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리뷰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첫인상부터 꽤나 신선했다.
소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만든 이 작품은 ‘뉴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엿볼 수 있었던
만화적 작화와 실험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와서, B급 감성임에도 독특한 매력을 뽐냈다.
특히 실사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애니메이션 환경 덕분에, 다양한 시도들이 가능했을 것이다.
스토리 자체는 특별하진 않았지만, K팝 노래와 안무, 전통문화적 디테일 같은 요소들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감독이 K팝과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충분히 갖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생각은 이거다.
“이 영화, 한국에서는 절대 못 만들어진다.”
단순히 K팝을 다뤄서가 아니다.
이런 기획이 한국에서 나왔다면, 과연 누가 투자를 했을까? 누가 나서서 만들었을까?
관객들조차 ‘잘 만들었을까?’보다는 ‘망신만 안 당했으면’ 하는 걱정을 먼저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국 영화가 새로운 문화를 다루는 방식은, 솔직히 별로였으니까.
이 영화가 성공적으로 보였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K팝 아이돌의 세계관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엑소의 초능력, 에스파의 메타버스, 드림캐쳐의 다크 판타지.
K팝 아이돌 그룹들은 각자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해, 음악과 퍼포먼스에 녹여낸다.
이 영화는 그런 K팝의 본질적인 특징을 ‘악귀 사냥꾼’이라는 컨셉과 결합해 냈다.
예를 들어, 악귀를 쫓는 걸그룹 ‘헌트리스’와
저승사자 콘셉트의 보이그룹 ‘사자보이스’.
이런 설정은 단순히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팬덤 문화와 케이팝의 구조를 잘 이해한 결과다.
이건 단순히 ‘K팝을 써먹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깔린 문화적 문법을 정확히 파악한 뒤 상상력으로 확장한 시도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한국 콘텐츠 업계는 다르다.
여전히 아동 타깃 애니메이션 중심이고, 성인 관객을 위한 실험적인 시도는 드물다.
‘퇴마록’이나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 '돼지의 왕' 같은 예외적 사례가 있긴 했지만,
그것들이 주류 흐름을 바꿨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뛰어난 애니메이터들이 국내 대신 해외 시장을 선택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유는 단순하다.
“돈 되는 것만 하고 싶다”는 산업 구조,
그리고 “새로운 시도는 리스크니까 하지 말자”는 문화적 분위기.
소니처럼 기술과 예술을 실험하며 쌓아가는 선순환 구조는, 한국에선 아직 낯설다.
이런 경직된 분위기는 젊은 세대의 문화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재는 가져오지만, 맥락은 모른다.
‘왜 그게 인기 있는지’는 관심 없고,
그 문화를 만든 사람들의 생각이나 정서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젊은 세대가 유튜브를 선택하는 이유, 영화에서 제대로 본 적 있는가?
대부분은 이렇게 치부한다.
“재밌어 보여서, 혹은 돈이 되니까.”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현실이 있다.
경직된 직장 문화, 불안정한 미래,
자율성과 수익 가능성, 정서적 소통에 대한 갈망.
이런 것들이 모두 얽혀 있다.
그런 배경을 외면하고
유튜버를 그저 '백수 느낌 나는 이상한 사람'처럼 묘사해선,
현실 감각도 공감도 얻기 어렵다.
그 결과?
진심 없이 다룬 콘텐츠는 망하고, 다음 기획은 또 못 나가고,
모두가 안전한 길만 고르게 된다.
그리고 그 바탕엔
“실수하면 안 된다”는 한국식 문화 코드가 있다.
작은 비판에도 작품은 물론 창작자까지 매장될 수 있다는 공포.
그래서 낯선 걸 시도하지 않는다.
모두가 좋아할 것만, 모두가 익숙한 것만 만든다.
이 경직성은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연예계 전반이 안고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돌을 대하는 기성 연예인들의 태도다.
모 영화제에서 아이돌 그룹이 공연할 때,
앞줄 배우들이 뻣뻣하게 박수도 안 치던 장면이 회자된 적이 있다.
그건 단순한 예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는 다른 세계”를 깔보는 무의식적인 태도,
즉 문화적 위계 의식이다.
그래서 피식 대학의 ‘김민수 배우’가 터졌다.
그 캐릭터는 한국 연예계의 가식과 이미지 관리 강박을 찌른다.
진짜보다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들.
스태프들은 ‘배우님’에게 모든 걸 맞추고,
대중은 그들에게서 더 이상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이 한때 인기를 끌었던 것도,
연예인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대중의 욕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급 인테리어, 해외여행, 소비 중심 콘텐츠가 되면서
초심을 잃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젊은 세대는 그 모든 걸 “가식적이다”라고 느낀다.
그렇다면, 그 감각을 이해하지 못한 콘텐츠는 어디로 가게 될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단순한 K팝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문화적 이해, 창작자적 상상력, 그리고 진정성이 있었다.
이걸 한국 영화계가 그대로 베끼긴 어렵다.
겉만 따라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국 콘텐츠가 진짜 발전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유행이나 수익보다
문화와 세대에 대한 공감과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짜로 이해하고, 진짜로 좋아해야
그 세계를 설득력 있게 그려낼 수 있다.
그게 바로 콘텐츠가 갖는 힘이다.
적어도 이 영화는,
“우리가 몰랐던 세계에 진심으로 빠져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 진심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그래서 더 오래, 더 크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