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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wesome Day to Eat Sep 18. 2018

[김건의 밥투정] 능라도

낯선 차가움

        우리집 이여사님과 나의 음식 취향은 무척 다르다. 그래서 가족 외식 때 간혹 애를 먹곤 하는데, 씹는 맛이 있는 맵고 뜨거운 요리 국적으로는 한식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향신료 범벅에 기름진 미국 맛을 좋아하는 내가 찾은 합의점 중 하나가 평양 냉면이다. 위에 적힌 해당 사항에 평양냉면은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 듯 하지만 우리 모자는 그 깔끔한 온도를 좋아했다. 

        초장기 무사고 장롱면허의 이여사님과 오늘 도로주행에서 낙방한 나는 주로 멀지 않은 분당의 평양냉면 집들을 이따금 공략하는데 지난 화요일의 타깃은 서판교에 있는 능라도였다.

도착한 시간은 다섯 시 반 경이었다. 이른 외식에는 웨이팅이 없다는 장점과 가게 매출과 이해관계가 닿지 않는 종업원의 비공식적인 휴식을 방해한다는 단점이 공존하는데 공교롭게도 그때의 식사에서는 후자가 돋보였다.

입구에서 안내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는 좋았으나 왠걸, 종업원 분들의 담소는 넓은 공간의 얼마 채워지지 않은 테이블에서 너무나 크게 느껴졌고 심지어는 메뉴도 잘못 전해져서 자칫하면 냉면대신 만두를 먹을 뻔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게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고 그 동안 삐딱해진 나에게는 의문을 가질 거리가 필요했는데 음식에 안 맞게 빨리 식탁에 도착한 놋 식기가 그 대상이 되었다. 

문제의 놋식기

        평양냉면 집에서 놋 그릇을 쓰는 걸 가지고 트집 잡는 것만한 억지는 없지만 나는 놋그릇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특유의 묵직함과 탁한 광택도 그닥이지만 특히나 칠판 긁는 소리를 유발하는 질감은 나처럼 부주의한 사람에게는 칠칠지 못함을 드러나게 하는 요소다.

        타고난 떼쟁이답게 이여사님께 여쭌 결과 보냉 기능이 탁월하단다. 빠르게 수긍. 그래도 삐딱한 마음가짐은 여전했다. 음식이 나오고서야 주의를 돌릴 수 있었다. 

        제일 눈에 띈 점은 지단으로 올라가 있는 계란이었다. 설렁탕에 절대 김치를 담그지 않고 만둣국 국물에 만두소가 섞이는 것이 싫어 앞접시에 건져 먹는 순수한 국물에 대한 집착이 있는 나에게 계란 지단은 꽤 큰 점수를 얻었다. 심지어 계란을 부친 것 같은데도 기름기가 국물에 안 떠있는 것은 꽤나 연구를 많이 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평양 냉면의 맛을 논하는 것은 사실 조심스럽다. 음식에도 매니아층이 두터운 음식이 있다 하면 평양냉면일 것이고 이 소재로는 이미 너무나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 있어 그런 맥락에서 배제된 내가 뜬금 없이 의견을 쓴다 하면 얕은 내공이 들추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이다. 미식가의 전유물을 내가 감히 평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평양냉면은 분명 매력 있는 음식이지만 그렇게 작가주의적인 음식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서 요즘 평양냉면에 관한 글들을 보면 수능 국어 문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과몰입한 느낌. 그래야 매니아인거겠지. 

잡설이 길었던 이유는 감히 혹평을 하고자 함이다. 음식이 나오고부터 국물을 비우기까지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마저도 이 요리는 나를 잘 채워주지 못했다. 

        육수는 내가 딱 좋아하는 만큼 짰다. 육향이 강하지 않은 것도 싫지 않았다. 그런데 면은 지나치게 밍밍했다. 간이야 원래 그런 음식이지만 풍미가 어딘가로 증발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메밀 향이 크게 풍기지 않고 전분이 많게 느껴지는 것도 취향에 맞지 않았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갈수록 밍밍함을 더해가는 게 트랜드인데 내가 뒤떨어져 있는 것인가라는 음모론 같은 의구심마저 들었다. 처음 평양냉면을 먹을 때도 이렇게 심심함을 느끼진 않았던 듯 싶은데… 중간중간 고기와 함께 면을 베어 물 때만 내가 아는 그 맛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채워지지 않은 식당의 공간감은 오로지 종업원의 대화, 놋그릇 설거지 하는 소리, 양도 얼마 되지 않는 냉면 한 그릇에서 어떻게든 한 가닥 즐거움을 찾으려 하는 나의 고뇌로만 채워졌다.

        전에 미학 쪽 교양수업에서 들은 불편하게 하기라는 기법이 생각났다.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끌고 와 감상자의 호기심과 의문을 증폭시키는 그런 블라블라였던 것 같은데 이 관점에서라면 이날의 저녁은 성공이었다, 거기에서 나에게 떨어지는 쾌는 없었지만 혼란은 길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여사님과 평을 나누었다.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으시단다.

        두 가지 안도를 했다. 내가 놋 식기에서부터 불만스런 세계에 빠져 편향된 감상으로 식사를 망친 건 아닌 듯 하다는 것과 친아들이 확실하다는 것. 입맛 어딘가에는 유전이란 게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낯선 미식의 세계에서 돌아온 느낌은 편안했다.


★★★ 하루가 특별해지는 식사

★★☆ 좋은 식사

★☆☆ 평범한 식사 

☆☆☆ 최악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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