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입니다. 기원전 4천 년 경 수메르의 우르(Ur)에서 처음 등장한 도시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점점 성장하였습니다.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였고, 도시의 수 또한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도시란 무엇일까요? 도시를 도시답게 하는 도시성(Urbanism)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규모성입니다.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고 각종 서비스업이 발달합니다. 공장이 많은 산업 도시의 경우에는 다수의 일자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도시는 촌락에 비해 인구 규모가 큽니다. 두 번째는 밀집성입니다. 도시는 일반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습니다. 좁은 면적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보니 도시는 집값이 비쌉니다. 그래서 도시에는 촌락에 비해 높은 빌딩들이 많은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질성입니다. 도시에는 일자리와 학업을 위해 이주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개인의 익명성이 보호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서로를 잘 아는 촌락에서 느낄 수 있는 이웃 간의 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규모성, 밀집성, 이질성을 갖춘 대도시 서울
이러한 규모성, 밀집성, 이질성을 갖춘 도시에서는 필연적으로 도시적 생활양식이 나타납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 특유의 삶을 즐기며 서로 비슷한 양식을 공유합니다.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1차 산업보다는 2차 또는 3차 산업에 종사합니다. 초기 도시에서는 제조업과 같은 2차 산업이 발달하지만 점차 산업 구조의 고도화가 일어나면서 서비스 산업과 같은 3차 산업의 비중이 증가합니다.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다양한 취향과 수요가 발생하고, 그에 따라 도시 문화는 다채롭게 발전합니다. 이처럼 도시는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주변 지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산업화 이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전체 인구 중 도시에 사는 인구 비율을 도시화율이라고 하는데, 도시화율은 보통 선진국일수록 높습니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도시화율은 2023년 기준 91.9%에 달합니다.
대한민국의 도시화율
2. 발전하는 도시, 쇠퇴하는 도시
4부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발전하는 도시와 쇠퇴하는 도시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영국의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석탄 산업이 한창인 시절 최고 전성기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세계의 주요 자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대체되면서 두 도시는 함께 쇠퇴하게 됩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 도쿄는 자동차, 전자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기 일본의 경제 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가 최고의 가치를 갖는 3차 산업 혁명이 시작되면서 도쿄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함께 불황을 겪게 됩니다. 반면 미국 시애틀은 정보화 시대로 전환하는 흐름을 잘 타고 지속적인 성장 중입니다. 세계 최대의 IT기업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전하면서 미국 북서부 해안가의 작은 도시였던 시애틀은 제2의 실리콘 벨리로 불리며 아마존, 구글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몰려드는 곳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작은 섬 홍콩은 세계의 산업과 금융이 하나로 연결되는 세계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성장하였습니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편입된 초기 홍콩은 중국의 고도성장과 맞물려 지속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중국 간의 무역 갈등, 코로나19로 인한 강력한 봉쇄 정책, 그리고 홍콩 보안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내정 간섭 등으로 홍콩 경제는 내리막 길을 걷고 있습니다.
콘트라티예프 파동(Kondratieff Wave)
이처럼 도시는 전 세계의 산업 발달 주기에 맞춰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합니다. 이를 러시아 경제학자 콘드라티예프(Nikolai Kondratiev)는 다양한 경제 자료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이용해 세계 경제의 주기가 약 50년의 기간을 두고 반복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콘드라티예프 파동(Kondratieff Wave)은 경제학자 슘페터에 의해 보다 구체화됩니다. 그는 경제 순환의 근본 원인이 새로운 기술혁신이며 그러한 혁신이 광범위하게 적용됨으로써 경제와 사회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콘트라티예프 파동에 따르면 세계 경제는 현재까지 다섯 번의 커다란 장기 경기파동이 있었습니다.
– 제1시기(1780 ~ 1849년) : 1차 산업혁명, 초기 기계화 시대, 증기기관 – 제2시기(1849 ~ 1890년) : 2차 산업혁명, 기차, 증기선 – 제3시기(1890 ~ 1940년) : 전기공학, 중화학공업 – 제4시기(1940 ~ 1990년) : 자동화, 집적회로, 핵에너지, 컴퓨터, 자동차 – 제5시기(1990년 ~ ) : 정보화혁명, 정보통신기술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맨체스터와 리버풀은 1차, 2차 파동 시기에 발달하였다가 4차 파동 이후 점점 쇠퇴하였습니다. 일본 도쿄의 경우 4차 파동 시기에 급격하게 발전하였지만 5차 파동 시기를 적응하지 못하고 쇠퇴하였습니다. 반면 시애틀의 경우 서두에 밝혔듯이 정보화 혁명의 흐름을 잘 타고 5차 파동 시기에 발전하였습니다.
1920년대 미국의 성장을 이끈 것은 자동차 산업입니다. 자동차의 왕이라 불리는 헨리 포드를 비롯하여 GM과 같은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오대호 연안의 공업 도시 디트로이트에 밀집하였습니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가장 산업이 발달한 도시이자 자동차의 도시, 모타운(Mo Town)이라 불렸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일본, 대한민국 같은 신흥 공업국의 등장으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 결과 오대호 연안의 공업지역은 녹슨 지역이라는 뜻의 '러스트 벨트'로 전락하고 맙니다. 반면 같은 시기 남서부도시들(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산호세)에서 컴퓨터 산업이 발달하면서 미국 산업의 중심지가 오대호 연안에서 태평양 연안으로 움직였습니다. 이곳은 오대호 연안 공업 지역에 비해 따뜻한 남쪽이기 때문에 선벨트라 부릅니다.
러스트 벨트에서 선벨트로 이동한 미국의 산업
물론 실제 경제 시스템과 그에 따른 도시의 발달은 콘트라티예프 파동과 달리 매우 복잡합니다. 이를 단순화하기 매우 어렵고 실제 변화의 주기도 50년으로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콘트라티예프 파동 곡선을 통해 기술의 혁신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고, 그러한 혁신이 도시의 발전과 쇠퇴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도시가 변화하는 다양한 원인
도시는 국가의 발전 전략에 의해서도 발전합니다. 대표적으로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국토종합계획입니다. 우리나라는 제1차 국토개발계획을 통해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축 위주의 개발을 계획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경부축에 위치한 도시들 위주로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정부는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주로 남동부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들을 공업도시로 집중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화학 공업 도시 울산이 탄생하였습니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정유, 제철 산업 등 대한민국 중화학 공업의 거의 모든 것이 집적되어 울산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 GDP가 가장 높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방 정책 이후 남동부 해안가 도시들을 집중 개발하였고 외국 기업들의 자본을 유치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의 상하이, 선전과 같은 도시들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토종합개발계획
이러한 발전 전략을 거점 개발방식이라고 합니다. 거점 개발 방식은 특정한 도시 혹은 지역을 정하고 그곳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입니다. 이는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물이 넘치지만 결국 주변으로 퍼지듯이 한 곳을 집중 발전시키면 그 발전의 혜택이 다른 지역으로도 전파된다는 '파급 효과'를 근거로 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대다수 개발 도상국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경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거점 개발 방식은 특정 도시에 자본이 투입되어 효율적으로 발전한다는 정점이 있으나, 그곳을 제외한 지역의 발전은 제한되거나 오히려 인구가 발전된 지역으로 유출되어서 국토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성장거점 개발 방식과 혁신도시
이러한 도시 간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토 균형 발전 전략을 수립하기도 합니다. 정부는 공공기관, 대학교, 연구소를 지방으로 이전하거나, 기업에게 세금 절감을 비롯한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여 지방으로 이전하도록 유도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수도권의 과도한 인구 밀집과 그에 따른 국토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에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이곳으로 공기업을 이전하는 정책을 수립하였습니다. 이처럼 공기업과 같은 좋은 일자리는 그 자체로 인구 유입의 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이 서로 가까운 곳에 모여있으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이를 집적 이익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집적 이익의 가장 대표적 사례가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실리콘 벨리입니다. 실리콘 벨리에서는 기업, 대학교, 연구소가 가까운 곳에 모여있으면서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대학교에서 연구하던 학생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근처 기업 담당자들 앞에서 시연하고, 만약 기업들이 학생들의 제품에 매력을 느낀다면 이들과 계약함으로써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얻는 것입니다. 실리콘 벨리에 위치한 기업 내에서도 이러한 경쟁과 협력이 이루어집니다. 기업 내 다수 존재하고 있는 랩(lab)에서는 혁신적인 분위기 속에서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지고, 이직이나 분사 창업(Spin-off) 또한 실리콘 벨리 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이어집니다. 실리콘 벨리의 이러한 혁신적이면서 자유로운 분위기는 이곳을 세계 IT 산업의 메카로 만들었고, 구글, 메타, 애플과 같은 세계적인 IT 기업의 본사가 모두 실리콘 벨리에 있는 이유입니다.
전세계 IT기업의 메카 실리콘 벨리
도시의 발전과 쇠퇴는 교통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물자를 주로 배로 운반하였기 때문에 수운 교통이 발달한 도시가 성장하였습니다. 충청남도 강경이 대표적인데요. 그러나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 철도가 대전을 지나가며 강경은 급격히 쇠퇴하게 됩니다. 한밭, 커다란 들판이라는 뜻을 지닌 대전은 금세 충청지역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됩니다. 또한 대항해 시대에 발달하였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시대가 저물게 된 것도 교통의 변화, 발달에 따른 요인으로도 풀이해 볼 수 있습니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시공간의 거리는 압축되었고, 그로 인해 본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 저렴한 지가와 노동력을 활용한 공장을 설립하는 경우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다국적 기업의 대규모 공장이 입지 한 도시들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도시들은 대기업의 자본이 유입되고 일자리가 생기는 장점이 있지만, 기업의 핵심기술은 잘 전수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오히려 해당 국가에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4. 도시의 미래
도시는 문명이 발생한 이후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하였습니다. 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다채로운 문화를 만들었고, 때로는 그 다양성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발달은 산업의 발달과 함께 했습니다. 특정 산업이 발달 혹은 쇠퇴함에 따라 도시의 운명도 바뀌었습니다. 도시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처럼 나이가 듭니다. 과거 도시의 중심 지역이었던 도심은 점점 낙후되고 교외화 현상으로 사람이 많이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도심은 재개발되면서 또 다른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이를 도시 재생, 혹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합니다.
청계천의 복구 이전과 이후
빌딩과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던 도시의 이미지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대화된 도시를 선호하면서도 또한 자연의 푸르름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청계천이나 양재천 복원 사업처럼 과거 하천을 복원함으로써 시민들이 도시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아예 도시 전체를 생태적 관점으로 설계하고 개발한 브라질의 생태도시 쿠리치바의 사례도 있습니다. 어쩌면 도시는 자연과 가장 먼 형태의 공간이지만, 도시에 살고 있는 인간은 그 속에서 자연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세계 생태도시의 수도 브라질 쿠리치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는 90%가 훌쩍 넘는 인구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결국 그 방향은 도시라는 공간에 살면서 주체가 되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