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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안, 작은 친절에 미소짓게 된 이야기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by 은달

얼마 전 다른 나라에 볼일이 있어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다른 나라라고 해도 유럽 내륙이라 비행기로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 이사를 마친 터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탓에 다가오는 일정이 반갑지 않았다. 게다가 주말에 잡힌 일정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새벽 공기를 마시며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오면 항상 스쳐지나가게 되는 많은 사람들. 저마다 갈 곳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느라 바쁘다. 아이를 달래는 부모, 껴안고 입맞춤하며 작별인사를 하는 연인, 배낭여행을 가는 젊은 청년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걸까.


예전에는 딱히 인식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내 몸을 익숙하지 않은 먼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는 것이다. 매일 타는 지하철, 매일 걷는 거리가 아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장소를 이동한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처음 타보는 기차가 연착되지는 않을까, 처음 가보는 공항에서 길을 찾기가 어렵지는 않을까.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그런 것들이 마냥 흥미롭고 재미있기만 했다. 더 많은 걸 겪고 알게 된 지금은, 낯선 곳에 갈 때마다 경계하며 주위를 살피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걸까.



짐 검사를 마치고 기내에 탑승했다. 매우 작은 2-3 구조의 비행기였고, 운 좋게 나는 2명이 탑승하는 자리의 창가에 배정되었다. 심지어 얼마 후 내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직원의 안내를 받더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아싸! 왜였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승객으로 꽉 찬 비행기에서 여유롭게 갈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코트와 머플러를 옆자리에 놔두고 편히 다리를 뻗었다. 비행기는 잠시 후 출발했다.


이른 아침 비행기였던지라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잠시인 줄 알았던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던지, 벌써 기내에 착륙 방송이 울리고 있었다. 체감은 1시간보다도 짧구나, 하며 한국이 이렇게 가까웠으면 참 좋았을텐데-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옆을 봤는데 내 코트 위에 물과 초콜릿이 놓여 있었다.


옆자리에 놓여 있던 물과 초콜릿


누군가는 '원래 비행기 타면 주는 건데, 자는 승객도 챙겨주는 게 당연하지' 할지도 모른다. '국적기였으면 그 정도 서비스는 기본이지'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탄 항공사는 스위스에어로, 그동안 이 항공사를 이용할 때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자리에 물과 초콜릿을 두고 간 경우는 없었다. 그저 운이 좋아 배려심 깊은 승무원을 만났네- 하며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날 그 승무원의 행동 덕분에 마음이 아주 따뜻해졌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기 때문이다. 외항사의 서비스를 생각했을 때 내가 자는 사이 물과 초콜릿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뭐라 할 승객은 거의 없다. 필요 시 요청하는 것은 승객의 몫이다. 그 승무원은 순전히 배려심으로 나를 위해 그것을 놔두고 간 것이다. 조용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요새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사람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 상태지만, 가끔 이런 일이 생기면 그래도 믿고 싶어진다. 세상에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그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로 세상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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