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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란 Jan 19. 2023

네 발로 차려주신 그 여름의 만찬

故 장영희 교수님 추모 10주기 문집 중에서

아파트 입구에 음식점 전단지가 더덕더덕 붙어있다. 슬쩍 보니 먹음직스러운 보쌈 한 접시가 큼지막하게 있고 테두리엔 서비스로 더 준다는 곁들이 메뉴들도 여러 개 적혀있다. 막국수, 만두, 미니 피자 등… 난 보쌈을 먹지 않지만, 그래도 보쌈 전단지가 있으면 장영희 선생님 생각이 나서 꼭 한 번씩 물끄러미 본다.


2002년 1학기 ‘19세기 미국소설’ 강의는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1시에 있었다. 10시에 오자마자 그날 읽을 텍스트와 관련된 영문 비평들을 하나씩 외워서 써야 하는 대학원생들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쪽지시험을 매주 보고 나서, 한 주에 소설 한 권씩 수업을 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밀당’을 아주 잘하셨다. 어려운 수업으로 지칠 무렵이면 특유의 하이톤으로 우스갯소리를 하시며 학생들의 마음을 풀어 주셨다. 선생님 본인은 절대 웃지 않으면서 남을 웃길 수 있는 최고의 개그를 구사하셨다. 그러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기말 페이퍼에 대한 부담을 팍팍 주시던 중 아주 솔깃한 초대 제안을 하셨다.


“얘들아, 우리 아부지(고 장왕록 교수님)가 한림원 교수로 계시던 춘천 한림대 앞에 연구실로 쓰시던 집이 있거든. 내가 이번 방학에 거길 가서 좀 정리하고 방학 동안 내 집필실과 연구실로 쓰려고 하는데, 너희 기말 페이퍼 다 내면 내가 춘천으로 초대할게. 짐 정리하는 것 좀 도와주고 또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자. 어때, 그러려면 빨리 다들 기말 페이퍼를 내야겠지?”


그해 예상치 못하게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까지 진출하는 바람에 연구실 사람들도 페이퍼보다는 축구에 더 몸과 마음을 빼앗겼다. 나도 페이퍼를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 대한민국-스페인 전은 소리로만 들으며 방구석에 앉아 기말 페이퍼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7월의 어느 날, 드디어 선생님이 초대해 주신 춘천 한림대 앞의 연구실로 10여 명의 학우들과 함께 갔다. 사실 선생님의 연구실 정리를 도와드린다는 원래 목적 보다 어떤 노래 제목 때문에 괜히 환상을 갖게 된 춘천 가는 기차를 탄다는 사실에 더 설렜다.


남춘천역에 내려서 몇 명씩 택시를 나눠 타고 한림대 앞 아파트로 갔다. 뭘 사가야 하나 고민했을 때 선생님께서 “얘, 먹을 건 내가 준비할 거니까 너희는 그냥 과일이나 디저트 같은 것만 사와”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 수박과 케이크 정도만 준비했다.


강의실에서는 주로 재킷에 바지 정장을 입으시는 선생님께서 그 학기에 배운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 The Portrait of a Lady> 주인공 이사벨 아처가 입을 것 같은 우아한 홈드레스 차림으로 우리를 맞아주셔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도 식탁이나 부엌에 음식이 준비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며 “얘 미란아, 이리 와봐. 이거 내가 다 준비해 놓은 거야” 하며 쌓아 놓은 음식점 전단지 한 움큼을 목발로 툭툭 치며 보여 주셨다.


“얘, 너희들이 온다는데 내가 뭐 음식을 하겠니 뭘 하겠니. 근데 여기가 학교 앞이라 그런지 음식 전단지가 엄청 많은 거야. 내가 이거 모으려고 문틈에 껴 있거나, 길바닥에 있는 전단지들을 목발로 다 몰아다가 여기 모아뒀어. 맛있겠지? 얘, 여기가 특히 괜찮을 거 같아. 보쌈을 주는데 서비스가 막국수래. 또 감자전도 주고 다른 전단지들도 보고 너희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얘, 그 막국수 주는 보쌈은 꼭 시켜라. 나도 먹어보고 싶더라.”


그렇게 해서 막국수 주는 보쌈에, 중국 요리에, 피자 등 선생님께서 모아두신 전단지에 있는 음식들을 다 시켜서 배불리 먹었다. 선생님께서는 막국수 주는 보쌈에 큰 기대를 하셨는데 “얘, 사진하고 완전 다르다. 흥!” 하시면서 고생스럽게 음식 준비했는데 요리가 잘 안 나와 속상한 요리사처럼 샐쭉한 표정을 지으셨다.


선생님 연구실에 인터넷 설치하는 것도 봐드리고, 워드 프로그램도 깔아드리고, 인터넷에 자주 가시는 사이트 즐겨찾기도 해드리고, 두루마리 휴지 같은 것도 뜯어서 가까운 곳에 좀 정리해 놓고, 혼자 계시는 동안 그래도 덜 불편하실 수 있도록 집 정리를 해 드리고 해가 질 무렵 다시 서울로 오기 위해 우르르 나왔다. 나오면서 쓰레기를 정리하다가 선생님께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선생님, 이 전단지들 버릴까요, 어디다 둘까요?”
 “얘, 그건 이제 버려야지. 내가 니들 주려고 모아둔 거지, 뭐 혼자서 내가 시켜 먹겠니. 보쌈도 사진만 그럴싸하고 뭐. 너희 맛있는 거 주려고 했는데 그냥 나가서 사 먹을 걸 그랬나”라고 살짝 머쓱해하셨다.

서울에서 춘천까지 오는 제자들을 초대하시고서는 선생님은 얼마나 고민하셨을까, 다리도, 팔도 편치 않으신 몸으로 게다가 낯선 동네에서 식당도 잘 몰라 답답하셨을 텐데, 멀리서 오는 제자들 먹이겠다고 여기저기 붙어있는 전단지들을 목발로 툭툭 밀어 전단지가 쌓이는 것을 보시면서 흡족한 마음에 그 특유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환한 웃음을 지으셨겠지.


“비록 식탁에 음식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날 그렇게 선생님께서 네 발로 차려주신 만찬은 지금까지 제가 초대받아 먹은 음식 중 최고였어요. 다시 초대해 주시면 이제는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은데, 사진에 나온 것보다 막국수 더 진짜 맛있는 곳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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