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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고요 Nov 29. 2022

나는 오늘도 5시간만 일한다

마흔이 되던 해 퇴사를 하고 삶터를 옮겼다. 단기프로젝트로 일을 이어나가던 중 큰 아이에게 복합틱이 나타났다. 그렇게 아이를 돌보며 한 해를 보내고 코로나로 손 발이 꽁꽁 묶여 두 해를 더 보냈다. 경력 단절이 길어지고 있었지만 풀타임으로 근무를 하려니 덜컥 겁이 났다. 긴 시간 일에 푹 쩔어 살던 모습이 떠올랐다. 매일 2시에 하교하고 매년 2달동안 긴 방학을 맞이하는 초등학생 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나와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한 일터를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5시간만 일하고자 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나의 불안과 아이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싶었다. 경력단절기간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불안, 다시 사회에서 내 책상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내가 아직 쓸모있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아이들도 엄마가 곁에 있는게 익숙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가 있기를 바랐고 배가 고플 때는 언제나 밥상이 차려져 있기를 기대했다. 남편도 집안 곳곳에 닿아있는 나의 손길이 그대로이길 원하는 눈치였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너무 이르지 않은 시간에 출근하고 저녁을 지어 먹일 수 있도록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퇴근하는, 내 책상이 있고 내 이름이 불리는 공간. 그 곳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그렇게 5시간만 일하는 공간을 알게 되었고 2차 면접까지 무사히 통과. 다시 워킹맘이 된 지 4개월이 되었다.


아이들을 챙겨서 학교에 보낼 수 있고 아플 때도 넉넉하게 10시쯤 병원에 들를 수 있다. 아침 수영도 하고 낭독모임에도 나간다. 저녁밥을 지어먹어도 8시를 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수어교실에도 나가고 있다. 일을 하고 있다는 안정감과 시간이 넉넉하다는 여유로움이 더해지니 하고 싶은 일도 많아진다.


물론 월급통장을 볼 때 현타가 오기도 하고 직업적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기도 한다. 사업의 90%에 해당하는 일을 하고도 기안서에 이름을 넣지 못한다. 누구는 왜 시간을 죽이고 있느냐고 나이 생각하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누구는 그런 일자리는 어디서 구하는 거냐고 잘했다고 칭찬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5시간만 일한다. 남는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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