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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Sep 19. 2021

시간은 영원하지. 이 순간을 붙잡는다면.

영화 <보이후드>, (2014)

어제의 너는 조금씩 자라 오늘의 내가 되었지.

어제의 나를, 그리고 훨씬 더 어제의 나를 만날 수 있는 영화, "보이후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는 12년 동안 같은 배우들로 촬영을 이어가며, 주인공 메이슨이 스크린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혁신적인 영화이다. 에단 호크와 패트리샤 아퀘트가 메이슨의 부모로 등장하며, 로렐레이 링클레이터가 주인공의 누나인 사만다로 분한 이 영화는 유년기의 다사다난함을 그 어떤 영화도 보여주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록한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과 가족 외식, 생일날, 졸업식과 같은 청소년기의 삶을 포함한 성숙기에 접어들기 전의 모든 순간들이 시대를 따라 변화하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과 함께 추억된다. <보이후드>는 아이의 성장과 이를 돌보는 부모가 겪는 삶의 격동과 감동을 노래하는 시이면서 지나가버린 시절에 대한 노스텔지어다. 12년 동안 촬영을 하면서 같이 성장하고 늙어가는 배우들의 모습과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섬세하면서도 꾸준한 연출력이 특이하면서도 인상적인 작품.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인생은 한 편의 영화다’ 라는 흔해빠진 미사여구가 있다. 모두가 자신만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고,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자신의 서사에 긴장감과 개연성을 부여해낸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줄곧 하곤 한다. 우리는 러닝타임 약 90년의 인생이라는 영화에 대해, 자신의 취향대로 장르를 반영하기도 하고, 해피엔딩의 결말을 소원하기도 한다.



   <보이후드>는 내 인생의 장르도, 해피엔딩의 유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남긴다. 바통터치를 할 내일의 내가, 오늘보다 더 성숙해진 내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숙제더미를 해낼 것이라 기대하곤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일의 나’같은 건 찾아오지 않는다. 숙제를 하다 잠든 어제의 내가 있을 뿐. 결국 내일 제출할 숙제를 제출하는 건 어제와 지금의 나다.  


  메이슨의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교 진학은 그의 인생에 있어 아주 특별한 지점으로 비춰진다. 부모님의 친구들과 친척이 찾아와 축배를 들며 앞으로의 인생을 축복하고, 심지어는 알바하는 가게의 상사까지 초대받아 그를 격려하기도 한다. 메이슨의 친아빠는 혼자서 아이를 어엿하게 키워낸 아내에게 고마워하고, 메이슨의 엄마는 졸업 파티 비용에 보태라며 건네는 그의 현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아들을 매개로 함께했던 서로의 시간을 되돌아보던 이혼 부부의 덤덤한 표정이 기억에 남기도 하다.


 

  사실 난 인생의 전환점을 ‘실감하는 자리’가 있던 메이슨이 부러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의 나는 파티는커녕 망한 수능 성적표를 붙잡고 걱정하기만 했으니까. 여기까지 잘 커서 대견하고, 앞으로도 인생을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는 건배사는 없었다. 지원해준 부모님께 면목이 없어서 매일 저녁자리에서 체하기만 했다. 그렇게 재수를 했고, 여치 저치 대학 편입도 해보고 졸업까지 했다.

  나의 대학 졸업에도 파티나 건배는 없었다. 사회로 내동댕이쳐졌다는 두려움과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만이 더 심화되었을 뿐. 대한민국의 대학생으로 살아오느라 고생 많았고, 완전하진 않더라도 스스로의 모습을 잘 그려왔구나 라는 식의 실감을 가져보고 싶다. 화면 너머에서 메이슨의 인생을 함께 기대하는 즐거움이 존재했던 이유도, 어제와 내일의 단절을 주변인들과 온몸으로 기념하고 실감하던 자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캠핑과 졸업파티만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오늘 내일의 단절과 연속을 발견하고 기념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내 인생의 장르를 확실히 할 수는 없어도 그 장르를 선택하는 것은 나의 자유이며, 기승전결에 반전 있는 개연성과 디테일을 부여하는 것도 나의 의지에 달려 있다. 나의 인생은 내가 꼽는 나의 ‘인생 영화’처럼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하품 나오는 오늘의 연속일 것이고, 서스펜스는 아주 찰나에 등장하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생에서는 내가 늘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불변의 원칙이 인생이라는 영화를 재미나게 만든다. 조연이 되고 싶어도, 지나가는 행인1이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나의 순간에 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오직 내 안의 나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리고 오늘은, 어제와 더 어제의 순간들을 겸허히 이어나갈 때 살만한 것 같다. 삶은 우리의 생각보다 치열하게 단순하다. 내일이라는 건 결국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어제 오늘의 연속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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