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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을 보고 난 뒤

제임스 건이 제시한 DC의 ‘새로운 시작’과 대중성 사이의 줄타기

by 따따시


⚠️ 이 글은 영화 [슈퍼맨]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슈퍼맨]은 기존 DC 팬들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질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일각에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색채가 묻어난다고 평가하지만, 단순한 모방이라고 보기엔 제임스 건 특유의 연출과 서사 구조가 분명히 작동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를 통해 입증된 그의 연출 역량은, 이번 영화에서도 ‘감독 중심 영화’가 가지는 에너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1. 성장하는 영웅, 감정선을 가진 슈퍼맨

이번 [슈퍼맨]은 기존의 ‘절대적 존재’로서의 슈퍼맨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제 막 영웅으로서 첫걸음을 내딛는 초기형 슈퍼맨을 그린다. 강력한 히어로보다는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인물을 중심에 두고, 대중성과 정서적 몰입을 염두에 둔 설계가 돋보인다.

슈퍼맨은 영화 속에서 약점을 드러내고, 심지어 첫 패배까지 경험한다. 일부 팬들은 "너무 약해졌다"며 아쉬움을 표하지만, 이는 능력치 하락이 아니라 서사적 성장의 발판으로 보아야 한다.

마블의 [캡틴 마블]이 시작부터 압도적인 힘으로 팀 서사의 균형을 흔들었던 사례를 떠올리면, 이 영화의 방향성은 전략적으로 더 안정적이다. 관객은 ‘완성된 슈퍼맨’이 아니라, ‘강해지고 있는 슈퍼맨’을 따라가며 그와 함께 성장하게 된다. 장기적인 DC 프랜차이즈의 출발점으로써 꽤 설득력 있는 선택이다.



2. 인간성과 정체성: 뿌리가 아닌 관계에서 태어난 영웅

영화는 슈퍼맨(클라크 켄트)의 인간적 면모와 정체성 탐색의 과정에 깊이 천착한다. 초반 그는 크립톤 친부모의 메시지를 통해 위안을 받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의 양부모가 남긴 영상에 더 깊은 감정적 울림을 느낀다.

이는 단순한 감정선이 아니다. 영화는 “뿌리가 나를 정의하는가, 아니면 내가 살아온 환경과 관계가 나를 만드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미국 서사 전통의 ‘혈통과 숙명’ 중심 서사와는 거리를 두고, 정체성이란 결국 ‘경험과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 결과, 이 영화 속 슈퍼맨은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감 가능한 한 사람으로 다시 쓰인다. 관객은 초인적인 능력을 경외하기보다는, 그의 내면과 성장에 집중하게 된다.



3. 자극 앞에서 흔들리는 진실: 현대 사회에 대한 풍자

[슈퍼맨]은 히어로 영화의 외피 속에 현대 사회의 단면을 담아낸다. 슈퍼맨의 선행은 한 순간의 자극적인 제보 앞에서 무너지고, 사람들은 사실 확인도 없이 등을 돌린다.
가짜 뉴스, 음모론, 자극의 소비 — 이 영화는 이러한 요소들이 ‘진실’보다 먼저 작동하는 현실을 묘사한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도 기자들은 현장을 지키고, “전할 가치가 있는 진실이 있다”는 신념은 강하게 강조된다.
슈퍼맨의 여정도 결국 ‘강함’의 문제가 아니라, 그 힘을 어떻게 책임지는가의 문제로 수렴된다. 능력보다 태도, 위치보다 윤리. 전통적인 메시지를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결론: 기대 이상은 아니지만, 다시 기대할 수 있는 시작

[슈퍼맨]은 제임스 건이 기존 DC 영화의 무게감을 걷어내고, 새로운 서사의 물꼬를 트기 위해 선택한 첫 걸음이다. 대중성과 인간적인 정서를 섬세하게 엮은 이번 시도는 ‘완성도 높은 영화’라고 하긴 어렵지만, ‘다시 기대해볼 수 있는 DC’라는 인상을 주기엔 충분하다.

이 영화 속 슈퍼맨은 아직 전설이 아니다. 하지만 전설이 되기 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DC는 오랜 시간 동안 대중의 기대를 져버렸지만, 이번엔 적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기대 이상은 아니었지만,
다시 기대할 수 있게 만든 영화.
지금 DC에 필요한 건 바로 그 한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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