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머무는 여행을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스위스는 버킷리스트이고, 언젠가 꼭 가야 할 꿈의 나라일지도 모른다.
부모님께 효도 여행으로 선물하고 싶은 곳,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 싶은 낭만의 나라..
하지만 나에게 스위스는 처음부터 그런 ‘선망의 대상’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유럽의 화려한 도시들처럼 볼거리와 ‘wow’ 포인트가 넘치는 여행지를 더 좋아했고,
왠지 모르게 스위스는 ‘혼자 가기엔 너무 고요한 나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스위스는 나에게 ‘여행지’보다는 조용히 스쳐 지나갈 예정이었던 쉼표 같은 나라였다.
그런데 인생이 늘 그렇듯,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이 가장 깊은 인연으로 남는다.
2020년 2월, 그저 잠시 머물러 보자는 마음으로 떠난 스위스.
그때만 해도 한 달쯤 머물다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잠시’가 내 삶의 방향을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예상치 못한 4개월의 머묾, 그리고 매년 다시 그곳으로 향하게 된 나.
아마도 그것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위스의 공기는 처음엔 낯설 만큼 차가웠다.
모든 것이 정돈되고 조용한 나라에서 나는 오히려 내 안의 복잡한 감정들과 마주해야 했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이고, 낯선 일상 속에서 희미하게 외로움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감정들 사이로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 만남들이 내 스위스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한 스위스 친구와의 우연한 인연으로 시작된 작은 여행은 이후 내 삶의 여정을 함께 그려주는 따뜻한 선율이 되었다.
기차역에서 나눈 짧은 인사, 산책길에서의 대화, 이름조차 모르는 동네 카페 주인의 웃음까지.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스위스의 ‘숨결’이었다.
누군가는 스위스를 ‘자연의 나라’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느낀 스위스는 사람의 온기가 깃든 자연의 품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단순히 ‘여행자’로 머물지 않았다.
매일 산책길을 걷고,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창밖으로 쏟아지는 빛의 각도에 따라 하루를 기록하며 그곳의 리듬에 조금씩 맞춰갔다.
그건 ‘살아본다’는 감각이었다.
물가가 비싸고, 자연 말고는 할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안다.
스위스는 단지 ‘보는 나라’가 아니라 느끼는 나라라는 것을..
잠시 멈춰 서서 바람의 속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속에서 삶의 결이 들려온다.
설렘을 품고 시작했다가 좌절을 맛보기도 했고, 현실의 벽 앞에서 울기도 했지만 그 모든 감정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나를 위로해준 것은 ‘사람’이었다.
스위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묵묵히 나의 하루에 스며들었다.
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함께한 식사 한 끼가 내게는 여행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그렇게 스위스는 내게 ‘사랑이 머문 나라’가 되었다.
여행지였던 곳이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곳에서의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
언젠가 다시 그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면 그때의 온기와 웃음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이 책에는 그때 내가 만난 사람들, 그들이 보여준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배운 ‘살아가는 법’이 담겨 있다.
화려한 관광지의 이야기보다, 평범한 하루 속에 숨어 있던 ‘머뭄의 순간들’을 전하고 싶었다.
여행은 떠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끔은 머무는 용기가 여행을 완성시킨다.
그곳의 숨결에 스며들고, 그 속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스위스가 단지 사진 속 풍경이 아닌, ‘머뭄이 있는 여행지’로 다가가길 바란다.
그곳 숨결 따라, 나처럼 당신도 살아보기 시작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