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고요 Jan 04. 2023

긴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드디어 방학했어요!"

도서관에 들어오는 아이들마다 큰 소리로 자랑을 한다.

생글생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나도 마냥 웃고 싶다!  내 맘을 아는 사람! 손 좀…

이용자 한 분이 다가와 묻는다.


“아이들 점심은 어떻게 해요?”

“그러게요. 어떻게 할까요? 하하하”

아침 일이 떠오른다.



지난밤 새벽 3시까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어스름 잠이 들었다.

눈떠보니 9시 40분. 벌떡 일어나 마루로 나왔다.

10살 상윤이는 세상 편한 자세로 TV를 보고 있었다.

12살 채윤이는 나에게 달려와 안기며 아빠 아침도 챙겨주었다고 자랑을 했다.


배가 고프지 않다는 아이들 말에 물로만 세수, 양치질을 하고 집을 나섰다.

필라테스를 마치고 식빵과 간식거리를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채윤이에게 쌀을 씻어달라고 부탁하고 샤워를 했다. 씻고 나와 밥솥을 불에 올렸다. 채윤이에게 달걀 프라이도 부탁했다. 상윤이에게 새벽배송으로 도착한 상자를 열어 커피를 찾아달라고 했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압력밥솥에서 터질 듯한 소리가 났다. 상윤이에게 밥 불을 꺼달라고 부탁했다.


회사 갈 준비를 마치고 거실에 나와보니 채윤이 상윤이 둘이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다른 건 손잡이가 없는데. 이건 왜 있지?”


무슨 작당모의를 하는 걸까.

아이들은 작은 커피잔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드롭백으로 나온 커피 하나가 통째로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본인들도 이상했는지 집단지성을 발휘하고 있었단다. 백을 건져내어 손잡이를 컵에 걸었다. 문제가 해결된 아이들은 헤헤 웃어 보였다. 우러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미지근하고 씁쓸하고 괜찮았다.


식판 2개를 꺼내어 반찬과 채윤이가 요리한 달걀프라이를 옮겨 담았다.

식판 뚜껑을 닫았다. 걱정되고 불안하지 않았다.

이렇게 방학을 맞이해도 될까?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게 된 열두 살 채윤이



채윤이가 8살, 상윤이가 6살일 때 일을 그만두고 삶터를 옮겼다. 이후 6개월쯤 클래식음악자료를 정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겨울방학이 다가올 때쯤 도서관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1학년 채윤이는 집에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했다. 나는 채윤이가 하루종일 학원에 가야 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아이가 혼자 밥을 뜨는 것도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데우는 것도 불안했다. 불안과 걱정이 넘치도록 많은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윤이는 괜찮다고 했다. 씩씩하게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했다. 아이를 믿어보자 다짐했다. 하지만 아이의 불안은 그 작은 몸을 비집고 터져 나왔다.


병원에 가니 복합틱이라고 했다. 고개를 좌우로 심하게 흔들고 양팔을 접어 허리를 치는 행동을 반복했다. 국수를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나는 일을 접고 아이 곁에 머물기로 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다.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는 이용자는 방학 동안 혼자 있을 우리 집 아이들 밥 걱정을 함께 했다.


“식탁에 차려두면 데워서 먹어요. 사 먹을 때도 있고요.”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오늘도 긴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5시간만 일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