가를 설명할 수 없었으면 한다.

        모순적이게도 외적인 속성에 기대지 않으면 난 무엇에 관해 글 한 줄도 써 내려가기 힘들다. 얼치기로나마 들은 전공이 나를 사회과학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는지 외적인 조건 몇 가지로 대상의 경향성을 추측하게 된다. 지난 목요일에도 역시 그랬는데 식당으로 발길을 향할 때부터 ‘스미스가 좋아하는 한옥’이라는 제목에는 ‘서양 문명에게 인정받은 동양의 미’ 같은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일행에게 동의를 구했다. 가게에 들어선 첫 인상은 내 진단을 확인해주는 듯 했다. 전체적으로는 신식 한옥의 형태를 취하면서 측면의 문이 있었을 부분을 여닫을 수 있는 유리 창 혹은 통유리로 대체한 것이 현대적이고 뻥 뚫린 느낌을 주었다. 디귿자의 건물 가운데에는 자갈이 채워진 빈 공간이 있었고 그 위에 지붕들 사이로 조명을 걸어놓아 연회나 루프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전통적인 요소를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과정이 다소 노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보기에 싫지 않았다. 사실 무척 맘에 들었다. 이때 우습게도 이미 맛까지 예상을 했는데 전체적으로 세련된 이탈리안에 트렌디한 식재료를 부담 없이 같이 느낄 수 있게 하지 않을까라는 소설을 한 편 써냈다. 이 말을 뱉지 않은 게 그날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다리는 줄이 있지는 않은 듯 했지만 꽤 붐비는 데다가 예약 시간보다 살짝 일찍 도착했음에도 창가 옆으로 미리 준비가 되어 있어서 식사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은 신이 나 비프 샐러드와 크림 바질 페스토, 풍기 오일 파스타, 디아볼로 피자를 주문했다. 각각의 요리들은 둘러싸고 있는 건물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양이 풍성해 보였고 평범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식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작정하고 나면 괜시리 더 깐깐해지고 눈높이를 높이게 된다. 특히나 지금처럼 기대가 풍선인 양 부풀어 떠다닐 때는 더더욱. 음식들은 나를 갸우뚱하게 했다. 앞서 말한 공상과 전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맛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이렇게 조리한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계속 짊어진 식사였다.

        샐러드는 재료의 개성이 살아 있었고 신선했다. 다만 하나의 요리라기 보다는 신선한 재료의 합에 가깝게 느껴졌다. 청록색 채소 본래의 쓴 맛이 강하게 다가왔는데 그것이 고기, 버섯, 올리브 등과 어우러지지 않아서 입안은 마치 재료들이 개성을 뽐내는 오디션 같았다. 디아볼로 피자는 살라미의 향과 짭조름한 맛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지만 내겐 너무 매웠다. 심지어 내가 고른 메뉴였는데. 풍기 오일 파스타는 면 자체에 묻어나는 맛이 약해서 입에 버섯을 같이 넣었을 때만 내가 생각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개중에서는 크림 바질 페스토가 가장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해산물들은 신선하고 적당히 익어서 그 자체로 다른 보조가 필요 없었고 면은 크림 맛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담백하게 먹을 수 있었다. 

        빈 접시를 앞에 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이 보다는 더 나은 것을 생각했는데 입 안이 허전했다. 찍히는 금액을 보고서 생각을 좀 바꿀 수 있었다. 배경에 도취 돼서 이런 식당이면 이 정도는 요리는 선보여야지 같은 편견에 잡혀있었던 것. 약간 부끄러웠다. 내려놓고 보니 여전히 맛 좋은 식사라는 평은 내릴 수 없겠지만 이런 개성의 이런 취향의 맛도 있구나 끄덕일 정도는 되었다. 한 시간여 동안 꽤 좋은 풍경을 눈에 담는 것으로도 괜찮지 않나 싶었다. 식사 끝의 허전함도 아무 디저트나 먹기 좋은 텁텁함 없는 기분으로 느껴졌다. 화창한 날의 관용일지도 모르겠지만 맛과는 또 다른 결이 마음에 들었다.

        김은 좀 샜지만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해서 미안합니다. 저도 한옥이 맘에 들었어요 스미스씨.


★★★ 하루가 특별해지는 식사

★★☆ 좋은 식사

★☆☆ 평범한 식사 

☆☆☆ 최악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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