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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Feb 05. 2021

체코 음식,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몰라

진짜 체코 음식

체코에서 체류한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그동안 만나본 체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것부터 꺼내어 보면 좋을까.

마구잡이로 들어온 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어떤 순서대로 꺼내 보여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일요일 아침마다 통을 돌리면 일련의 법칙도 없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하나씩 또르르~ 굴러 나오던 주택복권의 볼처럼 내가 먼저~ 네가 먼저~ 하며 생각들이 튀어나오려 하고 있어 정보의 정리 겸 체코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려 한다.


시작은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이었는데, 간단한 참고 이미지와 함께 설명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채널의 영상이었다.

체코와 무슨 관련이 있어서 알고리즘 추천으로 나에게 당도했을까 하는 의구심은 1시간 40분을 순삭 하게 한 영상을 다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위세 높은 몽골제국의 폴란드, 헝가리, 러시아 가까이에 이르는 광활한 범위의 유럽 침공에 대한 이야기이고, 직접적인 언급은 되지 않았지만 그 당시 몽골제국의 장수 중에 실력이 좋아 훗날까지 위대한 칭송을 받는 수부타이 장군이 아닌 수완이 좋지 않으면서도 잔인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바투 장군이 이끄는 진영이 체코의 모라비아 지역까지 점령했다고 한다.

바투가 이끄는 진영이 점령한 지역은 폐허가 될 만큼 마을을 심하게 훼손하고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유린했다고 전해지는데, 내가 살고 있는 체코의 남동쪽인 모라비아 지역의 오래된 마을에 방문해보면 그 사실을 느껴볼 수 있다.




조금 끔찍한 귀 과자 이야기

체코 모라비아 지역의 작은 마을을 다니다 보면 이름도 어째 섬뜩한 '귀 과자'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 특산품 과자를 볼 수 있다.

몽골제국이 체코 지역을 점령했을 때 체코 기독교인의 귀를 잘라 모아 소금에 절인 주머니들을 몽골 본진으로 전리품처럼 보냈다고 한다.

한창 유럽 영토 확장에 나선 몽골군들이 왕에 속하는 오고타이 칸이 죽자 유럽 정벌을 철수하고 몽골로 돌아가고 체코 사람들이 후에 이 사건을 기리며 사람의 귀 모양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던 것이 바로 이 '귀 과자'라고 하니 끔찍하면서도 슬픈 유래를 가진 과자였다.

멀리도 아니고 일본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우리의 '귀무덤'과 같은 끔찍한 역사가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있었다.



체코 슈트람베르크의 특산품 '귀 과자'

특히 '슈트람베르크'라는 작은 관광 마을에는 'Štramberské uši 슈트람베르크의 귀'라는 이름을 가진 과자를 파는 가게들이 몇몇 있다. 코로나 때문에 지금은 문이 닫혀 있지만 평소에는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생크림과 과일을 잔뜩 토핑 한 귀 과자를 먹는다고 한다.




마을 축제 때 '귀 과자' 만드는 모습

언젠가 여름에 동네 광장에서 열린 축제 때 '귀 과자'를 판매하는 부스가 있어서 과자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위 사진은 팬케이크처럼 구운 따뜻하고 부드러운 상태의 과자를 고깔 모양 틀에 넣어서 모양을 만들어 딱딱하게 굳히는 과정이다.


보기에는 한국의 전병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바삭하지는 않고, 맛은 유럽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특유의 진저 향이 강하게 나는 과자이다.



Štramberské uši 슈트람베르크의 귀




몽골제국의 자취가 남아 있는 음식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음식은 나도 정말 좋아하는 체코 전통 '비프 타르타르'이다.

타타르, 타타 락이라고도 불리는 이 한국 육회에 가까운 음식에도 역시 몽골제국의 자취가 남아있다.

중앙아시아, 몽골의 유목민들을 타타르족이라 불렀던 것에서부터 음식의 유래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말을 타고 다니는 유목민족이 말안장에 보관하던 고기를 다져 고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생고기에 갖은양념을 해서 먹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계란 노른자를 올려주는 모습이 한국의 육회와도 거의 흡사하다. 


체코에 오기 전에 투어 예능 프로그램 체코 편에서 이 '비프 타르타르'를 먹고 매우 만족해하는 패널들을 보면서 나 역시 그 맛이 궁금했었는데,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체코 음식 중에 하나가 되었다.


몽골족에 의해 전파(설에 가깝다) 되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현지식으로 변형되는 것이 바로 음식의 문화이다. 유럽 음식으로 정착되면서 자연스럽게 주식인 빵 위에 올려 먹게 된 '비프 타르타르'는 훗날 햄버거를 탄생시키는 시조가 되기도 한다. - 고 한다.


한국의 육회와도 흡사한 체코 '비프 타르타르'

기름에 튀겨진 딱딱한 빵에 생마늘을 슥슥 갈아서 양념이 된 육회를 듬뿍 올려 야채와 함께 먹는 '비프 타르타르'는 먹으면 먹을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체코 사람들은 향신료로 살짝 이용하는 마늘을 한국인 인증하며 거의 반을 통째로 갈아넣긴 하지만 튀긴 빵과 생고기와 마늘향의 조화가 완벽하다. 

소주도 와인도 아닌 바로 시원한 체코의 생맥주를 부르는 맛이랄까?!


햄버거의 시초가 되기도 한 '비프 타르타르'





Jelito 옐리토, 체코에도 순대가 있다

체코에도 한국의 피순대와 같은 순대가 있다.

동네 축제 때 알감자 볶음을 팔길래 사 먹어보니 꼭 순대 같은 소시지와 향신료를 넣고 함께 볶은 요리였다.

체코에서는 Jelito 옐리토라고 불리지만 에스토니아, 폴란드, 독일, 헝가리, 루마니아 등 중부 유럽 전역에서 즐기는 혈액 소시지라고 한다.


식당에서는 잘 볼 수 없지만 동네 축제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체코 음식 중의 하나이다.


체코 순대와 알감자 볶음




축제나 마켓에서 빼놓지 않고 먹는 체코 감자전 'Bramborák 브람 보락'

지금은 코로나 19 비상조치로 동네에서 때마다 열리던 축제도 마켓도 모두 행사가 금지되었지만 매년 여름, 가을에 동네 공원에서 열리던 체코 전통음식 마켓에서 빼놓지 않고 사 먹던 체코 음식이 있다.


코로나 전 동네 축제 모습




바로 한국의 감자전과 거의 같은 체코식 감자전 '브람 보락'이다.

감자를 채 썰어 밀가루, 소금, 계란 등을 넣고 마조람(오레가노)과 같은 향신료를 넣어 독특한 향이 살포시 느껴지는 감자전으로, 한국처럼 기름에 자작하게 부치는 전이 아니라 기름에 튀겨내는 음식이라 다소 느끼하긴 하지만 이 역시 맥주를 사랑하는 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맥주용 메뉴로는 딱인 것이다.


한 입 먹으면 시원한 모라비아 브루어리의 생맥주를 찾게 되는 신기방기한 맛.


한국의 감자전과 같은 '브람 보락 Bramborák'

이것이 기본인 플레인 브람 보락이고 여기에 치즈나 고기, 소스, 사우어 크라우트 등 여러 가지 토핑을 추가해서 주문할 수도 있지만 갓 튀겨내 바로 먹는 바삭한 식감을 위해 나는 주로 플레인 브람 보락을 먹는 편이다.


펍이나 레스토랑에서는 아래처럼 브람 보락 위에 화려한 토핑을 올려 하나의 메뉴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감자가 주식인 체코에서는 삶은 감자, 삶아서 으깬 감자, 구운 감자, 튀긴 감자 등 정말 무궁무진한 감자 요리를 만나볼 수 있다.


식당에서 먹는 토핑 브람 보락




양사 나이의 양젖 치즈 구이

내가 사는 곳은 정말 작고 오래된 광장에 딸린 마을이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은 나이가 어려도 200년은 족히 넘은 것들이고 할아버지들이 서서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가는 '할머니 와인바'도 있는데,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밤엔 그 가게에 납품을 하는 근처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부스를 세우고 신제품 시음과 함께 작은 와인 축제를 열곤 한다.

동네 와인 축제

와인 한 잔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치즈인데, 역시 와인바 옆집 치즈가게도 함께 부스를 열었다.

그런데 체코에서 조금 조심할 것이 있다면 바로 치즈의 선택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치즈 외에 염소젖과 양젖으로 만드는 치즈가 있고 또 흔하게 만날 수 있는데, 향과 맛에 호불호가 강해 잘못 선택해서 먹어보고 치를 떠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산악 지역 목동들이 산양 젖을 훈제해서 만든 저장용 치즈라는데, 폴란드와 가까운 지역이라 그런지 이 산양 젖 치즈 구이(오스취펙)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얇은 호밀빵에 양젖 치즈를 구워서 올린 다음 크랜베리 잼을 듬뿍 올려서 준다.

염장과 훈제 과정을 거친 치즈의 짭조름하면서도 스모키 한 향미 뒤로 달콤하고 시큼한 크랜베리 잼의 맛이 뒤따라 오니 오묘한 맛이 입안에 전체적으로 감돈다.


마지막으로 씹게 되는 호밀빵이 쿰쿰한 향을 더해 준다. 이것은 뭐다?! 와인 한 모금을 바로 부르는 맛이다.

사람들은 참으로 귀신같이 술과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어내고 먹고 즐기는 것 같다.



산양 젖 치즈 구이 'Oscypek 오스취펙'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길거리 음식 Pirožek 피로시키

이것 역시 체코 전통 음식은 아니지만 길거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이다.

보기에는 꼭 도넛처럼 생겼지만 안에 고기나 치즈를 넣어 빵보다는 음식에 가깝다.

원래는 채소, 고기, 치즈 등을 넣어 튀긴 러시아 음식이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지역이 가까워서 그런지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으로 전해지며 네 것 내 것이 없고 입맛에 맞으면 어디에서든 사랑받는 법이다.


접시도 포크도 필요 없어 마켓을 둘러보며 한 손에는 맥주, 다른 손에는 피로시키를 들고 먹기에 딱 좋은 체코 길거리 음식!

체코 음식, 그 어느 것 하나 맥주 없이 그냥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음식을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닌 맥주를 마시기 위한 음식이 대부분인 체코 음식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니 반절도 못한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는 조금 더 유명한 체코 음식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또 풀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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