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를 이렇게 재미있게 보는 건 처음이다. 주간 만화책을 만드는 출판사 편집부를 배경으로 만든 이야기라 아주 흥미롭고 유쾌하다. 전직 유도선수였던 주인공 쿠로사와는 출판사 편집부 사원 모집에 응시하여 당당하게 합격한다.
편집자마다 관리하는 작가가 있다. 주간지이기 때문에 마감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작품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작가들을 관리하는 것이 편집자의 큰 역할이다. 만화가와 편집자는 주간지라는 집을 잘 만들어야 한다. 편집자의 월급은 독자에게서 나온다. 잘 만든 책이라도 판매가 되지 않으면 재고로 남아 폐지로 파쇄되고 만다.
내가 이 드라마에 빠진 이유는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과 지망생들의 상황 묘사다. 20년 이상 작품활동을 하는 중견 작가도 독자의 반응에 예민하고, 슬럼프에 빠진다. 데뷔하지 못한 작가 지망생들은 중견 작가의 집에서 보조원으로 일하며 자신의 꿈을 키우지만 바로 등단하는 사람도 있고 20년 이상 보조원만 하는 사람도 있다. 작가와 편집자의 만남은 수많은 하늘의 별 중에 하나를 만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어떤 편집자는 마음에 맞는 작가와 계속 일하고 싶어 프리랜서로 나가기도 하고 어떤 편집자는 수익이 나는 일만 하기도 한다. 운 좋게 신인 작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데뷔하기도 하고 소설 원작을 만화로 그리는 작가로 시작하기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아이는 좋아하는 만화를 그릴 것인지, 엄마가 추천하는 회사에 지원할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딸들이 생각난다.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던 막내는 애니는 취업전선이 너무 힘들다며 시각디자인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어릴 적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큰딸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고 관련 회사에 취업했다. 결국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직업으로 이어지며 업무 만족도가 높아진다.
주인공 쿠로사와는 진중하고 성실하며 상대방을 잘 이해한다. 독자 엽서를 모두 읽어내며 작가에게 용기를 주고, 좋은 책을 파는 서점 직원들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는다. 저녁에는 단골 식당에서 맥주를 한잔씩 마시며 하루를 마감한다. 쿠로사와의 책상 위에는 ‘중판 출래’라는 글자가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말 그대로 초판이 다 팔려서 재판을 찍는다는 뜻이다. 작가들이 성의껏 만든 작품이 더 많은 독자를 찾아갈 수 있도록 중판을 하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것이다.
인상적인 장면이 떠오르는데 보통 신인 작가들이 단행본을 발간할 때 원가를 생각하지 않고 표지나 내지에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있는데 중쇄를 찍을 때 어느 정도 수익이 나려면 원가를 너무 높게 책정하지 말라는 부편집장의 말이다. 나 역시 난생처음 내 책을 만들었을 때 표지며 내지에 유난히 신경을 썼다. 유행하는 은박을 제목에 박았고, 표지 종이 재질도 흔치 않은 소재를 썼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욕심이 나고 의욕이 넘칠 수밖에 없다. 편집자는 이런 부분을 고려하여 좋은 책을 만들어 낸다.
만화책 이야기에 빠지다 보니 어느새 지면이 꽉 찼다. 이번 주말에는 나도 책꽂이에 있는 추억의 만화책을 꺼내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