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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의 계절

by 노연석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가을 골프는 빚을 내서라도 치러 간다고 하지만 골프장 그린피는 너무도 사악해서 직장을 다니는 골퍼들은 감히 엄두를 내기 어렵다.


미리 약속된 라운드 라면 어쩔 수 없이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긴급으로 나오는 양도 또는 조인 티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선택지는 넓지 않다. 어떤 때는 괜찮은 구장을 찾아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렇게 사라지는 타임을 쫒다 보면 더 좁아진 선택지 안에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꼭 가겠다는 마음의 강도도 강해져 원치 않는 부킹을 할 때도 있다.


조인으로 한 팀을 이룬 구성원들은 매우 다양하다.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 수다스러운 사람, 뭔가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와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 그리고 가장 문제인 슬로우 골퍼.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슬로우 골퍼를 만나면 그날은 맨탈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반자들이 타격을 입기 마련이다.


조인 라운드를 하게 되는 이유는 많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친한 동반자들과 자주 갈 수 없기 때문인데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라 같이 나가기 위해 부킹 하는 타임은 비싼 가격을 주고 갈 수밖에 없어 나도 동반자들에게도 부담이 된다. 라운드 일자에 임박해서 조금 싼 타임을 부킹을 할 수도 있지만 원하는 선택지가 작아져서 모두가 만족하는 라운드를 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조인 라운드이다.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저렴한 시간을 예약하고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라운드 동안만 만나고 헤어질 사람들이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고 그들과 공을 치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신세계를 만나기도 한다. 세상의 견문을 조금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한다.


매일 같이 다람쥐 챗바퀴와 같이 돌아가는 삶 속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마주하고 하는 대화 속에는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 정해진 틀 안에서 대화를 하고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접하게 되고 지금 내가 바르게 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물론 그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지만 그 사람의 행동, 말투, 무의식 중에 나오는 그 사람의 아우라에서 느낄 수 있다. 늘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것. 그리고 모든 걸 부풀리는 허풍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그런 허풍은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그래야 대화가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로워진다.


첫 만남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우 겸손하다. 공을 잘 치면서도 백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싱글 스코어로 끝내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부럽다. 얼마나 공을 많이 쳤을까? 나에게도 그런 때가 오겠지.


조인 라운드에서 맛볼 수 있는 이점이다. 친한 동반자들은 대부분 고만 고만한 사람들이라 컨디션에 따라 스코어가 들쑥 날쑥이고 비슷한 수준이라 배울 게 없다. 그러나 조인 라운드에서 가끔 만나는 싱글 이하의 핸디캡퍼들을 만나는 날에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조인 라운드의 묘미다. 조인을 나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었다고 본다. 그래서 싱글 이하를 치는 골퍼가 아니라도 배울 점은 많다.


첫 조인 라운드를 갈 때는 아주 긴장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고민도 많이 하며 나가지만 너무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해를 해 준다. 새로운 사람들이라 부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내가 실행으로 옮기려 했던 것을 충실히 하고 오면 된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슬로우 골프는 모두가 싫어하기에 샷을 하는 루틴을 짧게 가져가고 미스샷을 했을 때 공을 찾아야 할 때 너무 많은 시간을 써서는 안 된다. 공을 찾는데 3분의 시간이 룰에는 주어진다고는 하지만 한두 번은 그럴 수 있지만 너무 잦으면 빨리 포기하고 벌타를 받고 샷을 해야 한다. 경기가 늦어지면 뒤를 따라오는 골퍼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동반자들도 이야기하지 않아도 가슴속으로 욕을 하고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해지고 스코어가 좋지 않게 된다. 자신조차 그렇게 된다. 좋은 골퍼란 역시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거기에 한 가지 더하면 골프 룰과 로컬룰은 숙지하고 반드시 준수하는 것이 좋은 골퍼다.


주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이다 보니 비싼 그린피는 언제나 부담이다. 이웃나라 일본을 가봐도 그린피도 저렴하고 카트피도 포함이고 캐디 없이 라운드가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언제쯤 그런 시기가 올지, 오기는 할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양도, 조인을 통해 조금 싼 값에 이용할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가을, 골퍼의 계절.

긍정적인 생각과 룰을 지키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좋은 스코어를 만드는 것보다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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