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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네 번이나 이사하게 된 사연(1)

by 은달

2021년 9월, 취리히 공항에 첫 발을 내딛으며 나의 스위스 유학생활은 시작되었다. 출국 전 다행히 기숙사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유럽 기숙사들은 보통 학교 안에 따로 있지 않다. 그 대신, 도시 곳곳에 흩어진 건물 몇 개가 기숙사로 이용되는 형태다. 스위스의 경우 WOKO, JUWO 등의 기숙사 관리 회사가 있다. 내가 살게 될 곳은 취리히 중앙역에서 약 30분 떨어진 조용한 동네였다. 엄청난 짐을 이끌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건물을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기숙사의 구조는 총 7개의 방이 하나의 플랫(flat)으로 구성된 형태였고, 각자 방이 있지만 부엌과 화장실 등은 공유해야 했다. 키를 받고 배정된 곳의 문을 열었다. 아직 개강하지 않은 시기라 기숙사에는 사람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같은 플랫에 이미 살고 있던 학생들 몇 명이 남아있어 나와 인사를 하고 공간을 안내해 주었다. 시설은 굉장히 모던한 편이었지만 아주 아늑한 구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바닥이 와인색(...) 인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간단히 둘러보고 내가 사용하게 될 방의 문을 열었다. 1인용 침대와 책상과 책꽂이가 놓여 있었다. 천장에는 유럽식의 노란색 조명이 달려있었다.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정말 이곳에서 살게 되는구나. 3평 정도 될 것 같은 이 작은 방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스위스 도착 첫날 찍은 내 방 사진



이곳에서의 기억은, 사실 아주 많지는 않다. 예상치 않게 3개월 후(!)에 이사를 가게 되기도 했고, 한창 코로나 백신을 맞을 때라 같은 플랫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난방이 잘 되지 않아 많이 추웠던 기억은 난다. 작은 냉장고를 7인이 사용해야 했기에 정말 최소한의 장만 봐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지 싶은데, 스위스 도착 후 극초반기에 머물렀던 곳이라 그런지 딱히 내 공간에 대한 인식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주어진 일을 처리하고 수업을 듣고 공부하느라 바빴다.



첫 번째 이사: 좀더 아늑하고 포근한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살던 기숙사에서 다음 학기를 연장해주지 못한다고 했다. 선착순으로 연장 신청을 받는데 그에 실패한 것이다. 예정대로 이듬해 1월에 이사를 해야 했다. 문제는 취리히 공대에서는 1월 말부터 시험기간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시기에 집을 알아보러 다닐 것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차라리 내년이 되기 전 12월에 이사를 하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즉시 집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는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보통 이사를 가려는 세입자들의 공고를 보고 연락을 취하는 방식으로 집을 구해야 하는데, 취리히 같은 대도시는 항상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방 하나 구하는 공고에 20명씩 몰려올 때도 있다. 이런 소문을 하도 많이 들은 터라, 최대한 빨리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말 다행히도 나는 2주만에 새 집을 구했는데, 절대 일반적인 케이스가 아니다. 초반에 연락을 돌렸을 때는 100군데가 넘는 곳에서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간절했기 때문에 자기소개 프레젠테이션까지 만들어 플랫메이트가 될 사람들에게 보냈다. 이메일 답장이 오지 않으면 전화해서 혹시 지원서를 받았는지 재차 확인했다.


열과 성을 다해 지원서를 돌리고 있는데,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집을 한번 보러 오라고 했다. 정말 잘 보여야겠다는 마음으로 사회성을 최대한 장착하고 집을 보러 갔다. 그곳은 방이 총 3개인 3명 플랫이었고, 화장실이 두 개 있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같이 살 사람들도 무난해 보였다. 무엇보다 집 안에 들어서는데 난방이 잘 되어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최선을 다해 면접을 보고 이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도했다.


며칠 후 이 집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가 방문한 날 없었던 다른 플랫메이트가 나와 대화하고 싶으니 영상통화를 한 번 하자는 것이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통화를 수락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리스인 여자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리스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자는 생각으로 힘껏 웃으며 대화했다. 대화 끝에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대답을 해왔다. 해냈구나! 뛸 듯이 기뻤다.


좀더 크고 아늑해진 내 방. 심지어 이때 전자피아노도 빌렸다!



사실 이때가 크리스마스 즈음인데,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명절이라 모두 가족을 보러 돌아간다. 홀로 외롭게 지내야 할 것을 생각해서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필사적으로 피아노 대여 서비스를 신청했던 기억이 난다. 이사 시기와 맞춰 이사한 다음 날 피아노가 도착했다. 당시에 외롭지 않으려고 참 많이 애썼던 것 같다.


이 집은 사실 지금도 애착이 가는 곳이다. 건물은 많이 낡았고 오래된 나무 바닥이라 삐걱삐걱했지만, 지친 유학생 일과를 끝내고 돌아오면 항상 내게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나무와 정원 풍경도 예뻤다. 눈이 쌓이면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에 2년 정도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학교를 다녔고, 졸업을 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그 중 몇몇은 집에 초대하기도 했고, 지금의 남자친구 또한 이곳에 살 때 처음 만났다.


같이 살던 친구들도 가끔 생각이 난다. 2년 동안 멤버가 몇 명 바뀌었지만, 함께 살던 독일인 친구 R와 이탈리안 친구 D는 정말 친근하고 성격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직도 가끔 연락하고 지낼 정도로 이들에 대한 기억은 좋게 남아있다. 유럽에 처음 홀로 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적어도 초반부는 플랫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을 추천한다. 유럽인들의 문화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고, 친구 만들기도 쉽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사: 호수가 아름답게 보였던 예쁜 집



한창 석사 졸업논문으로 바쁠 때였다. 졸업 후 미래에 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저마다의 계획을 갖고 이곳저곳 지원해보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는 스위스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들에게 최대 6개월간의 구직비자를 준다. 옆나라 독일이 1년을 넘게 지원해 주는 것을 생각하면 길지 않은 기간이다. 게다가 스위스는 높은 연봉 덕택에 주변 국가들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곳이다. 유럽인이 아닌 신분으로서 일자리를 따내기 쉽지 않은 구조다. 이것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나니 하루빨리 구직을 시작해야 한다고 느꼈다.


졸업 예상시기 약 4개월 전부터 구직을 시작했는데, 당연히도 지원한 많은 곳에서 서류 합격 연락도 오지 않았다. 뭐가 문제일까 하며 지원서류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유럽은 대부분 CV 와 cover letter 라는 걸 따로 낸다는 것을 알고 다시 정성 들여 레터를 작성했다. 회사마다 다르게 적힌 인재상을 반영해서 작성하려고도 노력했다.


고단한 여정 끝에 정말 운이 좋게도 한 회사에서 나를 채용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다만 내가 거주하고 있던 취리히가 아닌, 프랑스어권 지역의 로잔이라는 도시에서였다. 겨우 적응한 도시와 언어권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사실 꽤나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정말 좋은 기회였다. 내가 쌓아온 커리어와도 방향성이 일치했다. 다시 한 번, 용기내 도전해 보기로 했다.


로잔은 취리히보다도 집 구하기가 까다롭다. 매물이 많지 않은 데 비해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직장인, 학생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우선 급한 대로 단기간 집을 빌릴 수 있는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임시 거주지를 정한 후 현지에서 돌아다니면서 집을 보러 다닐 생각이었다. 도심에 위치한, 너무 오래되거나 열악하지 않은 집으로. 한 곳에서 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 자리에서 기차 티켓을 결제하고 그 주 일요일 취리히에서 기차를 타고 집을 보러 갔다. 그리고 그 곳에 3개월간 머물게 되었다.



취리히에서 로잔으로!
호수와 산이 보이는 뷰가 너무 예뻤던 이 집.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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