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은 항상 길다
안녕하세요. 춘천여자고등학교 지리교사 강이석입니다. 감사하게도 2022년부터 매년 교원대학교에서 저를 1정 연수에 불러주셔서 올해도 이렇게 젊고 유능한 지리 선생님들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많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과연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드릴만한 것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에듀테크에 능숙한 교사도 아니고, 교육과정에 통달한 교사도 아닙니다. GIS나 지리 교수법을 많이 알고 있지도 않고, 교수학습방법론이 다양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1정 연수 강의에 가장 안 어울리는 교사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진심입니다.
런던 그리니치에서 줌으로 했던 1정 연수
처음 런던 여행 중 그리니치에서 줌으로 1정 연수를 할 때만 해도 다시 선생님들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100분이 넘는 선생님들께서 남겨주신 후기를 읽어보니 ‘신선했다’, ‘재미있었다’와 같은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수업 시간에 어떻게 활용할지 알려주세요’와 같은 다소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거든요. 애초에 당시 저의 강의가 ‘빅데이터 시대의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라는 추상적이면서 구체적이지 못한 주제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제가 아직 많이 준비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능력에 비해 과분한 제의를 냉큼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올해 초에 결심을 했습니다. 최대한 크든 작든 외부 강의는 안 나가기로요.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제가 가진 실력에 비해 너무 포장이 지나쳐져서 그 거품을 거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풋은 없는데 유튜브, 글쓰기, 강의 등으로 아웃풋만 계속되는 나날이 지속되면서 마음은 공허해졌고, 이유 없는 불안감도 계속 됐습니다. 사실 그동안 워낙 실체가 없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너무 오랫동안 우려먹어서 스스로도 신나지 않는 강의가 되어 버린 것도 이유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올해 1월부터는 감사하지만 들어온 강의 요청은 전부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1정 연수는 거절하기가 힘드네요. 제가 유능하거나 후배 선생님들에게 롤모델 같은 그런 교사는 아니지만, 선생님들이 저를 보면서 '저런 선생님도 있구나!', ‘저런 선생님도 1정 연수를 하는구나!’라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도 있고, 혹은 저와 비슷한 결을 가졌거나 꽉 막힌 교직 생활에서 작은 일탈을 꿈꾸는 MZ선생님들에게 '자기 만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교직 생활을 하는 선생님의 즐거움과 어려움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지금까지 해오던 특강 주제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생각해 보니 교원대 1정 연수는 매번 바뀌었더군요. (2022년 빅데이터와 이야기, 2023년 지리는 강선생의 스토리텔링 수업, 그리고 2024년은...)
행복에 대하여
1정 연수 강의 제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임용을 준비하던 시기 매일 화이트보드에 썼던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반드시 행복한 지리 선생님이 될 것이다" 짧은 수험 기간이었지만 주어진 상황은 다급하고 또 절실했습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합격해야만 하는 당위성과 함께 행복이라는 요소를 넣어서 구체적으로 꿈꾸면서 매일 썼습니다, “나는 반드시 행복한 지리 선생님이 될 것이다”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나온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지리교사로 살고 있는 지금의 저를 보면 가끔 저 화이트보드의 글귀가 순간순간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1정 연수의 주제는 좀 거창하지만 '행복한 지리 선생님으로 사는 방법'으로 정했습니다.
임용 시험을 준비하며 화이트보드에 매일 썼던 문장
2024년 7월 현재, 지금 앞에 계신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도 수많은 업무와 과제들로 정신없이 바쁩니다. 당장 내일 ‘전기차는 과연 미래의 지속가능한 이동수단이 될 것인가?’를 주제로 수업량 유연화 특강을 해야 합니다. 내일모레는 8월 31일에 출간 예정인 ‘도시를 걷는 시간’의 최종 원고 마감일입니다. 고3 담임으로서 입시 상담과 생기부 작성도 마무리해야 하고, 음원 제작과 뮤직 비디오 촬영과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들, 전국 단위 지리 교사 모임인 최지선의 회장으로서 하계 정기 답사 준비 등 너무도 많은 일들이 저를 둘러싸고 있어서 조금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다 제가 벌인 일이니까 감내해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후배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의미 있고 도움이 되는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또 한 번 불태워 보겠습니다!
행복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고, 정작 내가 행복한지 안 행복한지 정의 내릴 수도 없으니까요. 당장 지금 글을 쓰며 강의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저의 감정은 수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에 계신 선생님보다 고작 몇 년 더 지리교사로 근무했다고 해서 감히 ‘행복한 지리 선생님으로 사는 방법’이라는 강의를 할 자격이 제게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다만 제가 10년이 넘게 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치면서 행복했던 시간, 그렇지 않았던 시간들을 끊임없이 반추하면서 선생님들께 저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아 저런 사람은 저런 상황 속에서 저런 생각을 했구나’,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그래도 저런 면은 배울 점도 있겠구나’라며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강의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유튜버 지리는 강선생입니다. 비록 요즘 근무 환경의 변화로 업로드가 많이 뜸해졌고 조회수도 확연히 떨어졌지만 그래도 저의 부캐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지리는 강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작가 강이석입니다. 글로 저의 경험과 생각들을 옮기면서 교실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본격적으로 외부 강의를 하게 된 계기가 바로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입니다. 세 번째는 강사 강이석입니다. 물론 학생들 앞에서 수업하는 것도 즐겁지만 학교 밖에서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네 번째 교사 강이석입니다. 학교 안에서 수업하고 상담하고 업무 하는 저의 본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간 강이석으로서 즐거움을 위한 다양한 생활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 가지는 금액이 크든 작든 돈을 받고 하는 일들이니까 N잡러로서의 생활이라고 할 수 있고, 교사는 본업, 그리고 마지막은 취미 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N잡러의 삶이란...
N잡러로 살다 보면 주변에서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다양한 일들을 해?" 가끔씩은 저도 스스로 생각합니다. 학교 일만, 수업만, 100번 양보해서 전공인 지리와 관련된 일만 하면 될 것이지 왜 이렇게 많은 일들을 벌여서 스스로를 괴롭힐까 하고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소개할 때 부연 설명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달갑지는 않더라고요. 원래 자기소개는 짧고 간결한 것이 더 멋있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들었거든요. 그래도 저는 아직까지 tmi식 자기소개를 선호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명사(noun) 스타일의 자기소개보다는 형용사(ajective) 스타일을 자기소개를 선호합니다. 명사는 그 사람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지만, 형용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니까요. 저는 형용사에 보다 가까운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명사같은 사람인가요, 형용사같은 사람인가요?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제가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되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여기 계신 지리 선생님들과 저를 불러주신 교수님, 그리고 여기 1정 연수에 강의를 하러 전국에서 오신 훌륭한 교수님들과 선생님들에게는 한없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처음부터 지리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습니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수능을 다시 봤지만, 자의 반 타의 반 저는 꿈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20대 중반 조금 늦은 나이에 지리교육과에 입학하였고, 이후로는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그 방황은 여행이라는 매력적인 대안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저의 20대 시절은 여행이 5할 이상이었다고 생각해요. 당시 저의 최우선순위는 공부도 연애도 아닌 여행이었습니다. 유학 시절 처음 떠났던 캐나다 동부 여행에서 발화된 여행의 불꽃은 유럽 배낭여행으로 번지며 여행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습니다. 돈이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기 중에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았고, 그렇게 축적한 자금을 여행으로 아낌없이 분출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20대의 시간을 거의 대부분 여행으로 탕진하며 보냈습니다.
그렇게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되었습니다.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고, 졸업 이후에는 창업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을 여기서 다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기니까 잠시 타임 리프하고 결국 저는 지리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수없이 다녔던 여행의 시간들이 그리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처음 느낀 것은 본격적으로 수업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여행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스토리텔링으로 녹여내는 일은 저의 수업을 다채롭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수업하는 저 자신도 마치 여행 당시의 순간으로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내 책이 교보문고에 있다니!
물론 저의 이 여행 스토리를 지리 수업 시간에 녹여서 썰 푸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도 있고 효용감도 있었지만 뭔가 부족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사 월간지에서 '세계로 떠난 지리 선생님'이라는 칼럼을 쓰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수업시간에 수도 없이 했던 공중에 떠다니던 이야기들을 손에 잡히는 글로 인코딩하게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구어체로 구성되던 이야기를 선생님들을 위한 문어체로 바꾸는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날것 그대로였던 저의 이야기가 체계가 잡히는 모습은 새롭고 흥미로웠습니다.
음악과 함께하는 하이브리드 여행 에세이 여행이 부르는 노래
그렇게 대학교 2학년 시절 노퍼밋으로 떠났던 티베트 여행과 단지 노래 한곡을 듣기 위해서 떠났던 이베리아 반도 여행, 그리고 썸녀의 메시지 하나로 3분 만에 티켓팅을 했던 스칸디나비아 여행까지 저의 이야기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월간지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공개되었기 때문에 많지는 않았지만 댓글로 반응들이 달렸고, 글을 쓰는 묘미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0년 넘게 묵혀두었던 여행의 이야기들은 하나씩 하나씩 여행 글들로 쌓이게 되었고, 이후 자연스럽게 '여행이 부르는 노래'라는 음악과 이야기, 추억이 한데 어우러진 하이브리드 여행 에세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지에서 느꼈던 나의 느낌과 생각, 경험들이 활자를 거쳐 책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이 공개되었을 때, 출판사에 그 원고들을 모아서 제출하고 출판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내 글, 책에 대한 감상을 전달받을 때, 그때 '이 맛에 글을 쓰는구나!'라는 초보 작가로서의 첫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정말 잠깐이지만 저의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들어가 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저의 앞에는 유시민, 뒤에는 이영하 작가가 있었습니다!
책을 출판한 후 저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다양한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나 방송 제의가 왔고, 전국에서 특강 요청이 왔습니다. 주간지, 월간지에서 연재 요청이 와서 현재까지도 '낭만 여행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23년 1년 동안 연재한 '도시를 걷는 시간'은 동명의 단행본으로 8월 31일 출판 예정입니다. 하지만 제가 책을 쓰게 되면서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경험과 추억, 지식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선생님이 유튜브를 하면 생기는 일
제가 처음으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2020년부터 3년 넘게 우리와 함께 해온 코로나 덕분입니다.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으로 학교에서는 대면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해에 고3 담임을 맡았는데 3월이 되어도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으니까 상담은커녕 수업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교육청과 학교에서는 느닷없이 발생한 환란에 궁여지책으로 교사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권장했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유튜브였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때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채널명은 '지리는 강선생'
한때 잘 나갔던 유튜브 지리는 강선생
초기 영상의 조회수는 처참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죠. 구독자가 애초에 10명 단위였으니까요. 제가 맡은 한국지리, 여행지리 수업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학생들에게 보라고는 했지만, 이건 참... 만든 제가 봐도 보기 민망한 영상이었습니다.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수업이 평소처럼 잘 되지도 않았거든요. 그리고 영상 길이도 40분이 넘을 정도로 길고, 음성이 울려서 잘 안 들리는 데다 자막도 없어서 여러모로 참으로 처참한 영상이었습니다.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했지만 2021년 여름까지 지리는 강선생은 수업 영상을 간간이 올리는 그저 그런 유튜브 채널이었습니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자 여행 유튜버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여행을 못 다니니까 영상으로나마 대리만족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간 것이죠.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때 알게 된 여행 유튜버가 빠니보틀! 사실 저는 여행 유튜버들로 대리만족을 느끼기보다는 여행을 못 한다는 좌절감이 더 들었습니다. 화면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특이하고 재미있게 여행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여행했었는데, 나라면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묘한 배신감과 질투심이 끓어올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여행 유튜버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해외여행은 아예 불가능한 시기에 여행 유튜버로서 콘텐츠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고, 답은 내가 잘하면서 좋아하는 도보여행이다라고 결론 났습니다. 한여름 17일 동안 도보여행을 완주했고,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한 손에 고프로를 들고 걸으면서 혼자 이야기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오히려 걷는 것보다 돌아와서 영상을 편집하는 것이 훨씬 힘들었습니다. 유튜브로 영상 편집을 하나씩 독학하며 조금씩 영상 편집 스킬은 늘어갔고, 영상 퀄리티도 점점 올라갔습니다. 영상의 내용과 퀄리티는 만족스러웠지만 조회수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아니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일단 구독자 수가 너무 적었고, 주제도 유튜브 세계에서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보람이 없어도 포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틱톡, 릴스와 같은 숏폼 동영상이 대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른 틱톡을 가입했고, 인스타그램 릴스도 챙겨봤습니다. 편집을 하면서 느낀 점은 촬영은 최대한 짧게 그리고 주제를 생각하고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첫 쇼츠 영상 주제를 정했습니다. 바로 '선생님이 교복 입고 출근하면 생기는 일' 오래전에 구입한 갈색 바지가 제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복 바지와 너무 비슷하다는 것을 착안했습니다. 교실에 들어서니까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우리 반 학생들은 저에게 교복 스타일링의 마지막인 학교 마크가 새겨진 조끼를 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이 교복 입고 출근하면 생기는 일' 영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수많은 댓글과 좋아요가 달렸고, 조회수는 얼마 되지 않아서 100만을 찍었습니다. 인스타그램으로 모르는 수많은 10대 20대들에게 팔로우 신청이 왔습니다. 그 시점부터 저는 쇼츠 영상들을 주로 찍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영상을 만들면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이 세 플랫폼에 동시에 업로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플랫폼마다 연령층이 다르고 선호하는 영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영상은 무엇인지, 구독자들이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구(지리는 구독자)님들은 제 영상에서 학교와 학생들의 리얼한 진짜 모습을 원하고, 선생님의 의외의 모습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유튜브 쇼츠 영상은 업로드하면 하루 만에 조회수가 100만이 넘었고, 좋아요와 댓글은 미처 다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증가했습니다. 구독자 수도 하루 만에 1500명 정도씩 늘어났습니다. 교복 영상과 매점 영상으로 유튜브 '지리는 강선생'은 유명해졌습니다. 잇달아 '남고 매점에서 쉬는 시간에 햄버거 먹기 가능?'영상과 학생과 누가 더 빨리 뜨거운 만두를 먹는지 대결하는 '매점에서 냉동만두 먹기 배틀' 영상이 100만을 넘겼습니다. 3월까지 200명 언저리였던 구독자수는 1000명을 넘고 만 명을 넘고 2만을 넘어서 순식간에 3만 명이 되었습니다.
이제 쇼츠 영상은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고, 좀 더 길고 광고가 붙는 영상으로 성공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바로 기회가 왔습니다. 10월 중순, 3년 동안 코로나로 못 갔던 수학여행을 떠나게 됐습니다. 선생님에게 수학여행은 그래서 설레고 즐겁기보다는 정신없이 바쁘고 힘든 기억입니다. 그 선생님의 시선으로 바라본 리얼한 수학여행 영상을 담고 싶었습니다. 역시나 첫날부터 학생들은 다이내믹한 사고를 쳐대기 시작했고, 그 생생한 장면들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마지막 날 장기자랑을 끝으로 3박 4일간의 제주도 수학여행은 마무리되었고, 다음 주 '남고에서 수학여행 가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의 남고 수학여행 맛보기 영상이 공개되었고, 그렇게 또 다른 전설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티저 영상이 공개된 이후에 '남고 수학여행 잠 못 드는 첫날밤' 영상이 공개되었고, 최초공개 실시간 시청자가 1000명이 넘을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너무 재미있다는 반응과 빨리 2편을 공개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습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는 저의 이 수학여행 영상을 그대로 비율과 속도만 바꿔서 업로드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구독자 수는 다시 가파르게 상승했고, 둘째 날과 셋째 날 영상이 업로드된 이후에는 대한민국 전체 여행 유튜버 중에 구독자 증가율 1위를 몇 주간 찍기도 했습니다. 여행 유튜버 카테고리에서 종합 순위도 최근 공중파에도 자주 출현하는 곽튜브와 순위를 나란히 하기도 했습니다.
수학여행 영상들로 수익도 가파르게 증가해서 이제는 학생들에게 피자와 치킨, 고기 뷔페를 넉넉하게 사줄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출판사, 방송국, 신문사 등 다양한 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대행 MCN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상암동 MBC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고, 심지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젠가 한번 출연하는 게 꿈이라는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섭외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구독자가 늘어나고 조회수가 급증하면서 함께 늘어난 것은 바로 악플과 민원입니다. 물론 저의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극적이거나 위험한 표현들이 영상 속에 포함되기도 했고, 편집을 해야 했거나 적어도 모자이크 처리는 해야 했던 표현과 내용도 있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다 보니 겪는 시행착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교사의 신분이다 보니 더욱더 신경 쓰고 조심했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된 영상들은 바로 삭제하거나 모자이크 처리를 하였지만, 이후에 민원을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많은 악플이나 민원은 '교사가 유튜브로 수익을 창출해도 되나?' '공무원은 겸직 금지 아니냐?'였습니다.
저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수익이 창출되는 조건(구독자 1000명, 시청시간 4000시간)을 달성한 이후에 가장 먼저 관련 규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교사는 학교장과 해당 교육청에 겸직신청을 하면 유튜브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즉, 유튜브로 수익을 내는 것은 학교 이외에 외부 강의를 가거나 출판을 해서 수익을 내는 경우와 똑같은 셈이죠.
어쨌든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실명과 얼굴, 그리고 직장명까지 모두 공개를 했기 때문에 저에 대한 국민 신문고 민원은 바로 교육청으로 전달되고, 이는 다시 학교로 이어졌습니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그리고 민원 관련 행정을 처리하시는 행정사님들에게 죄송했습니다. 제가 유튜브를 하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 생겼고, 물론 좋게 보시는 분들이 많지만 저로 인해서 학교의 이미지가 안 좋아지지는 않을까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께 특히 죄송했습니다. 교사로서의 품위는 유지하되 유니크하면서도 재미있는 영상이면서 거기다 조회수도 잘 나오는 영상은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2022년 초 200명의 구독자로 시작한 유튜브 지리는 강선생은 2024년 8월 현재 약 85000명의 구독자로 400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저의 본업은 교사이고 그래서 당연히 저의 우선순위는 학생과 수업에 있습니다. 교사 유튜버로서 드는 생각은 의외로 유튜브를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꽤 괜찮다는 것입니다. 담임으로서는 교실과 유튜브의 경계선이 없어지면서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학급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고, 수업 측면에서는 조금 더 정제되고 짜임새 있는 수업을 준비하게 되고, 수업 영상을 학생들과 공유하면서 원격 수업으로도 빠른 전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학부모님들이 다 좋아하시진 않았겠지만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로 의견을 주셨습니다. 유튜브 댓글 창에서 만나는 학부모님들과의 온라인 상담은 정말 이색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자신들의 학창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전국의 많은 어른들의 댓글도 받았습니다. 또한 현재 교사가 되고 싶거나 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이 저의 영상들로 동기부여를 받아서 고맙다는 댓글을 받을 때는 정말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인터미션)
마이크를 잡고 전국으로
이렇게 작가와 유튜버로서 나름 작은 성공을 이루고 나니까 다양한 곳에서 강의 요청이 왔습니다. 하지만 첫 강의는 의외의 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첫 책 '여행이 부르는 노래' 출판을 준비하면서 책의 내용을 챕터별로 SNS에 공유한 적이 있습니다. 챕터의 제목은 '베르겐 상 정상에서 소주잔 돌리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르웨이 베르겐을 여행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북유럽 고위도 지역 여름에는 해가 굉장히 늦게 지고 일찍 뜬다는 것을 강조한 여행기였습니다. 그 내용을 페이스북 친구였던 모대학 교수님께서 보시고 인상 깊으셨는지 저에게 대학교 수업 특강을 요청하셨던 것입니다.
어쩌면 퍼기경의 말이 틀렸을 수도 있다!
저는 '내가 감히 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라는 패기가 공존하였습니다. 짧은 고민 끝에 저는 강의 요청을 수락하였습니다. 강좌명은 '지리 글쓰기와 논술'이었지만 강의 주제는 자유롭게 정해도 된다는 말씀에 저는 '빅데이터 시대의 이야기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라는 패기 있는 제목으로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코로나가 한참인 시기여서 줌으로 강의를 했는데, 그 강의가 저의 첫 외부 강의이기도 했지만 저의 첫 줌 실시간 수업이기도 했습니다. 긴장이 정말 많이 됐지만 여러 번의 예행연습과 강의 준비로 무사히 강의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계기로 다른 대학, 대학원의 특강도 큰 떨림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특강을 하게 된 경험은 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비공식 모임에서 만난 지리교육과 교수님이 있습니다. 그 교수님이 도시지리학회 간사를 맡고 계셨는데, 어느 날 저에게 학회에서 강연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강연의 순서가 무려 가장 처음이었습니다. 따로 기조 강연이라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학회의 오프닝 강연을 제가 하는 것이라니! 거기다가 제 앞의 청중은 전국에서 오신 지리교육과, 지리학과 교수님들인 겁니다.
저는 이것 역시 너무도 큰 부담으로 거절할 것인지, 아니면 영광으로 생각하여 수락할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저는 아직까지 자기 객관화가 덜 된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 한 관심을 한꺼번에 받는 것에 취해있던 것인지 약간의 고민 끝에 학회의 기조 강연을 수락하였습니다. 거기다가 주제는 도시지리학회와는 많이 동떨어진 '여행이 부르는 노래 북콘서트'였습니다.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당시 제가 주로 하고 있던 강의 주제이기도 했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의 강연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특강 도중 유럽에서 만난 첫사랑 이야기와 아버지를 주제로 한 챕터에서 전기톱 영상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학회를 이틀 남긴 시점에 강의를 전면 수정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SNS에 올립니다. 거기에 달린 댓글이 저에게 용기를 주었고, 저는 주제를 바꾸지 않고 강의를 하기로 다시 결심합니다. 댓글은 저를 처음 강의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교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강 선생 님 교수들이 그런 내용을 싫어한다는 것 자체가 편견입니다"
시작하기 전까지 정말 많이 떨렸지만 막상 시작하니까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전공책에서만 보던 교수님들이 제 앞에 앉아서 저의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경청해서 듣고 계시는 장면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었지만 한편으로 정말 짜릿했습니다. "오빠 여기서 뭐 해?"라는 대사와 화장실 문을 단번에 박살 내는 전기톱 영상이 나올 때는 큰 웃음도 나왔습니다. 그렇게 강원도 여고에서 근무하는 지리교사는 그렇게 학회 기조 강연을 무사히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소 무겁거나 부담되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지난 2023년 감사하게도 저를 많은 곳에서 불러주셨습니다. 저를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학부모님께서 저를 학부모 총회에 강사로 불러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원주에 있는 여자 중학교였습니다. 비가 정말 많이 오는 날이었지만 퇴근 후 바로 차를 몰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 강당에는 학부모회 부모님들과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비록 작은 규모이긴 했지만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특강을 했고, 작은 규모이다 보니 서로 소통하면서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강의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수업하는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서 하는 특강은 색다른 경험을 줍니다. 강의 대상이 그 학교 선생님들이 아니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면 그 재미는 더 해지는 것 같고요. 2023년에는 정말 많은 중,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외부 학교 강의는 전남대 사대부고 강의였습니다. 저의 강의 후 바로 진행될 강의의 주인공 서태동 선생님께서 불러주셨는데요. 춘천에서 광주까지는 자가용으로 왕복 12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금요일 오후 시간표를 전부 교체 후 오후 1시 30분에 출발을 했는데도 강의 시작 시간 7시 30분에 겨우 맞춰서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무려 1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주셨고, 저는 유명 스타가 된 것처럼 마치 팬미팅을 하듯이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청중을 강의를 통해 만났습니다. 이렇게 책과 유튜브를 넘어서 오프라인으로 교실에서 벗어나서 학생과 대학생, 일반인, 학부모님들을 만나는 색다른 경험은 스스로에게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면서 힘을 얻는 순간은 예비 선생님인 사범대학교 학생들, 교육 대학교 학생들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서 저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 동기부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입니다.
이처럼 저는 일반적인 교사에 비해 유니크한 경험을 하다 보니 1정 연수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특강 요청이 들어옵니다. 물론 정형화된 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 예를 들어 수업과 전공 지식, 상담 스킬은 필수적이라고 새 저 또한 그런 능력들을 갖추지 못하면 안 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비정형성적이거나 유니크한 교사도 학교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유니크한 선생님들도 저를 보며 용기를 얻을 수도 있고, 혹은 완전히 다른 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거나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너무도 다른 모습을 적대시하거나 불호의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교사는 정말 다양한 마음의 모양을 가진 학생들을 상대하는 직업임을 생각하시고 지금 이 순간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더라도 조금만 너그럽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교사로서의 정체성
제가 이렇게 유튜브도 하고, 책도 쓰고, 강의를 나가지만 교사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 즉 수업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그로 인하여 에너지를 받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들을 자신감 있게 해나가지 못 했을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교사는 수업으로 보여주고 수업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금 주어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최대 역량을 수업에서 끌어내지 못한다면 다른 일들을 추가적으로 하는 것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물론 수업을 잘한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수업은 선생님들마다 각자 잘하는 방식이 다르고, 학교 규모별,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냐에 따라서, 혹은 일반고, 특성화고, 국제고, 자사고냐에 따라서 수업을 마주하는 교사의 역할을 달라질 테니까요.
교과 수업 외에도 정말 다양한 수업을 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수업 방법과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는 지리 선생님 모임이라는 전국단위 지리교사 모임에서 10년 가까이 활동 중입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회장을 맡고 있고요. 처음 최지선에서 활동을 할 때 너무도 능력 있는 선생님들의 퍼포먼스에 주눅이 많이 들었습니다. 주변 선생님들의 프로젝트식 수업, 학생 참여형 수업, 켈리그래피 수업, 지리 데이 수업 등 저의 능력 부족 혹은 노력 부족으로 하지 못 하는 수업과 저의 수업을 비교하며 '나도 저 선생님들처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과 불안감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성향이 완전 반대이지만 오랜 기간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께서 조언해 주셨습니다. 강이석 선생님이 잘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고, 그러니까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제 저는 저 자신을 믿으면서 제가 그나마 잘하는 스토리텔링 수업을 지속했습니다. 보충 수업이나 소인수 수업에서는 문제풀이식 수업을 더욱 강렬하게 지속했고, 사회문제탐구나 세계문제와 미래사회와 같은 탐구식 혹은 융합 수업에서는 최신 사회 이슈, 반도체, 전기차, AI, 아이돌 문화, 숏폼, 주식 등과 같은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면서도 생활기록부에 의미 있게 기록될 수 있는 주제들로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저는 교직 생활을 중학교에서 시작했지만 고등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첫 담임을 맡았을 때 학생으로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이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모습의 담임교사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저는 완벽하지 않고, 감정 조절이 쉽지 않을 때도 많았습니다. 때로는 교사로서 너무 허용적이어서 학생들이 선을 넘을 때도 있었고, 다른 반 담임 선생님들과 다른 지도 방식으로 원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옮겼을 때 적응하지 못하고 한동안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처음 만날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학생이 갑이고, 교사가 을이다." 저는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학생들이 있어야 학교가 있고, 그 학교가 있어야 비로소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너희들이 있어야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학생이 갑이고 교사가 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찌 보면 요즘처럼 교권이 무너졌다는 뉴스가 자주 나오는 시대에 시대착오적인 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마음을 계속 유지하려고 합니다. 저의 마음이 진짜고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진심은 결국 통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실 공무원으로서 교사의 자질은 저에게 많이 부족한 것을 인정합니다. 꼼꼼하게 기안문을 작성하고, 학생들을 똑같이 챙기고, 학교 규칙을 완벽하게 인지하고 이를 공정하게 적용하는 것에서 저는 많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체질상 그런 것들을 잘 못하기도 하고, 선호하지도 않습니다. 가끔씩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도 받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점도 많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좋아하지 않고, 잘 못하는 것들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usic is my life!
퇴근 후 취미 활동은 일상에 에너지를 주고, 이는 학생들에게 분명 좋은 영향을 미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운동, 여행, 요리 등 다양한 취미가 있지만 그중 제가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은 음악입니다. 저는 음악 정확히 말하면 노래 부르는 것에 정말 진심이지만 재능이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한때 실용음악에서 보컬 레슨을 받을 정도로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것에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여고에 근무하던 시절 로비 음악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버스킹 공연을 하기도 했고, 3번 연속으로 학교 축제에서 엠씨 더 맥스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음악에 진심인 편
이제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것을 넘어서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용음악학원에서 미디 프로그램을 배우고 유튜브를 통해서 기본적인 화성학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 39'를 야심 차게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 39는 30대의 마지막 해에 앨범을 낸다는 계획입니다. 처음 이 생각을 한 시점이 2년 전인 2022년인데, 영국 가수 아델의 앨범 명을 따라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고 기획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유튜브가 갑자기 성장하고, 바쁜 일들이 몰리면서 음악을 작곡하고 앨범을 만드는 것은 잠시 정지해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 총 3곡의 커버곡을 녹음하고 뮤직 비디오를 촬영하였습니다.
첫 번째 곡은 코요테가 부른 '우리의 꿈'입니다.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오프닝 곡으로 밝고 희망찬 가사로 오랜 기간 인기를 얻고 있는 노래입니다. 이 곡은 2022년 9월 한참 유튜브가 상승하고 있던 시기에 친하게 지내던 선생님 한분과 학생 2명과 함께 실용음악학원에서 녹음하였습니다. 녹음 프로듀싱과 음원의 믹싱 작업은 실용음악 학원 원장님이 해주셨습니다. 사실 뮤직 비디오라기보다는 기존의 영상들과 녹음 실황을 조합해서 만든 영상입니다.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부르는 우리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으로 업로드하였고,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특히 뛰어난 가창력이 아니어도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댓글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두 번째 곡은 지올팍의 크리스천 커버곡입니다. 2023년 학교를 옮기면서 유튜브 촬영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 유행하던 지올팍의 크리스천, 그리고 그것을 커버한 지올빡의 '나는 지금 불교'와 비슷한 패러디 커버곡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생각이 떠오른 순간 바로 작사를 하고 역시 실용음악학원 원장님께 연락해서 다음날 바로 녹음하고, 뮤직 비디오 촬영과 영상이 나오는 데까지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의 기대만큼 조회수가 많이 나오거나 파급력이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는 것에 의미를 뒀습니다.
세 번째 곡은 QWER의 고민중독입니다. 올해 6월 초 드라이브를 하다가 유튜브 뮤직이 선곡해 준 노래가 귀에 꽂혔습니다. 찾아보니까 QWER의 고민중독이란 노래였고, 찾아보니까 헬스 유튜버 김계란 님이 만든 프로젝트 락 밴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세 노래와 밴드에 빠지게 되었고 뮤직 비디오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다시 실용음악학원 원장님께 연락해서 녹음과 믹싱 작업을 부탁하였습니다. 저 혼자 부르기보다는 실용 음악학과의 보컬 전공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과 함께 노래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노래를 녹음한 후 스케일을 좀 더 키워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학생과 콜라보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직접 뮤직 비디오의 콘티를 작성하고 출연자를 섭외하고, 촬영과 편집을 3주 만에 끝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 돈을 써가면서 음악을 녹음하고 뮤직 비디오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많은 살마들이 물어봅니다. 도대체 왜 이런 돈도 안 되는 힘든 일을 하냐고 말이죠. 사실 이런 질문은 제가 도보여행을 할 때도,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도 수도 없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재밌으니까요!"
에필로그
점점 교사에게 원하고 바라는 것이 많아지는 시대입니다. 저는 이럴 때일수록 교사가 더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저마다 다르듯이 선생님들도 각자 다릅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장점을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부터 쓰는 표현입니다."센스가 밥을 먹여주는 않지만, 밥을 더 맛있게 해 준다." 저는 교사의 행복감이 직업을 유지하는데 필수는 아니지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것을 즐기며 에너지를 얻고, 성취감을 얻고 그 과정에서 도파민도 얻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교사로서의 정체성은 잃지 않고 본분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뺏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다면, 교사로서 선생님으로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N잡러로 사는 것이 자신과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주변 선생님들의 시선은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이 가장 가까이서 자주 보는 어른입니다. 물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규칙을 알려주는 그런 반듯한 어른의 모습도 보여야겠지만, 때로는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하고 도전하고 에너지를 쏟아내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행복한 모습을 진심으로 보여준다면 학생들도 자극을 받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책을 출판하고 유튜브를 하면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업이나 조회 시간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됩니다. 이전에 했던 썰들이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지금 학생들에게 하는 썰들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되짚어보면 나는 책의 초고를 쓰는 순간부터 브런치에 올리고 출판사와 계약을 하는 과정을 학생들과 공유했고, 유튜브를 시작하고 몇 개의 영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학생들은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나에게 콘텐츠에 대한 고민과 악플에 대한 대처를 시청자의 입장에서 조언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책을 쓰고, 유튜브를 하기 전부터 학생들과 많은 이야기를 공유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목적이 무엇이든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리고 터무니없지만 한결같은 미래에 대해 꿈꾸는 저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또다시 생각해 보면 교사가 되기 전부터 항상 저는 터무니없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치 체 게바라처럼. 물론 당시에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자존감은 낮고 쓸데없는 자신감만 높아서 남들 보이기 좋은 꿈만 좇기도 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꿈보다는 항상 실천이 뒤쳐졌습니다.
여러 시련을 겪고 그 시련을 어쩔 수없이 온몸으로 받아내며 조금씩 성장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나브로 멘탈이 강해졌습니다. 스타트업 창업과 퇴사, 몇 번의 도보여행, 결혼 생활과 임용 시험을 거치면서 나의 이상은 어느새 현실과 점점 가까워져 갔습니다. 그렇게 저 학생들에게 조금 더 자신 있게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적어도 스스로 말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실행력이 생겼으니까요.
'여행이 부르는 노래'를 출판을 얼마 안 남긴 시점에 이런 생각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피소드 별로 어울리는 음악이 곁들여진 여행 에세이다 보니까 에피소드의 수와 수록된 노래의 수는 일치합니다. 불현듯 이 책을 함께 불러준 가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저자 친필을 써서 보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판이 되고 내 손으로 책에 들어오자마자 실행에 옮겼습니다. 인터넷에 나와있는 기획사의 주소를 찾았고, 기획사가 없거나 안 나와있는 가수들에게는 인스타그램 DM으로 메시지를 보내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그렇게 나는 유재석, 윤종신, 장범준, 성시경, 이적, 윤종신 등 수많은 가수들에게 내 책을 선물했습니다.
역시 이 과정도 학생들과 함께 공유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유재석이 책을 받고 감명받아서 혹시 유퀴즈에서 내 책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든지 "장범준이 내 책을 받고 '여행이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으로 작곡을 하면 어떻게 될까?"라고 정말 터무니없는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선생님은 정말 행복 회로를 잘 돌리시네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저는 행복 회로를 잘 굴리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 자체가 행복 회로였던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힘든 시기도 많았고, 남들과 나를 부정적으로 비교하면서 좌절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시간 정말 지루하게 길었습니다. 그럴 때 저에게 이 '행복 회로'가 없었더라면 절대 그 불행이 늪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 행복 회로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노라고. 비록 달성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지만 그래도 나는 꿈꾸고 도전하고 실패해도 또 도전할 거라고. 그렇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며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을 제가 누구보다 좋아한다는 것을 이제 저는 똑똑이 알고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행복회로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