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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보고 싶은 밤

너무도 멀리 있지만,

by 은달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날씨가 선선해서인지 몰라도, 요즘 들어 옛날 생각이 자주 난다.


특히 엄마 생각이 자주 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계속 생기고, 그것의 허무함 또한 느끼게 된다. 회사에서의 나는 철저하게 회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직장 동료들과는 일적인 대화 이외의 것들은 전부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프랑스어 학원에서의 나는 학생이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프랑스어를 가르쳐준다. 그러나 결국은 그 사람에게 나는 돈벌이의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곳에서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인연들에게도 나의 온전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한다. 나를 전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사람은 가족 뿐이다.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했다.


최근 이곳에서의 행정처리 관련하여 골치 아픈 일이 있었는데, 겨우 해결되었다며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이런 사사로운 것들을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한결 가벼워진다. 한국에 살 땐 즉각 연락해서 수다떨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쉽지 않다. 아무리 별 게 아니어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역시 아무 얘기나 다 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마음이 통했던 걸까.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니 말이다. 아, 물론 걱정 끼칠 만한 일은 웬만해선 얘기하지 않지만.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일 거다. 한참 이야기하다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다.



'내가 떠난 후 엄마는 나를 많이 그리워했겠구나...'



깨달았으니까.


한국에 있을 때 우린 종종 둘만의 데이트를 하곤 했다. 서울 외곽으로 드라이브를 나가기도 하고, 집에 오는 길 카페에 들러 한두 시간 머무르다 오기도 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커피 한잔 하며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국내외로 일 년에 한두 번씩 여행도 갔다. 둘 다 아침형 인간에다 취향이 비슷했기에 함께하는 여행이 즐거웠다.


이제 그런 일상을 나누기에 너무나도 멀리 살고 있는 우리. 그것이 갑자기 너무도 무겁게 와 닿았다. 얼굴 한 번 보려면 사전에 철저히 계획을 세워 꼬박 하루를 날아가야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주말에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이야기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이. 옛날 생각이 나를 파고들었다. 주말에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으면 엄마가 주방에서 뭔가를 하는 소리가 났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가끔 엄마가 틀어놓는 클래식 음악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오후 세시쯤이면 내 이름을 부르며 '출출한데 뭐 좀 먹을까?' 말을 걸어오던 엄마.


우리 엄만 슬픈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 떨어져 있어서 슬프다던지 하는 감정을 전혀 내보이신 적이 없다. 엄마가 우시는 건 외할아버지 장례식 때 처음 봤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문득 느껴지는 것이다. 말로 한 번도 표현하신 적 없지만, 그냥 느껴진다. 매일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내가 곁에 있었던 이전의 날들을 그리워하고 계신다는 것이.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그래도 너 나중에 마흔 살 넘으면 외로우니까 한국 들어와~' 라고 하신 것이 떠올랐다. 그저 가볍기만 한 말은 아니었겠지.



그날 밤 남자친구가 가족들과의 만남 이후 집에 돌아왔다. 비행기로 두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가족이 산다는 것이 처절하도록 부럽고 질투가 났다. 그날은 나답지 않게 그 앞에서 눈물을 계속 흘렸다.






<윤희에게> 라는 영화를 봤다. 어디선가 먹먹한 영화라는 후기를 본 것 같아서.


영화는 여러 가지 인간관계를 보여주지만, 나는 윤희가 딸 새봄이에게 '남자친구 있지?' 하고 물어보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왔다. 새봄이는 어떻게 알았냐며, 왜 그럼 지금껏 아는 척 안 했냐며 묻는다. 윤희는 '언제 말하려나 하고 기다렸지,' 라고 대답한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나와 우리 엄마 같아서 울었다. 엄마도 똑같이 말했으니까. 처음 남자친구를 사귀었을 때도, 헤어졌을 때도 엄마는 내 모습을 지켜봤다. 헤어지고 엄마 앞에서 펑펑 울던 나를 토닥이며 좋은 경험 한 거라고 담담히 위로했던 그날이 생각났다.



언제까지나 매일을 함께할 것 같았던 엄마가 지금은 너무 멀리 살고 있다. 그냥 가끔은 그 사실이 슬프다. 한국에 다녀온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너무도 그립다. 보고 싶다. 아직 어른 되긴 멀었나 보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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