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을 넘어서 30년이 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늘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고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동료들과 상사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고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었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왜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이 후회로 남아 있다. 어느 정도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도 많은 것을 양보하고 다음으로 미루고 세상의 일들에 타협을 하며 살다 보니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 못했었고 시기를 놓치고 나니 그때는 할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어도 용기가 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던 시기에 하지 못하면 나중에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언젠가 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런 날은 잘 오지 않았었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고 살아 볼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에 지금이라도 그렇게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과거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지금 할 수 없는 것들도 있기에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것들? 이건 해 봐야겠다는 것을 만날 때 눈치 보지 않고 주저 없이 해 보는 것이다. 그때 그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미루지 않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 온다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이니 주저하지 말고 하라고 이야기해 줄 것이다.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줄 것이다.
하고 나서 후회를 하는 것이 하지 않고 후회를 하는 것보다 지나고 나서 지금처럼 후회를 하는 일을 적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순간들도 있기 마련이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 시간들로 인해하고 싶은 일을 미뤄야 할 때도 있다.
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 그것도 장남으로 태어나다 보니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늘 논밭으로 나가 고생하시는 부모님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생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할 수 있는 처지 중 또 하나는 나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들이 있어 어린 시절 늘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 나에게 많이 주어졌다. 이제 그 아이들이 제 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어 그때의 부담들은 사라져 버려 이젠 편안하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 그 억압된 환경에서 생각들은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아 있어 쉽게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왔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을 키워 오면서도 마찬 가지였다. 부모로서 당연한 것이겠지만 다시 나를 구속하는 것들로부터 많은 것을 양보하고 미루며 살아야 했었다. 이제 아이들이 성장하여 각자의 자아가 확연하게 발현되는 시점이 오면서 조금씩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오랜 시간 익숙해진 그 삶에서 한 발짝 그늘 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은 엄청난 도전들이 된 것 같다.
지난 삶에서 가장 발목을 잡는 것이 있다면 부모님의 건강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병에 걸리고 그 병으로 인해 가족들이 고생을 하기 마련이다. 나의 아버지는 55세라는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가족을 두고 먼저 떠 나셨다. 홀로 된 어머니를 내가 잘 케어하며 살지는 못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드리워진 그늘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도 젊은 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머리를 다치셔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셨고 가끔씩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할 정도의 이름 모를 병으로 고생을 하셔야 했었다. 후에 자궁 적출 수술을 하고 나서야 그 병에서 벗어나시기는 했지만 농사일을 하면서 고장 난 양 무릎을 수술해야 했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도 힘든 삶을 살아야 하셨고 회사를 다니던 나도 멀리 떨어진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케어를 하기 위해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었다.
자식 된 도리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임에는 분명하다. 누구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왔다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만 살아가면서 이런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또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기도 했다. 어떤 해에는 작은 이모, 큰아버지가 일주일 상간으로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 적도 있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그랬다. 그래도 지병이 있었기는 했었지만 건강하게 만 보였던 장모님도 코로나를 만난 덕분에 그 삶이 단축이 되셨다. 코로나로 인해 더 쇄약 해진 장모님은 오랜 시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었고 요양병원에서 몇 개월을 지내시다 세상과 가족들과의 슬픈 이별을 해야만 했었다. 그 시간 동안 아내와 처제, 처남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을 신경들을 온통 장모님께 쏟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모두들 각자의 자리를 잡고 안정되게 살아가고 있기는 했지만 그 시간에 억압되고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걱정 속에서 살아가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장인어른 홀로 살아기기에 큰 집은 공허함이 가득한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술로 하루하루를 지탱하다 얼마 전에는 폐럼까지 걸리게 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었다. 누군가 곁을 떠난다는 것이 주는 공허함이 삶을 더 쇄약 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정신도 몸도 모두 함께 쇄약 해져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자식들이 많다 보니 주단위로 찾아뵙고 건강을 챙기는 삶의 반복으로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고 있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도 바쁜 사람들이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고 그것에 구속이 되어 자신의 삶을 양보하며 마음속에 그늘을 하나 더 만들며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기쁜 일도 함께 나누고 슬픈 일도 함께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슬픔 일들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은 긴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짧은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구나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드리워진 그늘을 따뜻한 햇볕으로 채우고 싶어 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기는 그런 그늘들을 햇살로 채우고 나서야 가능한지도 모른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꼭 해야 할 일들은 해야만 그 후에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시간들을 제외하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순간들에 결정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 또는 해야 하는 일이 생겨난다.
둘 다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되는데 우리는 그 순간에 많은 갈등을 하고 이런저런 자대를 들이대서 어떤 것이 이로울지 고민을 한다.
하고 싶은 일이든 해야 하는 일이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자신의 발의가 아닌 타인이 발의한 해야 할 일은 하고 싶은 일로 만들어야 일이 끝나고 난 후에 보상도 더 크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만들었으니 이제 그 일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 이런 일들이 자신이 가 보지 않은 길이라 주저하게 되고 조금 더 쉬운 길로 가려고 방향을 잡은 경향이 있다. 나 자신도 돌아보면 그런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운이 좋게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할 수 있었고 30년이 넘게 그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다. 직장 생활 초기에는 많은 결정의 순간들과 직면을 해야 했었고 그 안에서 늘 도전을 하며 살아야 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야 했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기 싫다고 밀어냈을 때 돌아오는 냉랭함도 맛봐야 하기도 했었다.
나는 개발자다. 하지만 난 정말 형편없는 개발자였다. 물론 처음부터 개발자인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엄청 느리게 개발자로 성장을 했다. 도대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들이 나에게 빨리 흡수되지 않아서 많은 날들을 고민을 하며 살았다. 과연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인지? 내가 할 수는 있을까? 란 생각들로 많은 날들을 고민하고 고심하며 살았다. 옛말에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시간이 많은 것을 해 결해 주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여전히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내게 흡수되고 있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재미와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하기 싫은 일에서 하고 싶은 일이 되는 순간을 만나게 되었었다.
그런 순간을 맞기 위해 노력한 시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좋아하는 일이 만들었던 졌던 것 같고 하고 싶은 일이 되었었다.
최근에 읽었던 이서원 교수의 “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에 이런 내용이 있다.
아이를 위해 축구 교실에 보냈는데 아이가 축구하기를 싫어해서
“된장찌개도 처음 먹으면 맛이 없잖아. 그런데 자꾸 먹으니까 맛있어지지? 축구도 그래. 자꾸 하다 보면 좋아져. “
나도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살아왔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자꾸 하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이 되기는 했었다. 하지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었다. 그냥 하다 보니 좋아졌을 뿐이다. 그 결과는 결국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최고가 되지는 못했다.
아들의 답변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빠, 약을 먹으면 쓰지? “
“그래”
“계속 먹으면 달아?”
“…”
“축구도 그래”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과 하기 싫은 일에 분명한 의사를 표현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의 욕심으로 계속 쓴 약을 먹여가며 좋아지기를 바란다. 이 대화를 통해 나도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도 계속 쓴 약을 먹으면서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쓴 약을 먹이는 부모가 되지 말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니 나이를 불문하고 좋아하는 일이 생겼을 때 갈등하지 말고 그 일을 하기를 바란다. 세상은 아닌 것 같아도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내가 잘되어야 주변 사람들이 잘되고 이 사회가 잘 만들어져 돌아간다. 계속 쓴 약과 같은 일을 선택하게 된다면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고 그냥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이 된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내야 내일 하루도 잘 보낼 수 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로 고민하다 오늘을 망쳐버리고 내일도 망쳐 버리게 된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내려면 하루에도 수없이 찾아오는 선택을 잘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약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고 달달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타인의 시선으로 선택한 것은 타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