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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간만큼 소중한 타인의 시간

지각

by 노연석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 지각.

학교 다닐 때도 회사도 친구와의 약속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곳에 지각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일찍 출발을 하고 너무 일찍 도착해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도 하지만 마음은 편합니다.


그렇다고 한 번도 지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에 없지만 여유롭게 출발하지 못해 지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눈 때문에 지각을 한 적이 두 번 있습니다. 한 번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 어느 날 그날 하필이면 시험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눈이 많이 와 버스가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하여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했고 다행히 버스가 다시 운행되는 구간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했지만 1교시가 지나 버렸습니다. 국사 시험을 못 보게 되었는데 2-4교시 시험을 치르고 점심시간에 교무실에 가서 선생님들의 감독 아래 시험을 치웠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한 번은 겨울 어느 날의 출근길 그날도 눈이 엄청 많이 와서 도로는 온통 거북이 차량들로 가득했습니다. 회사 통근 버스 기사님은 조금이라도 빨리 가시려고 여기저기 지름길로 향하셨지만 결국 20분 거리를 3시간에 걸쳐 도착했는데 사무실에는 모두 출근을 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 나만 늦은 것이 너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사람들과 약속을 하면 아직도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 편입니다. 그런데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매번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의 약속에 시간을 지킨 적이 거의 없습니다. 조금 늦을 수도 있지만 한참을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맘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기왕이면 약속 시간을 잘 지치는 사람이 타인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않을까요? 몇 분의 아주 조금의 지각 시간은 타인들이 몇 분의 합이라고 생각하면 적지 않은 시간입니다. 20명 중 1명의 지각자가 2분 늦었다고 하면 나머지 19명의 2분의 38분이나 됩니다. 나머지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도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었습니다. 가족 여행을 가던 날 물론 그날도 일찍 도착해서 아침을 먹고 출국 수속을 받았는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긴 줄을 서다 보니 비행기 출발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초조해지고 겨우 출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자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빨리 오라고. 가족들을 뒤로하고 먼저 열심히 뛰어서 탑승구에 도착해 가족들이 오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탑승을 했지만 우리 가족이 늦어서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았던 것이죠.


지각을 하게 되면 그 이후의 시간들은 매우 바빠지고 정신이 없어 일을 그르치기 십상입니다. 지각으로 인한 마음이 가라앉는데 꽤나 긴 시간이 걸리게 때문이죠. 그리고 지각이라는 과정에서 서두르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출국 시간에 늦었던 그날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여행지 입국 장에 내려서 발을 절뚝거리며 다니느라 즐거운 여행이 불편한 여행이 되었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지각은 좀 이해해 줄 만하지 않나요? 늘 상습적으로 지각을 하는 사람들 코리안 타임이라는 둥 온갖 변명을 늘어놓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사라 집니다. 이별을 고하지 않지만 그런 사람들과 약속이 생기면 마음 한 구석이 남아 있던 기억이 떠올라 거부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지각, 그럴만한 사유가 있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만성이 된 지각 마인드의 소유자들은 이해해 주기 어렵습니다. 정말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자각한다면 고쳐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 일 텐데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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