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문턱'과 '영화 다움' 사이에서
개봉 전 시사회부터 반응이 좋았던 탓에 기대감 속 개봉한 영화 [좀비딸]은 개봉 첫날부터 43만이라는 흥행을 기록했지만, 정작 저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좀비 코미디라는 장르와 조정석 배우라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단 하나의 견고한 줄기도 없이 흩어진 이야기와 모호한 장르 정체성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좀비딸]이 좋은 흥행 스코어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영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서 오는 차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이는 [좀비딸]이 단순한 오락 영화의 실패를 넘어, 오늘날 수많은 영상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영화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저는 [좀비딸]이 '좀비 코믹 가족 영화'를 표방했지만, 그 어떤 장르의 맛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좀비보다는 가족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고 언급했지만, 정작 가족 서사에 할애한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초반, 아버지 정환과 딸 수아의 부녀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기보다, 좀비 발생이라는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서사가 쌓일 틈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서사적 빈곤은 장르적 불균형으로 이어집니다. 좀비 영화 특유의 스릴과 긴장감은 희미했고, 코미디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겉돌았습니다. 마치 밥, 고명, 고추장의 양이 모두 똑같아 제맛을 잃은 비빔밥처럼, 각 장르적 요소들이 따로 놀며 영화의 톤을 미지근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중요한 설정이 있었는데도 그로 인한 갈등이나 깊이 있는 감정이 거의 없어서, 저는 영화가 그저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고 느꼈습니다. 무언가 한 장르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장르가 양념과 같은 역할을 했다면 더더욱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마치 [핸썸가이즈]처럼 말이지요.
영화의 견고한 줄기가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은 감독의 연출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이 매 장면마다 통일된 톤을 유지하지 못하고 각자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는 감독이 배우들에게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 자체도 아쉬웠는데, 특히 주연 배우의 배역 소화가 미진하여 저는 캐릭터에 몰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의 줄기를 단단히 잡아준 [핸썸가이즈]와 비교했을 때, [좀비딸]은 연출의 부재가 배우들의 잠재력까지 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좀비딸]을 보면서 저는 기존 영화의 전통적인 문법에서 벗어난 파편적인 서사를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고전적인 기승전결 구조, 인과관계에 따른 개연성, 캐릭터의 입체적인 성장이라는 '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서사 쌓기에 시간을 쓰는 것을 답답하게 느끼는 현재의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시도일 수 있겠지만, 저는 '영화적' 완성도를 담보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상 콘텐츠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그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영화와 드라마(16부작) 정도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회차 구성이 다양한 OTT, TV 드라마, 웹드라마, 숏폼 드라마, 코미디 스케치 등 형태가 다양해졌죠. 그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영화도 웹드라마처럼 소비되거나 나중에 숏폼 시장에서 2차 수혜를 받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영화라는 콘텐츠에 '영화라면 이래야 한다'라는 일종의 규칙, 즉 '영화의 문법'을 무의식적으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규칙성이 중요한 시조와 같은 것이죠. '굳이 글자 수까지 맞춰가면서 시조라는 틀로 표현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영화에 대입해 보면, 굳이 기존의 틀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영화 [마인 크래프트]처럼 세계관 속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는 구성만으로도 괜찮은 반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좀비딸]의 흥행은 영화의 퀄리티를 생각하면 의외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정부 할인 쿠폰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런 반문이 가능합니다. '정부 할인 쿠폰을 [좀비딸]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왜 [좀비딸]이 흥행 1위냐?' 그 이유는 바로 가장 '문턱이 낮은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화의 낮은 문턱이 흥행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야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영화라고 하더라도 입소문은커녕 평가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영화의 낮은 문턱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일이죠. 이런 관점에서 포스터나 영화 제목만으로 어떤 영화인지 단번에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좀비딸]은 첫 이미지에서부터 좀비와 코미디, 가족 영화라는 것이 단번에 느껴집니다. 거기에 조정석 배우의 코미디 연기가 [파일럿]을 통해 검증되었기에, 영화를 선택하는 데 망설임이 적습니다. 반대로 [전지적 독자 시점]처럼 포스터나 제목만 봐서는 감이 잘 오지 않는 영화는 먼저 본 사람들의 반응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죠. 그런 면에서 [좀비딸]은 관객들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영화였고, 이것이 흥행에 주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좀비딸]이 남긴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의미심장합니다. 우리는 [좀비딸]의 흥행을 보며 파편화된 콘텐츠를 선호하는 시대에 '영화다움'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됩니다. 영화가 지향해야 할 견고한 서사와 미학적 완성도를 포기한 채, 오락적 기능에만 충실한 콘텐츠가 과연 미래에도 '영화'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 [좀비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앞으로 영화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어떤 방향을 응원해야 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흥행과 비평 사이의 흥미로운 교차점에 서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