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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네 번이나 이사하게 된 사연 (3)

by 은달
이전 포스팅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스위스에서 네 번이나 이사하게 된 사연(2)
https://brunch.co.kr/@alpsengineer/80


로잔에 직장을 구하게 된 이후 주어진 3개월의 시간 동안, 다행히도 새 보금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probation period(수습기간)이었던 3개월도 함께 끝나서 나름 '안정적인' 직장과 집을 얻은 셈이다. 회사 적응기간에 집을 보러 다닌지라 너무도 지쳐 있었기에, 집을 구한 것 자체만으로도 한시름 놓은 기분이었다.


이 집에 이사를 오고 난 후 처음 1개월 동안은 정신없이 흘러갔던 것 같다. 첫 2주는 짐 정리하고 당장 필요한 가구들을 사고 조립하느라 바빴고, 그 다음 2주 동안은 한국에서 가족이 방문을 하게 되어 가족들 챙기기에 바빴다. 방문이 없는 집이었기에 손님 두 명과 함께 지내기에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가족에게 나의 일상에 대해서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작은 집에 나와 남자친구, 어머니와 동생이 함께 둘러앉아 카드게임을 하며 한바탕 웃었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들을 배웅한 후 본격적으로 새 집 생활이 시작되었다.


새 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은 분명 내게 새로운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특별했던 것은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로잔의 임시 숙소에 거주할 때 그가 일주일씩 와서 지낸 적도 있었지만, 잠깐씩 함께 지내는 것과 아예 살림을 합치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다행인 것은 그는 독일에서 가져올 가구가 있었고 나는 없었다는 것이다. 둘 다 가구가 있었으면 좁은 집에 놓기 상당히 곤란했을 것이다. 그가 가져온 소파, 액자, 조리기구 등 덕분에 비교적 빨리 집이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우리의 한 집 생활은 비교적 평탄했다. 서로 맡은 집안일을 열심히 했고, 요리 당번을 번갈아 하니 큰 갈등이 생길 일이 없었다. 둘 다 잔소리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무덤덤한 성격이기도 했다. 서로의 모습을 좀더 가까이서 보게 되니, 상대를 더 잘 알게 된 건 기본이었다. 새로운 집에 대해서 큰 불만이 있지도 않았다. 채광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부엌에 갖춰질 것은 다 갖춰져 있었고, 따뜻한 물이 잘 나왔으며, 난방도 잘 되는 집이었다.


그런데 왜 이사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구분된 방이 없다는 것의 불편함


같이 산 지 두 달 쯤 되어서인가, 우리는 함께 맛있게 저녁을 먹고 뒷처리를 하고 있었다.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테이블을 한 번 더 닦은 뒤, 남자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 오늘 게임 좀 할게!"


사실 상식적으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특별히 그날 저녁 무언가를 하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었고, 나도 그만큼 개인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왠지 나는 기분이 확 나빴다. 분리되지 않은 공간에 둘이 있는데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상대방은 그럴 의도가 전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나에게 소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짜증을 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당시 살던 공간에는 두 개의 '방' 은 있었지만 문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방에 있어도 상대방과 대화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 점 때문에 그에게 불필요한 서운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사실은 나 또한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다. 나는 성격상 그런 것들을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했고, 그는 나보다는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이 문제로 몇 번 다툰 후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요일을 정했다. 그 이후로는 이 일로 다툰 적은 없다. 하지만 공간 자체가 주는 어색한 느낌은 지속적으로 느껴졌다.(적어도 나한테는) 게다가 둘 다 집에서 일하는 날에는 상당히 불편했다. 한 명이 온라인으로 미팅이라도 하는 날에는 다른 한 명이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손님이 오면 며칠 묵게 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다음 집은 무조건 분리된 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2. 심각한 주변 소음


남자친구는 출장이 찾기 때문에 기차역과 가까운 집을 구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해서 중앙역과 가까운 시내 위주로 집을 알아보다가 이사를 오게 된 곳이 이 집이다. 그리고 우리집은 정말 로잔 시내의 '정중앙' 에 위치해 있었다. 마치 서울로 치면 명동 한복판에 사는 느낌이랄까. 로잔은 결코 큰 도시가 아니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쇼핑가/구시가지는 모두 한곳에 몰려 있었다. 그것들이 우리집을 둘러싸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당연히 매일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소리로 집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게가 문을 열지 않는 일요일은 조용한 편이었지만, (그리고 집을 보러 갔을 때 놀랍게도 아주 조용했지만) 창문만 열어도 거리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만한 거리에 집이 있었기 때문에(1층이어서 더했다) 프라이버시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 답답하게 창문을 모두 닫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조용히 쉬고 싶은 게 대부분의 직장인들 아닌가. 우리 집은 주변부에서 열리는 축제,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 우리 집 앞에서 노닥거리는 사람들로 인해 항상 소음이 발생했다. 자다가 사람들이 흥에 겨워 소리지르는 것을 듣고 잠에서 깬 적도 있다. 제일 충격적인 것은 우리집 앞의 벽면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도저히 편하게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소음과 사생활에 예민한 나로서는 어서 이 환경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3. 결정적인 계기: 집에 도둑이 들었다


위에 언급된 이유들로 인해 이 집에서 사는 게 좋지만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 수 있었다.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 시끄럽기도 하지만, 마트와 상점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 장보기 편리했다. 또한 시내에서 열리는 각종 축제를 간접적으로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토요일마다 집앞에서 열리는 재래시장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회초년생이 처음으로 구한 집이 당연히 완벽할 수 없다며 이 집의 긍정적인 면을 위주로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 집을 나가야 할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집에 도둑이 든 것이다.

도둑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평화로운 스위스, 집 안에서 도둑을 마주쳤다:
https://brunch.co.kr/@alpsengineer/75

인생에서 한 번도 겪지 않았던 일인데, 이렇게 직접 당하게 되니 어안이 벙벙하고 현실을 마주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낯선 땅에서 나를 책임져 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이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였다. '이사를 가는 것'. 도둑을 마주한 그 다음날부터 당장 매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시점에서 이미 직장인으로 1년 넘게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3개월치 월급 증명서는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빨리 이사를 가라는 신의 계시였던 건지, 정말 다행히도 마음에 드는 집에서 우리를 받아주겠다는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새로 이사갈 집은 모든 면에서 원래 살던 집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다. 넓은 테라스, 시원한 통창 밖으로 보이는 설산, 신축 건물. 드디어 나도 제대로 된 예쁜 집에서 살아보는구나! 올해 유독 다사다난하고 일이 많았던 우리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소식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예쁜 우리집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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