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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원작의 굴레를 넘어선 영화적 쾌감

by 따따시


1. 기대와 첫인상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웹소설 원작에 웹툰을 거쳐 스크린으로 옮겨진 작품입니다. '신과 함께'를 제작했던 리얼라이즈 픽쳐스가 제작을 맡았죠. 필자는 리얼라이즈 픽쳐스 원동연 대표의 "영화는 진짜 같은 가짜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명(회사의 이름과 소임)에 깊은 신뢰가 있었고, 이 영화야말로 그 사명에 부합하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 원동연 대표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극장에 왜 갈까요? '나에게 없는 것을 보기 위해' 가는 거다. 판타지가 중요하다. 리얼리티만 쫓아가는 한국영화가 답답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는 영화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드러내는 지점입니다.

개봉 전 원작 팬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 반응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했으나, 필자는 오히려 그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일반 대중은 분명히 흥미를 느낄 것이라 예상했으며, 현재 분위기는 필자의 예측이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상반된 반응이 나타나는지, 그리고 이 영화가 지닌 매력은 무엇인지 함께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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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매체 전환의 필연성과 대중성 확보 전략

원작 팬들이 영화에 만족하기 어려운 것은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소설은 상상력의 폭이 무한합니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지만, 영화는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매체이기에 시각적인 한계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는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명확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명시성의 문제이며, 기술적인 제약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따라서 영화는 원작을 그대로 옮길 수 없고, 필연적으로 절충을 감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매체가 달라진다는 것은, 그 매체에 맞게 '재해석'이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를 민트초코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원작 소설의 진한 민트초코 맛을 기대했던 팬들(민초단)은 '이게 민초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일반 대중은 '생각보다 괜찮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원작을 모르는 관객 입장에서는 방대한 세계관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겁지만, 이 영화는 그 안에서도 재미와 몰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원작 팬들이 비판하는 지점 중 하나인 캐릭터 설정 붕괴 역시 이러한 매체적 한계와 대중성 확보를 위한 필연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칫 캐릭터가 너무 '찐따'처럼 나오거나, 감정적인 서사를 깊이 있게 다루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방대한 세계관의 시작이 되는 영화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좋은 피날레를 위해 지루한 초반을 감수하는 것은 소수 관심층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 평소 영화를 한두 편 볼까 말까 한 일반 대중에게는 '지루한 영화'로 평가될 위험이 큽니다. 이는 곧 시리즈 제작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며, 투자 유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더 많은 연령층에게 공감될 수 있는 이야기를 선택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한국 영화 시장에서는 마니아층만을 타깃으로 한 영화가 성공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넷플릭스 작품들을 마니아층을 타깃으로 하기가 수월한데…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필자가 봤을 때 이 영화는 주어진 매체 안에서 최고는 아닐 수 있지만, 최선의 구현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특히 원작의 방대하고 복잡한 서사와 설정을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 효과적으로 압축하고 시각화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영화의 첫인상은 바로 '보여주는 것'에 대한 압도적인 집중입니다. '신과 함께'처럼 뛰어난 CG를 활용하여 이질적인 세계관을 생생하게 구현하고, 관객을 빠르게 몰입시킵니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게임 세계로 진입하는 상황을 빠른 템포로 그려내 다른 생각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주인공 김독자가 이미 소설을 통해 세계관을 알고 진입한다는 설정 또한 관객이 혼란 없이 몰입하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흔히 "관객은 이미 이 세계에 빠져들 준비가 되어있으니, 영화는 그 몰입에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관객들의 몰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합니다. 명확하게 제시되는 세계관의 규칙들과 현실 세계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계관은 관객이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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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화의 개성과 메시지, 그리고 기술적 성취

방대한 원작의 서사를 영화는 함축적으로 잘 연결하고 유기적으로 풀어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나열하기보다 '한 발짝씩' 관객을 세계관으로 인도하며 자연스러운 몰입을 유도합니다. 이 영화는 전체적인 세계관 이해를 돕는 선에서 이야기를 형성하며 대중성을 확보했습니다. 물론 대중성을 좇다 보면 이야기가 밋밋해질 수 있지만, '전지적 독자 시점'은 그 중간점을 정말 잘 찾아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다소 클리셰적이고 낭만적인 요소들이 이 영화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모든 요소를 강조하면 결국 아무것도 강조되지 않듯이, 영화는 특유의 개성을 부각하기 위해 주변 요소를 클리셰로 단순화하거나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관객에게 기억에 남는 장면을 선사했습니다. 이는 마치 '범죄도시' 시리즈가 초반부터 강력한 액션과 명확한 캐릭터로 대중성을 확보하며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확장한 것과 유사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중적인 밋밋함보다는 특별한 점 하나가 존재하여, 실패하더라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만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된 목적이 심오한 메시지나 비평적 깊이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일관되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바로 "혼자 살아남기보다는 다 같이 살아남는 것을 고민하자."는 것이죠. 평범했던 김독자가 '전지전능한' 지식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서사는 매력적이며, 이는 단순한 협동을 넘어 '낭만 같은 자그마한 희망의 불씨'를 이야기합니다. '오징어 게임'처럼 '우리끼리 싸우지 않고 위를 보라'는 메시지와, 게임을 아는 자가 공략하는 듯한 서사 방식은 흡사 '게임'을 플레이하는 듯한 흥미를 유발합니다. '오징어 게임'이 현대 사회의 경쟁 구도를 은유하며 저항의 메시지를 담았듯, '전지적 독자 시점' 역시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힘으로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는 가치를 '게임'이라는 틀 안에 담아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게임적 접근은 '덕후'들에게 어필할 법하지만, 실제로는 대중이 더 열광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게임적 세계관이 대중에게도 널리 익숙해졌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영화는 서사와 감정선의 깊이를 일정 부분 희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시간적 제약과 '시각적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획 의도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절충입니다. 감정의 깊이를 쌓을 공간이 부족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클리셰적인 부분에 더 치중한 것입니다. 리얼라이즈 픽쳐스가 '신과 함께'에서 보여줬듯, 이 영화 역시 한국 영화의 기술적 발전을 이끌 잠재력이 엿보이며, 향후 액션 표현의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것입니다.

필자는 같은 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두고 경쟁했던 '기생충'과 '1917'을 비교했을 때, 개인적으로 ‘1917’이 좀 더 영화다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기생충'이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한 서사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라면, '1917'은 '영화여야만 하는' 연출과 스타일을 보여줬습니다. 소설이나 웹툰, 만화, 심지어는 드라마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본연의 가치'를 선사했습니다. 필자는 '전지적 독자 시점' 또한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본연의 감각적 경험과 희열을 충분히 만족시켜 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연출보다는 기획과 제작의 퀄리티가 높으며, 영화로서 가져야 할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4. 최종 평가와 의미

결론적으로 제작자는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희망과 즐거움, 그리고 재미를 선사하고자 했을 것이며, 그 의도는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합니다. 영화 속 인물의 성장 서사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대중성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시각적인 쾌감이 강조되는 IMAX나 돌비 비전 같은 특별관에서 관람할 때 더욱 큰 만족을 선사할 것입니다. 필자는 한국에서 이 정도 퀄리티의 영화, 즉 '한류 영화'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영화로서 마땅히 보여줘야 할 감각적인 즐거움과 희열을 충분히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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