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도 회고를 했었는데 취업을 준비했던 해라 그런가 회고의 초점이 굉장히 생산성에 맞춰져 있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올해는 좀 더 인간적인(ㅎㅎ) 방향으로 회고 글을 써보려고 한다.
2018년에 겪은 가장 큰 변화는 2가지였다. 2월의 이사와 8월의 이직.
먼저 정든 망원동을 떠나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다. 망원동 집과의 차이점이라면 내부 리모델링이 좀 더 잘 되어 있고, 방음은 좀 덜 잘되고, 바깥 현관이 옛날식이라 열쇠를 잃어버리면 못 들어오고, 주인집이 위층에 살고, 택배를 주인집 가게를 통해 받아야 한다는 것 정도다. 예전 동네에 비해 밝은 곳이고 주인집이 같이 살아서 그런지 무서움은 훨씬 덜한 대신 초반에 집주인과의 갈등이 조금 있었다. 그래도 내부가 꽤 깔끔하고 지하철역과 가깝고 출근 시간이 훨씬 단축되어서 만족스럽다.
그보다 조금 더 큰 변화는 이직이다. 에이전시인 첫 직장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이라 그 변화가 더더욱 크게 느껴졌다. 첫 직장에서 디자인의 기본에 대해 많이 배웠다면 이곳에서는 어떻게 '일'을 '함께'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정말 많이 배운다. 또 디자인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프로덕트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다 보니, 비즈니스적인 고민도 많이 하게 되고 디자인에 대한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현 직장의 가장 큰 장점은 플렉서블 근무와 리모트 근무가 가능하다는 것. 덕분에 이곳저곳 여행도 많이 다닐 수 있었다.
두 번째 여성기획자 컨퍼런스를 디자인 및 진행했다. 그래도 한 번 경험해봤다고 1회 때 보다 훨씬 더 여유롭고 능란하게 행사를 진행했던 것 같다. 자세한 이야기는 별도의 포스트를 링크해두었으니 거기에서 확인해보시길!
일본에 다녀와서 무작정 신청한 JLPT 시험을 무사통과했다. 사실 시험 전날까지 공부도 거의 안 해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시험을 보러 갔는데, 모든 오타쿠가 그렇듯 청해가 캐리한 덕에 어떻게 합격점은 받게 되었다. 시험을 통과하긴 했지만 사실 제대로 공부하진 않아서, 올해는 제대로 공부해서 N2 시험에도 붙고 싶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연하장을 만들었다. 시력검사를 컨셉으로 적색과 녹색을 사용해서 리소로 프린트했다. 받는 분들이 다들 기뻐해주셔서 그 맛에 계속 연하장을 만드는 것 같다.
'보라카이에 가서 육지만 보고 올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전 회사 사람들과 다 함께 배웠다. 사실 1회 강습료도 비싸고 거의 한 달간은 주말도 없이 배우느라 엄청 힘들었는데, 보라카이의 바다에 들어간 순간 정말 배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다시 한참을 안 하고 있는데 올해는 어드밴스드 자격증이나 프리 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싶다.
중학교 이후로 배운 적 없던 수영을 동네 체육센터에서 다시 배웠다. 할 줄 알던 거라곤 자유형과 배영뿐이었는데 처음으로 평영과 접영을 배워서 오랜만에 배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이 오면 다시 접영을 마스터하러 돌아가리라.
춤을 배우고 싶단 생각은 항상 했는데 학원을 가는 건 부담스러워서, '탈잉'이란 서비스를 통해 몇 번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했다. 원하는 춤만 골라서 배울 수 있고 선생님이 마지막에 녹화도 해주셔서 만족도가 높았다. 여전히 춤을 못 추는 편에 속하지만 2019년에도 원하는 노래의 원데이 클래스는 몇 번 수강할 계획이다.
여가여배 때 하고 싶었으나 스케줄 문제로 참여하지 못하고, 밋고에 수업이 다시 뜬 걸 보고 번개처럼 신청한 스케이트 수업. 보통 남성들이 탄다고 여겨지는 스케이트 보드를 여성분이 가르쳐주시고, 수강생들도 모두 여자인 특별한 수업이다. 덕분에 굉장히 편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할 수 있었고 몇 시간 만에 보드 타기와 틱택이 가능해졌다! 기회가 된다면 보드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밋고에서 수업을 여실 예정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밋고를 주시하시길.
그동안은 사진을 드롭 박스에 업로드 해왔는데, 진작에 구글 포토를 사용했어야 했다. 얼굴을 인식해서 사람별로 분류해주고, 장소별로 분류해주고, '동물'이나 '바다' 등 의 검색어를 입력하면 알아서 사진을 인식해서 찾아주는 기능까지. 특히 여행이나 행사의 사진을 다른 사람과 간편하게 공유할 수 있어 즐겨 사용했다.
위에서 말한 댄스 수업을 들었던 재능 공유 플랫폼. 학원을 가긴 애매한데, 뭔가를 배우고 싶을 때 활용하기 정말 좋다. 주식 수업과 댄스 수업을 들어봤는데 둘 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아서 아직도 심심하면 탈잉에 들어가서 '뭐 재밌는 거 있나'하고 살펴보곤 한다.
지인에게 소개받아 알게 된 맛집 공유 서비스. 기존 유저의 초대를 받아야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광고성 글이 거의 없고, 유저들의 충성도와 신뢰도가 높아 믿고 쓸 수 있다. 맛집을 찾아 검색했다가 매번 블로그의 광고글에 지쳤다면 뽈레를 강추한다.
위에서 말한 스케이트 보드 수업을 신청한 오프라인 모임 플랫폼. 온오프믹스 대표의 성추행 사건 이후 이를 대체할 서비스를 찾다가 지친 사람들이 직접 만든(!) 플랫폼이다. 이런 유래 때문인지 올라오는 모임들의 어떤 특징이 있는데, 그게 나한테 잘 맞아서 저절로 큐레이션이 되는 느낌이랄까. 굳이 신청하고 싶은 모임이 있어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들어갔다가 재밌어 보이는 모임을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
처음엔 여행용으로 샀다가 매일 밤 신세 지고 있는 제품이다. 그냥 다이소에서 대충 안대를 살까, 하다가 예쁜 디자인의 안대를 한 번쯤 가지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구매했다. 일단 끈 길이 조절이 되어서 머리에 착 붙는 느낌이 좋고, 코튼이나 실크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져 촉감이 정말 정말 좋다. 귀차니즘으로 인해 1년이 지난 지금도 방에 커튼을 설치하지 않았는데, 안대를 사고부터는 커튼 없이도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커튼이 있는 집이어도 와이파이 공유기 불빛 등 생각보다 방 안에 인공 불빛이 수면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면 안대를 한번 사보시라. 완벽한 어둠이 숙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절절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직을 하면서 쓸 노트북으로 USB-C만 있는 새로운 맥북을 신청했다. 예전 레티나에 비하면 정말 획기적으로 가벼운데... 일반 USB와 연결하는 허브를 사서 거기에 키보드, 마우스, 전원을 주렁주렁 연결하고 썬더볼트 연결용 잭을 또 사서 연결해야 한다. 평소에도 책상이 카오스 상태인 건 물론이고 자리를 한 번 옮기거나 카페에서 일할라치면 챙길 물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블루투스 키보드와 마우스를 쓰면 되지만 매번 전원을 켜서 연결하고 건전지 신경 쓰는 게 싫은 나는 유선을 선호하는데, 이어폰 잭 없어진 아이폰 마냥 무선 기기 사용을 강요받는 기분이다. 여기까지는 귀찮음의 영역이라 그렇다고 치더라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와이파이 연결이다. 전파 간섭 문제로 장소에 따라 USB-C에 뭔가를 꽂으면 와이파이가 아예 먹통이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걸 또 포트를 바꿔 끼거나 각도를 잘 비틀면 연결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비싼 최신 기기를 사서 내가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디자인 스펙트럼에서 주최한 비핸스 포트폴리오 리뷰. 많은 디자인 행사에 다녔지만 포트폴리오 리뷰만큼 직접적으로 인사이트와 자극을 얻었던 행사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보기 힘들다는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본인의 해설까지 함께 들으며 살펴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나. 여러 분야의 디자이너를 초빙한 것도 좋았고 포트폴리오에 얼마나 시간을 쏟았는지, 또 그 포트폴리오로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들으며 작업 욕구가 샘솟았던 경험.
개인적으로 콜렉팅 한 산업디자인 제품들을 전시하는 4560 디자인하우스의 전시. 운영하는 분께서 하나하나 도슨트를 해주시는데, 100% 예약제로 1회에 10명 남짓한 사람들만 관람이 가능하다. 이 곳이 아니었으면 한국에선 보기 힘들었을 디터 람스와 Braun사의 명작들을 한눈에 모아볼 수 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는 운영자분께 감사하는 마음이 팍팍 들 정도... 시리즈별로 수집된 아이폰과 아이맥도 구경할 수 있었고, 중간에 직접 LP를 돌려 오디오를 들려주시거나 오래된 티비로 영상을 보여주시기도 해서 너무 신기했다. 아무리 아껴 써도 공산품은 결국 고장 나기 마련이고, 오히려 쓰이기 위해 제작된 것들이므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게 이렇게 직접 시연을 해주신다고 한다. 디자이너라면 꼭 한번 관람하기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력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주던 전시. 처음에는 그냥 방 몇 개 있는 전시인 줄 알았는데, 2시간을 보고도 계속 볼 게 있을 정도로 거의 놀이동산 급의 크기를 자랑했다. 디자이너로서 보기에도 재밌었지만 2층에 어린이들이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게 만든 공간의 배려가 인상 깊었다.
같은 음악 하나에 다양한 작가들이 자기만의 영상으로 협업한 전시. 스케일이 무척 커서, 영상을 기다란 벽과 바닥에 프로젝션 하고 그 위에 자유롭게 걸을 수도 있게 해 놓았다. 전시는 물론이고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건축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디자인 스펙트럼에서 주최한 두 번째 포트폴리오 리뷰. 비핸스 포트폴리오 리뷰의 반응이 뜨거워 한번 더 비슷한 행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첫 번째 행사만큼 얻어가는 인사이트가 많았던 행사. 특히 토스의 강수영 님 세션에서 도움이 되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풀타임으로 두 달을 포트폴리오 만드는 데에 쏟았다고 하셔서 나는 포트폴리오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고 있나 반성도 했던 시간.
어도비에서 주최하는 크리에이티브 행사. 마침 일본에 갔을 때 열려서 참여하게 되었다. 어도비의 주요 신기능 소개와 활용법 등을 알려주는 세미나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여러 회사의 부스도 있고 칵테일 증정 행사 등도 많아서 축제처럼 즐길 수 있었다. Adobe XD로 스케치의 아성을 넘보고 아이패드 앱으로의 확장을 노리는 어도비의 야심을 엿볼 수 있던 행사.
회고글을 쓰다가 여행 파트가 너무 길어져서 급기아 단독 포스트로 나누게 되었다. 2018년에는 유난히 여행을 많이 다녔다. 보통 많아야 1년에 2번 정도 비행기를 탔는데 올해는 공항에 참 질릴 정도로 자주 간 것 같다. (세어보니 8번 정도 탔다) 모종의 이유로 두 달에 한 번은 일본에 가게 되었기 때문인데, 덕분에 올해 처음 가본 일본이 벌써 친척집처럼 익숙해졌다. 다녔던 여행지들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2월 - 보라카이
3월 - 일본 도쿄 & 가마쿠라
4월 - 일본 도쿄 & 요코하마
6월 - 부산
7월 - 일본 시즈오카
8월 - 일본 닛코
11월 - 일본 가와구치코
12월 - 제주도
보다 자세한 포스트는 2018년의 여행들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돌아보니 2018년은 2017년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즐기고 경험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일을 시작한 지 2년 차가 된 해라서 그런지 조금은 더 어른이 된 듯한 한 해였다. 항상 나도 모르게 스스로의 생산성에 대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데, 2019년에는 그런 걸 좀 내려놓고 행복에 좀 더 초점을 맞출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