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화 마케팅의 현실
최근 한 배우가 남긴 한마디가 화제가 됐다. “나는 배우지 세일즈맨이 아니다.” 작품 홍보 활동과 관련해 나온 발언이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울림은 컸다. 어떤 이는 배우의 솔직한 고충으로 이해했지만, 다른 이들은 경솔한 말로 받아들였다. 개인의 피로를 토로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작품 홍보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다른 배우들의 노력을 가볍게 만드는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한마디는 배우의 직업의식, 산업 구조의 한계, 그리고 관객과의 신뢰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건드렸다. 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려고 한다.
한국 영화에서 홍보는 곧 배우의 몫처럼 여겨진다. 개봉 시기가 다가오면 주요 배우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주말이면 전국을 돌며 무대 인사에 나서는 것이 당연한 절차가 된다. 제작사나 배급사가 주도하는 장기 캠페인보다는, 배우의 얼굴과 인지도를 내세워 단기간에 관객의 관심을 모으는 방식이 표준처럼 굳어졌다. 관객 또한 배우의 직접적인 등장을 기대하며, 홍보의 성패를 배우의 태도와 연결 짓는다.
이런 방식은 단순한 관행이 아니다. 한국 영화 산업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한 편의 흥행 여부가 제작사의 생존을 좌우하는 구조 속에서, 장기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는 어렵다. 결국 개봉 직전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배우 홍보가 가장 확실한 선택지가 된다. 하지만 이 구조는 배우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며, 때로는 홍보가 촬영만큼이나 고된 과정으로 변질된다. 이번 발언은 그런 피로감 속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이 지점을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차이는 분명하다. 미국 영화 산업은 사전에 기획된 홍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영화 제작 단계부터 마케팅 전략이 함께 설계되고, 개봉 전 수개월 동안 티저와 트레일러가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이어 제작기 영상, 인터뷰, 해외 시사 투어, 레드카펫 행사, 토크쇼 출연 등이 이어진다. 이런 준비된 캠페인은 관객의 기대를 점진적으로 끌어올리며, 영화 개봉을 하나의 이벤트로 만든다.
이 모든 과정은 제작사와 배급사의 기획 아래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배우는 중요한 자산으로 참여하지만, 모든 부담을 홀로 떠안지는 않는다. 시스템이 책임을 분담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제작비와 마케팅 예산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치밀한 사전 캠페인보다는 배우가 직접 나서는 홍보가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이 차이는 한국 배우들의 홍보 피로감을 더 크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번 발언은 아쉬움을 남겼다. “나는 세일즈맨이 아니다”라는 말은 산업 구조의 문제를 겨냥한 것이라기보다, 단순히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불만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관객과 동료들에게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태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
많은 배우들은 자신이 참여한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결과물이 아니다. 감독, 스태프, 동료 배우 모두의 노력이 모여 완성되는 공동 작업이다. 그래서 일부 배우들은 자발적으로 더 많은 홍보에 나서며,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마케팅을 넘어, 작품에 대한 신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배우가 작품에 쏟는 애정은 관객에게도 전해진다. 인터뷰에서 자신 있게 작품을 소개하거나 무대 인사에서 진심을 담아 관객과 소통하는 모습은 단순한 ‘광고 멘트’로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배우가 작품을 사랑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때로는 관람 의지로 이어진다. 실제로 일부 작품은 배우의 성실한 홍보와 태도가 관객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결국 홍보는 ‘세일즈’라기보다 배우와 관객을 이어주는 다리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발언은 작품에 대한 애정보다는 개인의 피로감을 앞세운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일부 감독들조차 자신의 영화를 알리기 위해 방송에 나서며,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낸다. 많은 배우와 감독들이 작품을 위해 몸을 던지는 모습과 비교할 때, “세일즈맨이 아니다”라는 태도는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번 발언은 경솔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다른 배우들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으로 홍보에 나서는 가운데, “나는 세일즈맨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 노력들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린다. 물론 한국 영화 산업이 배우 개인에게 과도한 홍보 부담을 지우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한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마케팅 구조를 마련하지 않는 한, 배우의 피로와 불만은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홍보를 선 긋듯 거부하는 태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배우는 영화라는 공동체의 얼굴이며, 작품과 관객을 잇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번 발언이 남긴 인상은 산업 구조의 모순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배우 개인의 직업의식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 아쉬움은 작품과 관객을 향한 태도에서 비롯된 만큼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피로를 넘어, 한국 영화 산업과 직업윤리에 대한 질문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