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따시 May 13. 2022

스파이, 전쟁, 로맨스, 성공적?

영화 [민스미트 작전] 

전쟁과 스파이 그리고 로맨스가 결합된 영화 [민스미트 작전]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앞서 이야기한 전쟁, 스파이, 로맨스라는 것이 하나의 영화로 그려지는 것이 어울릴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지만, 영화에서는 나름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히틀러를 속이기 위해서 연고 없는 시신을 영국에서 중요한 요직에 있는 사람으로 위장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문서가 기밀문서인 것 마냥 포장을 하여, 의도적으로 독일군이 그 문서를 읽게 하려는 말 그래도 미끼 작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스파이 작전이 ‘어떻게’ 로맨스와 연결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인 것이다. ‘민스미트’ 작전과 로맨스의 공통점은 바로 ‘스토리’에 있다. 적을 속이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민스미트’ 작전 또한 무연고 시신에 어떠한 사연을 부여하여, 독일군과 히틀러가 그것을 믿게 하느냐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한다. 말 그래도 인물들은 스토리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 스토리의 중심에는 바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있다. 군인으로 위장을 하였기에 그의 가슴속에서는 아내의 사진으로 쓸 사진이 필요했고, 그 사진의 인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 인물이 극 중 주인공인 ‘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과 함께 일하는 ‘몬태규’와 ‘첨리’의 미묘한 삼각관계가 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사람은 자신의 상태의 경험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최근에 시청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에서도 인생에서 풀지 못할 난제라는 키워드에 어려운 집안 형편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자신의 팔자’를 떠올린 것과 반대로 부유한 인물은 ‘환경 문제’를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즉, 하나의 사건이나 키워드를 두고 각 인물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반영하여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민스미트 작전]에 등장하는 이야기도 그렇다. 무연고 시신을 ‘윌리엄스’라는 인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서 스토리를 부여하는 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각 인물들은 자신의 처한 상황에 따라서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곤 한다. 그리고 그 의견 속에는 미묘한 자기 고백들이 들어있는 것이 이 영화의 포인트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각 인물들의 미묘한 관계 변화가 이 영화의 핵심이 되는 것이고, 일을 핑계 삼은 로맨스들이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것을 모두 느끼면서 영화를 볼 관객은 많이 않으리라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속도감이 있는 편이기에 의미 있는 장면들이 많지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만한 시간 여유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 그 경치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라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관객들의 평 자체는 그리 좋지 못하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관람 후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언택트 톡’ 예매를 추천한다. 이 해설을 듣게 된다면, 영화에 대한 진가와 ‘이동진’ 평론가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007 시리즈]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문득 최근 전쟁 영화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거의 전쟁 영화를 생각해보면, 승리한 전쟁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의 짜릿함과 쾌감을 주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제작되는 전쟁영화는 실패한 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가감 없이 다루고 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의 참혹함을 다루는 것에 집중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렇기에 전쟁을 상당히 리얼하게 다루거나, 상당히 무미건조하게 다루는 등 전쟁 자체를 즐길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많이 보인다. 그렇기에 전쟁영화라고 하더라도 전쟁이 소재가 되는 것이지 전투 장면이 주로 등장하는 영화의 빈도수가 적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덩케르크] 일 것이다. 이 영화는 후퇴 작전을 그린 영화다. 그리고 전투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영화다. 

국제적으로도 전쟁을 통해서 무고한 청년을 잃었다는 표현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개개인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국가의 분쟁으로 인해서 아무런 잘못이 없는 개인이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작 전쟁의 윈인이자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높은’ 사람이라는 작자들은 앉아서 메시지만 전달할 뿐이다.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국가를 위해서 싸우겠다며 참전한 군인들의 희생이 영화의 주된 사건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전쟁의 원인은 형제간의 권력 싸움이었고, 누군가의 잇속을 위한 것이었다.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에 등장한 것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인 미국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하였고, ‘시리아’의 내전으로 인한 무고한 피해자들이 생기는 등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해서 희생되었다. 

과거부터 유럽은 수많은 전쟁을 치러온 국가다. 그렇기에 전쟁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렇기에 유럽의 인구는 급격하게 줄어들어 사람이라는 자원이 중요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 사고방식들이 지금의 유럽을 만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많은 국가들이 전쟁을 치르면서, 과연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희생이 국가를 위한 영광스러운 희생으로 생각하여, 자국의 승리를 자랑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그들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인하여 우리가 지금을 살고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 즉,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가치관의 변화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영화 [민스미트 작전]의 후반부에 등장한 장면을 보면, 전투 장면에서 분명 많은 인원이 죽은 것으로 보였지만, 이후 보고를 받는 장면에서는 소수의 희생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리고 잠시 좋아하는 듯하였지만 그들은 마음 편하게 좋아하지는 못한 듯한 모습이었다. 승리는 했지만 분명 잃은 것도 많다. 

새로운 것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수많은 전쟁을 치러온 인류가 얻은 교훈이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독은왜 다시 만들려고 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