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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es 이네스 Oct 22. 2018

브라질이라니,

렐르, 지구 반대편 브라질로 가게 되다




#브라질이라니


브라질, 상파울로, 최렐르. 


회사에서 지원한 프로그램의 합격자 메일에서 본 저 낯선 이름. 브라질과 상파울로와 내 이름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 몇 번이고 다시 봤던 기억이 났다. 같이 보던 회사 분들도 내색은 안 했지만 다들 헉, 하는 눈치. 


“응? 브라질로 간다고?”

내가 먼저 소식을 알린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고,

“렐르야 브라질로 간다며?”

먼저 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이라니, 내 인생에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낯선 나라, 브라질. 브라질 하면 축구, 삼바, 그리고.. 더 이상 떠오르는 단어는 없었다. 아, 배우고 싶었던 스페인어 대신 포르투갈어를 배우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은 덤.


회사의 일이라 자세하게 적을 수는 없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해마다 임직원들을 해외로 (주로 개발도상국가들 – 동남아, 서남아, 남미, 아프리카 등) 보내 약 1년간 거주하게 하면서 언어와 문화를 배우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2017년 9월에 지원을 시작했고 12월에 합격자 발표, 2018년 3월에 출국, 2019년 6월에 최종 귀국을 하는 일정이었다.


합격자 메일을 받고 나서 축하 (혹은 위로) 인사를 받고 퇴근하는 길에 지하철에서 폭풍검색을 했다. “브라질 치안”, “브라질 여행”, “상파울로 치안”. 하나같이 강도당했다는 남미여행자들의 후기 혹은 브라질에서 총기사건이 발생해서 몇 명이 사망했다는 기사 같은 것들이었다. 그 지하철에서 검색을 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브라질 치안이 좋다는 글 하나를 발견하기 위해 수없이 봐야 했던 무시무시한 글들. 민박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총을 든 강도를 만났다거나, 쎄 성당 사진찍다가 자전거 탄 소년에게 핸드폰을 도둑질 당했다거나. 퇴근 길 지하철 2호선의 꽉 찬 열차 안에서 결국 ‘그래도 괜찮다’라는 글 하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문래역에서 내려야 했다.


남편의 반응은 조금 더 극적이었다. 

아마도 합격자 발표날은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브라질 상파울로’라는 말에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더니 애써 침착해하려 했다. 그리고 나처럼 조용히 치안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검색한다고 네이버에서 말해주는 내용이 달라질 리 없었다. 아마도 밤새 검색을 조용히, 샅샅이 했을 남편은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에 도무지 침대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거의 말도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참다못해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자기야, 왜 그래?”

그 때의 대화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남편은 온갖 걱정을 쏟아냈다. 아마도 내가 ‘동료들이 있으니 여행다닐 때 위험하진 않을거다’라고 말했을 때 화가 많이 났던 것도 같다. (결과적으로 난 동료들과 단 한번도 – 순전히 같이 가고 싶지 않아서 - 여행을 같이 가지 않았다. 역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내가 브라질에 가서 죽을 것 같다고, 귀여운 남편은 심각하게 말했다. 울기도 했다. 남편은 회사를 그만 두고 따라가겠다고도 했고, 나보고 회사를 그만두라고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 지원을 했을 때에도, 남편의 허락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은 우리 회사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믿었기에, 나같이 조그만 여자애를 절대 위험한 곳에 보내지 않을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결국 사실로 밝혀졌지만) 아마도 체코나 헝가리 같은 동유럽 국가 혹은 베트남이나 태국같이 동남아로 가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브라질 상파울로라고 발표되기 전까지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다. 떨어져 있는 1년이 어쩌면 우리에게 더 값질거라고도 했다. 부럽다고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브라질이라는 국가 앞에서 내가 죽어서 돌아올 거라는 악몽으로 바뀌었다. 


남편은 실제로 악몽을 꾸기도 했다. 꿈에서 내가 죽어서 울면서 잠을 깬 적도 있었다. 


사실 나라고 괜찮았던 건 아니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게 막상 현실이 되니 언어를 새로 배울 생각, 브라질 가서 살아남을 생각에 아득해졌다. 결혼하고 나서 행정적으로 복잡한 일, 물리적인 힘을 쓰는 일을 모조리 남편이 해주던 생활에서 갑자기 벗어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지 말까.’ 라고도 생각했다. 한국에서 잘만 지내고 있는데 괜히 남편 두고 왜 가야하지? 라는 엉뚱한 생각도 가끔 들었다. 결국 가게 된 건, 어쩌면, 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고 합격하기 까지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 나 혼자만의 힘과 용기만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그게 제일 컸다. 가고 싶은 마음보다, 안 갈 수 없는 마음. 워낙 겁이 많고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라, 나에게는 그게 더 중요했다. 나를 도와주신 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게 아니었다면 가지 못했을 거고, 새로운 것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브라질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것들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들, 그리고 30대 기혼자로 혹은 직장인으로 갑자기 낯선 곳에 툭 떨어져 드는 생각들을 정리해 올리고자 한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나 혼자만의 긴 여행 이야기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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