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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필(Polypill)과 자연식물식

증상만 조절하는 약은 또 다른 병의 비옥한 토양이 된다

진료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건강문제는 아주 비슷하다. 고지혈증, 고혈압, 고혈당, 과체중 혹은 비만 그리고 지방간. 그러다 보니 상담을 하면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렇기 같은 말만 반복하다 보면 “이렇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의 상당수가 같은 소견이라면, 이 문제는 더 이상 진료실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판데믹(pandemic), 대유행이기 때문이다. 진료실 너머 사람들을 병들게 만드는 원인을 찾아 교정하지 않으면 병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틈나는 대로 칼럼과 강연으로 진료실 너머 원인을 교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참담한 건강상태를 바라보며 필자와 다른 해결책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름하야 폴리필(Polypill)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먹어야 하는 예방약, 폴리필


영국의 몇몇 의사들은 만연한 고지혈증, 고혈압, 고혈당, 과체중 및 비만 등으로 인한 심뇌혈관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전략으로 55세 이상의 모든 성인들에게 폴리필(Polypill)이라는 약을 복용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폴리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알약에 고혈압 치료제, 고지혈증 치료제, 아스피린, 엽산 등을 저용량으로 섞어 놓은 것을 뜻한다. 이 의사들이 목격한 현실은 이렇다.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흡연, 비만 등의 항목에서 모두 정상인 사람은 전체 인구의 1~5% 밖에 되지 않는다.


서구화된 사회의 성인 누구나 하나 이상의 위험인자를 가지고 있고, 남자 45세, 여자 55세 이상이 되면 위험인자 개수가 급격히 증가하니 아예 나이 기준만으로 약을 매일 먹도록 하자는 것이다. 매일 누구나 경제적 부담 없이 먹어야 하니 특허권 기간이 지나 가격이 저렴하고 효과가 입증된 성분들만 추려서 말이다. 얼마나 대범하고 편리한 제안인가?



한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위험인자


필자는 이들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서구화된 사회에 50년 가까이 사는 것 자체가 심뇌혈관질환의 위험인자라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이런 현실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선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에서 건강진단을 받은 사람들 중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흡연 등의 항목에서 모두 정상인 사람은 3~4% 정도에 불과하다. 체중까지 감안하면 정상 비율은 2~3% 정도로 더 줄어든다. 한국도 영국이나 미국과 별반 차이가 없는 ‘심뇌혈관 위험’ 사회인 것이다. 한국에서 50년 가까이 살면 그것 자체가 ‘심뇌혈관 위험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도 남자 45세, 여자 55세 이상이면 모두 폴리필을 복용해야 할까?



폴리필은 효과가 있는가?


폴리필 웹사이트(www.polypill.com)에는 50세인 사람이 질병에 상관없이 폴리필을 매일 복용하면 심뇌혈관질환 발생위험을 34% 줄이고, 수명을 8.1년 늘릴 수 있다는 주장이 담겨있다. 그들의 근거는 이렇다. 고혈압약 성분 3가지와 고지혈증약 성분 1가지로 만들어진 폴리필(최근엔 부작용 논란 때문에 엽산과 아스피린 성분이 폴리필에서 빠졌다)을 3주간 복용하면 혈압과 콜레스테롤이 좋아지기 때문에 심뇌혈관질환 발생을 예방할 수 있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단순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을 먹으면 당연히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진다. 하지만 건강상 실제 이득은 그만큼 크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약들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의 과거력이 있거나 심뇌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높을 경우에만 건강상 이득이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폴리필에 포함된 성분들의 흔한 부작용인 기침, 근육통, 위장관 자극은 차치하고라도, 사람들의 몸에 지방이 축적시키고, 혈중 콜레스테롤과 혈압, 혈당을 올리는 생활습관을 교정하도록 만들기보다는 그저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만 낮추면 된다는 메시지를 줌으로써 사람들을 점점 더 건강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암을 부르는 고혈압약


폴리필의 고혈압약 성분 중 칼슘차단제(CCB)와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는 장기 복용 시 유방암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칼슘차단제를 5년 이상 복용한 여성들에서 유방암 발생위험이 77% 높았고, 체질량지수가 25 이상인 경우엔 그 위험이 2.54배로 급격하게 증가했고, 특히 예후가 좋지 않은 유방암과의 관련성이 높았다. 또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를 5년 이상 복용한 사람들에서는 폐경기 이전에 유방암이 발생할 위험이 4.27배나 높았다.[1] 폴리필의 또 다른 고혈압약 성분인 이뇨제를 복용하는 여성들은 난소암 발생위험이 37%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2] 물론 고혈압약과 암 발생과의 관련성은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고혈압약과 다양한 종류의 암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결과가 반복해서 보고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장기 복용의 부작용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병을 부르는 약물 복용


폴리필에 포함된 고지혈증약 성분도 안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고지혈증약을 장기간 복용할 경우 당뇨병 발생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이다.[3] 건강을 위해, 질병 예방을 위해 복용하는 약이 암이나 당뇨병과 같은 또 다른 심각한 질병을 초래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부작용이 의심되는 성분의 고혈압약과 고지혈증약을 먹지 않으면 되는 걸까?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아무리 약으로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도 고혈압과 고지혈증의 원인, 즉 동물성 식품과 식용유, 설탕 섭취가 교정되지 않으면 이 원인들이 당뇨병과 암, 더 나아가 치매와 각종 퇴행성 질병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고혈압약과 고지혈증약이 암이나 당뇨병 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이런 큰 틀에서 바라볼 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단지 특정 약이 정말 암이나 당뇨병을 일으키느냐만 관심 갖고 다른 약을 찾으려 해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병을 없애는 자연식물식


심뇌혈관질환 위험인자가 없는 사람들이 1~5%에 불과한 서구사회의 현실은 고기, 생선, 계란, 우유, 식용유 등의 음식을 일상적으로 먹는 서구화된 식습관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동물성 식품과 튀기거나 볶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비만과 고혈압, 고지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연구들과 실제 사례들에서 이런 음식을 먹지 않는 자연식물식을 하면, 혈압과 콜레스테롤이 신속히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약과 자연식물식 모두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는 개선한다. 하지만 자연식물식은 병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개선할 뿐만 아니라 당뇨병과 암, 치매 등 다양한 질병도 예방한다. 반면, 폴리필은 수치만 개선시킬 뿐, 원인을 방치시켜 또 다른 질병들이 자라나도록 비료 역할을 한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위험인자인 서구사회와 한국사회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질병이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돈을 주고 다른 질병의 비료 역할을 하는 폴리필로 자신도 모르게 손이 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약 먹기 편한 사회가 아니라 자연식물식하기 편한 사회. 심뇌혈관질환 대유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1] Gómez-Acebo I, Dierssen-Sotos T, Palazuelos C, et al., The Use of Antihypertensive Medication and the Risk of Breast Cancer in a Case-Control Study in a Spanish Population: The MCC-Spain Study. PLoS One. 2016 Aug 10;11(8):e0159672.
[2] Huang T, Poole EM, Eliassen AH, et al., Hypertension, use of antihypertensive medications, and risk of epithelial ovarian cancer. Int J Cancer. 2016 Jul 15;139(2):291-9.
[3] Om P. Ganda. Statin-induced diabetes: incidence, mechanisms, and implications. Version 1. F1000Res. 2016; 5: F1000 Faculty Rev-1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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