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기획사에 들어와 일한 지 4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A회사의 뉴스레터를 세 번 만들었고, B회사의 잡지를 만들었고, C회장의 단행본을 하나 출간했으며, D작가의 원고를 교정했고, E회사 잡지 기획을 시작했으며, F작가의 원고 교정을 막 끝냈다. 물론 사이사이 자잘한 일은 마음의 안정을 위해 굳이 쓰지 않겠다. 백수로 지낼 때는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에 직접 몸을 담가 보니 쉬운 일이 아니다. 준비도 없고, 능력도 없이 전쟁터에 끌려 나온 학도병이 된 기분이다. 행주를 짜는 것처럼 나라는 존재의 시간과 에너지 모두 쭉쭉 짜내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직장인들이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자신을 녹여낸 비용과 상응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건 진리다. 도대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말하라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나’라는 귀하디 귀한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는 적어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고작 이런 일에 쓰이는 것보다 소중할 것만 같다. 안타깝게도 ‘고작 이런 일’을 헉헉대며 하고 있긴 하다만.
회사에 들어온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디자인 팀장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힘들면, 뭐라도 배우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확실히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요즘 팀장님들이 힘들어한다. 아마 직장인으로 10년을 넘게 보내도 계속 배울 것이 있나 보다. 기획 팀장은 다른 조언을 해주었다. 일단 못 하는 척해라. 할 줄 알아도 할 줄 안다고 말하지 마라. 잘하는 척하면 업무만 늘어날 뿐이란다. 그런 기획 팀장은 잡지에, 단행본에, 백서마저 도맡아 제작하고 있다. 아빠는 내가 아직 ‘일머리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일머리 좋은 30년 차 아빠는 이제 머리숱도 잃고 열정도 닳아 명예퇴직을 꿈꾸고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서글퍼진다. 내일은 나을 거라고, 익숙해지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긍정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말이다. 괜히 사회 선배들을 비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할까. 겨우 4개월 일하고 이렇게 징징거리는데 그들은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백수로 지낸 시간이 좋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 시간의 의미는 좀 더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이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괴롭고 힘든데 정말 여기서 그치는지 시간이 흘러봐야 알 수 있다. 왠지 안 읽히던 책이 막 읽힐 것 같기도 하다. 머리 위로 총알 같은 일 얘기가 지나다녀도 내가 읽는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길 것 같다. 소소하게 문법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오늘 새로 안 한글 표기법 ‘소시지, 앰뷸런스, 플래카드’. 영어라고 한글로 옮길 때 막 쓰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