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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Nov 28. 2022

딸에게 쓰는 편지 82; 좋아한다는 것...

“너는 소고기가 좋아, 돼지고기가 좋아?”     


소고기를 구워 맛있게 먹으면서 아빠가 물었고, 너는 이내 ‘소고기’라고 대답했어. 아빠도 소고기가 더 맛있다고 생각한 참이었으니까 우린 모처럼 의견의 일치를 보고 신나했지. ‘고기꾼들은 돼지고기가 더 맛있다고 한다더라.’라고 전문가를 험담하면서.     


이야기는 ‘돼지고기 3대 맛집’을 거쳐서 ‘대한민국 3대 도둑’으로 옮아갔지. 얼마 전까지 3대 도둑은 ‘김태희와 결혼한 비’ ‘한가인과 결혼한 연정훈’ 그리고 ‘밥도둑인 간장게장’이렀다고 해. 그러다가 이번에 김연아와 결혼을 하게 된 가수 고우림이 간장게장을 제치고 3대 도둑에 들었다는 거지.    

 

“도대체 이런 건 누가 정하는 거야?”   

  

삐딱한 천성의 아빠는 슬쩍 이의를 제기하면서, 반박할 수 없는 아빠만의 아이돌을 소재에 올렸지. 아빠의 역사를 통틀어 정말 좋아했던 세 사람이 있었던 사실을...     


사랑하는 딸!

‘너는 정말 좋아한 사람이 누구니?’라는 아빠의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리며 대답을 안했어. 결국 성질 급한 아빠가 막아버렸지.     


“고만! 그럼 없는 거야. 좋아하는 건 그렇게 생각해서 나오는 게 아냐.”     


‘항상 같이 있기 때문에 그냥 저절로 나와. 낮이나 밤이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라고 덧붙이려다 말았지 괜히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너의 진실에 상관없이, 아빠는 네가 아직 정말 좋아하는 사람(것)을 못 만났다고 봐. 좋아하는 건 숨길 수 없거든. 그 이름만 들어도, 생각만 해도 괜히 입 꼬리가 올라가고 기분이 좋아지지. 마음의 문이 열리고 머리 뚜껑이 열리는 것, 그리하여 나의 모든 공간과 시간이 그것을 향해 해바라기로 피어나는 것, 그게 좋아하는 거니까.     


그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 아니냐고?

뭐, 일반적으로 그렇다면 부정은 안할게. 하지만 아빠는 다르게 생각해. 사랑은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지. 좋아하는 감정이 순수한 백지라면, 사랑은 그 순수함이 무수히 상처받고 덧나고 깨지면서 완성되는 그 무엇이라고 봐. 말하자면, 좋아하는 게 흰 백지라면 사랑은 그 위에 수많은 선과 색들이 칠해지면서 완성되어가는 작품이라고 할까?    

 

흔히 ‘결혼과 함께 사랑은 끝난다’로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아빠는 ‘결혼과 함께 좋아하는 것은 끝난다. 그리고 사랑이 시작된다.’고 말하고 싶어. 좋아하는 건 즉흥적이고 무의식적이고 무조건이지만, 사랑하는 건 뜻이 있어야 하고 의지가 필요하고 노력해야 이룰 수 있어.  

   

좋아하는 건 휘발성이 강해서 금방 사라져. 사랑하는 건 그 휘발된 감정에서 생긴 결정체라 사라지지 않지. 유행하는 말 중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말 있잖아? 그렇게 보면 맞는 말이야.(물론, 실제로는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해서 쓴 말이지만.)   

  

살짝 옆길로 샜는데, 아빠가 정말 좋아했던 세 사람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이유는 없어. 그냥 좋은 거니까. 이름만 들어도,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 마음이 차분해지고 부드럽게 따뜻해져.  

   

“송혜교. 이장희. 그리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너한테 얘기했지? 아빠는 송혜교가 나오는 드라마를 거의 본 적이 없다고. 옛날에는 아빠가 드라마 자체에 관심이 없어서 안 봤고, 드라마를 보게 된 다음부터도 별로 본 게 없어. 볼만한 드라마가 없기 때문은 아니야.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이 뭐를 하느냐와 상관이 없으니까.    

 

보고 싶지 않더라고.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금방 답이 나왔어.

보기가 두려운 거야. 실망할까봐. 좋아하는 마음이 훼손될까봐 두려워하는 거더라고. 그냥 이 좋은 마음을 간직하고 싶어서 의식적으로 피하는 거였어.  

   

그래도 보고 싶지 않냐고? 사실 보고 싶지. 그래서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어. 요즘은 유튜브에 다 있으니까,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노래를 찾아 들으려면 쉽게 들을 수 있잖아?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검색을 했더니 북유럽의 어느 작은 뮤직카페에서 노래하는 그 사람의 영상이 있더라고. 정말 얼마 만에 보는 그리운 모습과 음성인지!     


여전히 좋더라고! 얼굴을 겨우 알아볼 정도로 멀리서 찍은 영상이었는데도 마냥 좋았어. 아, 잘 살고 있구나! 내가 좋아하던 그 사람 맞구나!     

그리로는 얼른 동영상을 껐어. 좋아하는 마음이 그대로인 것만 확인하고 얼른 도망쳐 나왔어. 혹시라도 그 마음이 변할까봐. 좋아하는 마음이 휘발해서 사라질까봐...  

   

좋아한다는 것...

무지개 같은 것 아닐까 생각해.

꼭 필요하지도 않고, 항상 있지도 않고, 특별히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지.

잠깐, 어느 한 순간, 물방울과 빛의 만남이 빚어내는 찰나의 황홀...     

       --- 딸이 무지개의 순간을 만나길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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