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년 전 카카오톡을 열어보았다

그사이 변한 것은 무엇일까

by 은달

스위스에 정착한 지도 5년 차.


해외생활을 나름 오래 한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내가 해외에서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에 있는 인연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어쩌다 한국에 들어가 친구들을 만나도 나와는 너무도 다른 그들의 삶의 방식에 공감하기 쉽지 않게 되고,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오래된 친구들과의 옛 정은 아직 남아있지만, 이제 일상을 쉽게 공유할 수는 없는 사이라는 것을 느낄 때면 서글퍼지곤 한다.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문득 예전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궁금해졌다.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들은 인스타그램이 팔로우돼 있어 비교적 쉽게 소식을 알 수 있지만, 다른 몇몇은 활동을 하지 않거나 계정을 몰라 연락이 끊긴 지 꽤 오래된 친구들도 있었다. 인스타그램은 가볍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창구라면, 카카오톡은 정말 무슨 일이 있을 때 써야 하는 창구로 느껴지기에 그들에게 쉽게 연락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갑자기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카카오톡 창을 열었다.



카카오톡을 사용한 뒤로 대화 내용을 삭제하거나 한 적이 없기 때문에 꽤 오래된 대화 기록도 볼 수 있었다. 대화 창 스크롤을 내리면서 그동안 나를 스쳐지나간 사람들이 보였다. 그 중 몇몇은 이름을 봐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한때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연락이 두절된 전 직장 동료들도 있었다. 많은 대화 창들 중 몇 개를 골라 들어가 보았다. 예전의 나는 이런 대화체를 사용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사람들과 어울렸구나. 알 수 있었다.



대화 창에 보이는 여러 사람들 중 몇 명은 정말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다. 두 명을 골라 용기 내어 선톡을 보내보았다. 학부생 때 연구인턴으로 만났던 사람들인데, 인턴 시절 당시 나름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라 오랜만에 연락해도 받아줄 것 같았다. 내가 연락한 시간이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이라 답장이 바로 오지는 않았지만, 자고 일어나니 둘 다 반가워하며 나의 안부를 묻는 답장이 와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내년에 스위스로 놀러 오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아직 한국에서의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예상 외의 호응에 들떴던 걸까. 이번에는 고등학교/대학교 때 내내 친했던 한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한다. 이 친구는 함께 멀리 해외여행도 같이 갔을 정도로 정말 친했다. 이십 대 중반이 넘어가며 서로 바빠지면서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겼지만, 예전에는 매일 카톡을 주고받을 정도였다. 친구에게 가볍게 우리가 여행 갔던 추억을 상기시키며 "이번에 거기 또 다녀왔는데 네 생각 나더라" 하는 식으로 연락을 했다.



그런데 친구의 반응이 생각보다 미지근하다. "아 그때 좋았지~ 다시 가고 싶다" 같은 말로 답장을 보내왔지만, 오랜만에 연락한 나의 안부에 대해 특별히 묻지는 않았다. 그래도 유학 초반에는 거기 생활은 어떤지 주기적으로 묻던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 연락이 뜸해졌다. 그 친구에게 서운하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어른이 되면서 각자의 삶은 너무도 다르게 흘러가고, 친구 한 명 한 명 신경 쓸 시기가 아닌 때가 찾아오니까. 나도, 그 친구도 서로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으니까. 그저 몇 년 전, 날 좋은 봄날 한국에서 친구와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웃고 떠들면서 길을 걷던 날들이 생각나 조금 슬펐다.



이곳, 스위스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문득 사무치는 공허감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할까.


나는 어떤 이유로 이곳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결국 멀어질 수밖에 없는 걸까.



나의 일상에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도, 아니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평화롭고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을 것처럼 보일 텐데도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뇌리를 스친다.



아직 나는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 바쁠 때면 피곤함을 호소하면서도 주말이 되면 딱히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과외나 서포터즈 등의 다른 일을 찾게 된다. 그래서 무언가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그것이 아이돌이던, 스포츠던, 아니면 다른 무엇이던. 한국에 있을 때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닌다기보다 그저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주로 맛집과 카페에 갔고, 신나게 수다를 떨다 돌아오는 것이 나에게 '노는 것의 즐거움' 이었다.



매 주 주말 친구들과 만나 까르르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사라진 지금은, 그래서인지 가끔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때가 너무나도 소중했음을 지금에서야 느낀다. 아직은 어른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아 작고 사소한 것들에 울고 웃을 수 있었던, 순수하고 낭만적이었던 그때를 추억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많이 달라졌을까. 옛 친구들과 언젠가 다시 만나 즐겁게 놀 수 있을까. 흐릿해지는 기억을 가끔씩이라도 붙잡으며 살아가고 싶다.







사진 출처: https://www.punchkorea.com/wp-content/uploads/2020/02/kakaotalk-app-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 돈이 좋은데 어떡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