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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고요 Mar 23. 2023

너의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사서의 중요한 업무가 책 읽기인 이유



-저요. 이번에 새책 살 때 하나에 몰빵 하려 고요.


「오무라이스 잼잼」을 반납하던 12살 미정이는 '몰빵'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새책을 살 때 <이 책도 사주세요!>라는 이름으로 희망도서 추천을 받는다. 미정이는 추천할 책을 한 권만 정해서 쓰려고 하나보다. 5권씩 쓸 수 있는데.


-그래? 어떤 책?

-「개를 낳았다」 아니면「오무라이스 잼잼」 둘 중에 하나요. 좀 고민되긴 해요.

-그렇지? 다 사면 좋겠지만 그럴 순 없고. 나도 딱 그 고민 중이야!


지난겨울 새책으로「개를 낳았다」 와 오무라이스 잼잼」을 구입했다. 반응을 보고 후속 편을 구입할 생각이었다. 물론 두 책 모두 인기가 좋아서 후속 편은 당연히 사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후속 편이 꽤 길었고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두 종 모두 구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정이 말처럼 한 종에 몰빵 하거나 두 종을 서너 권씩 사거나 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어른 이용자가 다가왔다.

-「오무라이스 잼잼」 볼 수 있어요? 우리 아들도 비슷한 또래인데 소개해주려고요.

-「개를 낳았다」 봤어요?

미정이가 말했다.

-응, 그림이 깔끔해서 참 좋았지.

-그럼  이 책도 보고 마음에 드는 거 몰빵 해주세요.

나와 미정이, 어른 이용자는 「오무라이스 잼잼」과 「개를 낳았다」를 두고 책 이야기를 이어갔다.


짧은 대화였지만 우리는 책에 더 몰입할 이유를 찾았다.

함께 볼 책!

우리는 함께 볼 책을 고르기 위한 책 읽기를 시작했다.


미정이는 새책꽂이 앞으로,

이용자는 소개받은 책을 들고 자신의 자리로,

나는 그분들이 오롯이 책이 집중할 수 있도록 밝지만 약간 느린 피아노곡을 틀었다.

그리고 나도 읽고 있던 책, 91쪽을 찾아 펼쳤다.






운이 좋게도 그동안 일했던 도서관은 사서의 전문성은 책 읽기에서 온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곳이었다. 이용자는 사서와 책을 나누는 시간을 통해 도서관과 그 공간을 가득 채운 책에 대한 신뢰를 쌓아간다는 것이다.

서가 사이를 거닐다 눈길을 사로잡는 어떤 책을 꺼내 읽어도 좋은 곳, 괜찮다는 믿음.



내 마음을 헤집어 놓은 이 책을 아는 사람,

살짝 건넨 책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

내가 재미있게 본 책을 함께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 사람이 소개하는 책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미정이의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어린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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