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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 Nov 03. 2021

나는 아직도 그 거리에서 살고 있었어

거리에 대한 기억거리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요즘 아이들은 네이버 지도에 있는 로드뷰를 통해 10년 전, 그러니까 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동네 모습을 구경한다는 것이었다. 2021년의 로드뷰 뿐 아니라 2013년, 2010년의 로드뷰까지 클릭해볼 수 있게 되면서 로드뷰에 쌓인 고화질의 사진 데이터로 현재와 과거의 거리를 비교해볼 수 있다니. 재미있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5살 때부터 17살 때까지 분당 정자동의 아파트 단지에서 자랐다. 지하철 두 정거장 정도의 영어학원을 가는 일 외에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유치원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고, 초등학교는 집에서 10분 거리였다. 중학교는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었고, 너무나 가까워서 베란다에서 이불을 너는 엄마의 얼굴까지 보일 정도였다. 학교가 마치면 집 앞 상가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서 저녁까지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아파트 주차장 정자에 앉아 친구들과 놀기도 했다. 



도시의 특징 중 하나는 기억이 빠르게 잊힌다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이상 기억은 빠르게 소멸한다.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정지돈, 문학동네, 2021                     



아파트 단지는 나의 작은 세계였고, 작은 행성이었다. 학교를 가고, 학원을 가고, 친구들과 노는 시시한 궤도들이 그 안에서 모두 돌아갔다. 그리고 아파트 안에 있는 시시한 생활 시설들과 식물들은 유년기의 순간을 떠올리는 일종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지금은 허물어진 야외 주차장 구석의 낡은 정자는 작은 해적선과도 같았고 (그곳에서 놀이를 만들며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유치원 앞에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밑 바위는 나만 가지고 싶은 프라이빗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프라이빗하기엔 지하주차장 입구가 근처에 있었다)  


유치원 앞 벚꽃나무. 봄이 되면 이 풍경을 보러 일부러 길을 더 돌아서 하교했다. 저 유치원에 첫 등교하던 날의 감각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계절마다 변화하는 나무의 그늘이 좋았다. 봄이 오면 아파트 단지는 분홍과 노랑으로 물들었고, 여름이 되면 초록빛 단지를 돌며 매미를 잡았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들이 신발을 간지럽히는게 좋았고, 겨울은 동생과 주차장에 쌓인 눈을 긁어 모아 눈놀이를 할 수 있어 신이 났다. 아파트 앞 실외 주차장은 학교 앞 운동장과 다름없었다. 주차장 바위 언덕 위에 올라가 경비아저씨가 내려오라고 하기 전까지 탐험놀이를 했고, 분명 자동차 연기를 잔뜩 먹고 자랐을 정체모를 나무 열매와 라일락 꽃을 빨아먹기도 했다. 


상가의 문방구와 슈퍼는 우리들의 핫플레이스였다. 지금도 아파트 앞 CU 편의점이나 드림디포가 초등학생들의 핫플레이스이긴 하지만, 그 때만큼의 영향력은 덜 할 것이다. 학교가 끝나기만 하면 문방구에 꼭 들러 학종이와 아바타 스티커를 사모았고, 혀가 파래지는 백원짜리 사탕을 실내화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돈이 없어 저금통을 칼로 가르다가 손가락을 베어서 몇 바늘 꼬맸던 기억도 난다. 


네이버 로드뷰로 2010년의 동네를 걸었다. 책상에서 턱을 괴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나 대신, 어색하게 큰 교복을 차려 입은 중학교 1학년의 내가 그 곳을 지나고 있었다. 베란다 창문이 열려있는 13층의 우리 집, 체육관 공사가 막 진행중인 나의 중학교, 대학생 언니에게 과외를 받았던 카페베네를 걸었다. 일요일이면 아빠와 동생과 영화 비디오를 빌리러 갔던 DVD가게, 지금은 드문 커다란 동네 서점이 반가웠다. 아파트 동수의 폰트는 지금보다 촌스러웠고, 도로 위 자동차들의 표정은 이유 없이 부드럽게 다가왔다. 


2021년. 익숙한 상가. 낯선 가게들.


2010년. 위와 같은 상가.  익숙한 가게들. 저 소망문구 간판을 보자마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래, 저 문방구..' 저 문방구에서 학교 모든 준비물을 샀다. 


2010년. 학원가 앞 분식집. 그 시절의 내게는 떡볶이 나라가 진리였다. 학원 수업이 늦게 끝나면 선생님이 저곳에서 범벅이를 사주시기도 했다.


2010년. 아파트 앞 정자. 지금은 허물어졌다. 저기서 거미줄 놀이도 하고, 역할놀이도 했다. 괜히 누워서 천장을 보기도 했다. 



'이 가게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2010년, 2013년, 2018년, 그리고 2021년의 로드뷰. 간판들은 점점 세련되어졌고 내가 아는 가게보다 처음 보는 가게들이 더 들어서는 모습이 기록되었다. 과거의 촌스러운 풍경과 어색할 정도로 세련되진 현재의 동네가 몇 개의 버튼 사이에 교차하는 것이 묘했다. 내가 꿈처럼 어렴풋이 추억하는 거리를 노트북 모니터로 마주할 수 있다니. 그것도 고화질로.. '꿈을 찍는 사진관' 동화가 떠오르기도 했고, 이런 데이터를 남겨준 네이버가 고마웠다.


그 동네를 떠난지 8년이 다 되어간다. 이사를 하고 나서 꿈에 그 동네가 참 많이 나왔다. 꿈 속에서의 나는 당연한 듯이 그 집에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잃어버린 것을 기억해내려 한다. 동네에 관한 꿈을 꾸고 나면 늘 사무치듯이 그리운 감정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곳에 중요한 것을 두고온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버스나 차를 타고 그 동네를 지나가면, 내가 살던 동네라는 반가움이 드는 동시에 꿈에서 본 광경에 내가 놓인 것만 같은 착각을 하기도 했다. 


네이버를 닫고 집으로 돌아온다. 무의 쌉싸름한 맛을 닮은 20대 초중반이 담긴 나의 집. 오늘의 집. 오늘의 거리. 오늘 지나친 풍경을 괜히 돌아본다. 어제보다 달라진 것은 없다. 이 특별하지 않은 작은 동네도 내가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리워지겠지. 그립다는 이유로 꿈에 나오겠지. 미래의 나는 이 곳에 무언가를 놓고온 것만 같은 이상한 예감을 다시 하겠지. 그 예감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매일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일까? 다시 또 돌아본다. 나를 부르는 엄마아빠의 목소리. 어제보다 깊어져가는 그들의 주름, 그리고 슬픔. 자라나는 마당의 나무들, 그 모든 풍경이 스쳐가는 내 방. 그 곳에 누워있는 나.  



그래. 그 곳에는 내가 있었지. 

그리고 이 곳에도, 내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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