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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는 강선생 Mar 25. 2024

벤치프레스하다 코가 부러졌습니다

하필 의료 대란 중인 지금 다치다니...

개학 2주 차 월요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헬스장에 갔습니다. 피곤할수록 무거운 쇠질을 하면 오히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월요일=가슴 운동'은 국룰이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뒤 벤치 프레스를 시작했습니다.


가볍게 60kg부터 서서히 10kg씩 늘려갑니다. 지난주 1rm(1번 들 수 있는 최대 무게)이었던 100kg이 생각보다 가볍게 들립니다. 그렇게 2번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바를 가슴에 두 번째 내렸다 올리는 순간 도저히 팔이 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100kg의 쇳덩어리가 얼굴로 떨어졌습니다.


너무도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순간 힘이 풀려서 도저히 내 힘으로는 이 무게를 들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비교적 빠르게 벤치 프레스 바 아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바는 코와 왼쪽 광대뼈 쪽으로 떨어졌습니다. 헬스장 바닥 털썩 주저앉으니까 바닥으로 피가 후드득 떨어집니다. 안경은 부러지지 않았지만 손으로 만져보니 코는 확실히 부러졌고 광대뼈도 살짝 함몰된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눈이나 목으로 떨어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급하게 달려온 트레이너 분이 수건을 가져다주셔서 얼굴에 흥건한 피를 닦았습니다. 그리고 곧 119 구급대원분들이 오셨습니다. 간단한 진단을 마치고 주변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연락을 돌리지만 의료 파업 중이라 응급실 가기도 쉽지 않네요.


다행히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단, 상주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 많지 않아서 얼마나 대기할지 가늠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급한 대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합니다. 퇴근시간이라 길이 무척 막혔고, 흔거리는 차 안에 앉아있으니 머리가 흔들거리고 통증이 갑자기 밀려옵니다.


내일 출근 못 할 생각을 하니까 머리가 더욱 아파옵니다. 이제 막 적응을 마치고 있는 개학 2주 차인데 이렇게 다치면 얼마나 자리를 비워야 할지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교감 선생님과 부장 선생님께 다쳐서 내일 출근을 못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린 후 이제 막 뽑힌 우리 반 실장에서 연락했습니다. '우리 반을 잘 부탁한다!'


응급실에는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대기 중입니다. 부러진 것으로 강하게 의심되는 코는 욱신거렸고 움푹 파인 광대뼈와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지만 2시간 넘게 그 상태로 앉아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속 119 구조대는 응급 환자들을 응급실로 이송했고, 그래도 생명이 위급하지는 않은 제 차례는 오지 않았습니다. 3시간이 지나자 간호사분이 제 이름을 부릅니다.


응급실에 들어와서는 그래도 비교적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베드에 누워서 드레싱을 받았고, 곧 CT와 엑스레이 촬영을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코가 많이 부러져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왼쪽 광대뼈와 코 윗부분도 꿰매야 한다고 합니다. 다행히 소아과 병동은 파업을 하지 않아서 다음 날 소아 성형외과 외래 진료를 예약했습니다.


화요일 오전 성형외과에서 왼쪽 광대뼈 부근과 코 부근을 꿰맸습니다. 마취 주사를 4방 정도 맞았습니다. 꽤 많이 따끔했지만, 마취를 하고 나니 꿰매는 것은 거의 아프지 않았습니다. 촬영 결과 코가 왼쪽으로 45도 정도 휘고 뼈가 가루가 되었다고 합니다. 4년 전에 비염치료 목적으로 비중격만곡증 수술을 했었는데, 코가 휘어버려 다시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뭐 하다가 이렇게 다쳤냐고 물으십니다. 벤치 프레스 100kg을 들다가 얼굴로 떨어졌다고 말씀드리니까, "착하게 살으셨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눈으로 떨어졌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정말 아찔합니다. 눈이나 머리, 목으로 떨어졌으면 정말 심각할 뻔했습니다. 단지 몇 센티의 차이로 이만할 수 있는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오후 4시에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링거로 수액과 항생제를 맞으며 대기합니다. 전신 마취를 해야 하는 이런 큰 수술은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2학년 때 받았던 편도선 수술 이후 처음입니다.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아서 수술포비아가 있던 저는 수술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두려워집니다.


3시 45분, 아직 약속된 4시가 되지 않았는데 간호사분이 제 이름을 부릅니다. 곧 이어서 어떤 남성분이 제 침대를 끌고 수술실로 향합니다. 덜그덕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침대에 누워 천장의 형광등 빛이 눈 밑으로 차례차례 내려가는 것을 바라봅니다. 커다란 환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내리고 자동문을 여러 번 지나가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수술실로 가는 길이 낯설고 무습니다.


수술실에 도착하니 초록색 옷을 입은 의사, 간호사 7분이 저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전신마취를 한다며 수술 동의서를 씁니다. 폐를 잠시 멈추고 그동안에 수술을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럼 저는 그동안 숨을 못 쉬는 가요?" 산소 포화도를 높여놔서 괜찮다고 대답하십니다. 그렇게 마취제가 제 몸으로 들어갔고. 깜빡하는 사이에 수술이 끝났습니다.


통증이 다시 세차게 밀려옵니다. 처음 다쳤을 때의 통증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한 정도입니다. 마취가 깨고 저녁이 되면 점점 심해지겠죠.


수술 후 6시간 동안 금식이라고 합니다.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그 말을 들으니까 급격하게 허기가 집니다. 왼쪽 팔에는 링거가 꼽혀있고, 주기적으로 항생제가 내 몸으로 들어와 염증과 싸워줍니다.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자고, 자고, 또 잤습니다.


오후 10시가 됐고, 공복 24시간 만에 첫 끼를 먹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피자, 치킨, 삼겹살도 아닌 그냥 맨밥에 콩나물 국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습니다.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습니다. 역시 허기가 반찬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식욕은 살아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2박 3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습니다. 코에 있는 지지대와 실밥은 다음 주에나 풀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 많이 불편하지만 이만큼 다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다시 한번 되뇝니다. 그리고 의료 대란으로 치료를 못 받을 수도 있었는데, 이 와중에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병원을 지켜주신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님들 덕분에 무사히 치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화한 지 10분도 안되어서 달려와주신 119 대원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벤치 프레스는 못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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